은성이는 일주일에 두 번, 학교 마치고 학원에 갑니다. 학원에서 한글공부를 따로 더 합니다. 다닐 만한 학원을 수소문했고 좋은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학원이 2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계단이 버거웠고 두 사람이 부축해야 겨우 오르내렸습니다. 2년쯤 되니 계단에 익숙해지고 다리에 힘이 생겨서인지 잘 올랐습니다.

은성이를 지원한 시설 물리치료사의 기록입니다.

「계단 오르는 은성이 발걸음이 무겁다. 몇 번 헛발질 뒤에야 겨우 한 계단을 오른다. 끙끙 용쓰는 소리, 거친 숨소리, 그렇게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은성이도 직원도 ‘휴~’ 하는 숨이 절로 나온다. 오르는 걸음에 비해 내려오는 걸음은 가볍다. 계단을 내려오면 주차장까지 양팔을 부축해서 걷는다. 평소 가위보행(scissors gait)이 심한데 오늘은 한 걸음 한 걸음 일자로 잘 내딛는다. 2013년 2월 4일 물리치료 일지.

몇 주째 은성이 발걸음이 가볍다.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몇 번씩 시도했는데 요즘은 한 번에 한 계단씩 올라간다. 옆에서 부축하는 직원도 덩달아 가볍다. 내려오는 걸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아 힘들었고 그래서 미끄러지듯 내려왔는데, 이제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학원 선생님도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칭찬했다. 칭찬 들으니 발걸음이 활기차다. 2013년 3월 25일 물리치료일지」

다시 2년 만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계단 오르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실수 없이 한 발씩 잘 옮긴다.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이 평소의 절반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내려오는 발걸음 또한 가볍다. “오늘 잘하네. 은성이!” “내가 많이 좋아졌네.” “너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니?” “네.” 계단 오르내리는 데 자신감이 생기는가 보다. 2015년 5월 4일, 물리치료 일지」

평소 휠체어에서 자동차, 자동차에서 건물 정도의 가까운 거리는 양팔을 부축하면 얼마쯤 걷습니다. 그러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글 공부하겠다고 찾은 학원이 2층에 있다니, 계단 스무 개! 막막하고 난감했습니다.

초기에는 계단 오르내릴 때 두 사람이 양팔을 부축하여 온몸을 받치다시피 했습니다. 계단 폭이 좁고 가팔라서 넘어지고 다칠까 서로 용을 썼습니다. 한 계단 오르기는커녕 다음 계단으로 발 옮기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몇 번 시도해서 겨우 한 발 걸치고 한숨 돌리고, 다시 몇 번 시도 끝에 겨우 다음 칸에 한 발 걸치고…. 형편이 이러니 계단 오르는 데 20분씩 걸렸습니다. 수업 20분을 위해 계단에 40분 공들였습니다.

2년쯤 다니니 요령이 생기고 힘도 생겨서 잘 오르내립니다. 4년쯤 되니 계단 오르내릴 때 한 사람만 부축해도 되었습니다. 그것도 은성이가 계단 손잡이를 잡고 오르면 한 사람이 뒤에서 은성이 허리를 잡고 받치기만 합니다.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이고요. 휘청거려도 잘 오릅니다. 오르는 데 2~3분이면 됩니다.

4년 전 20분에서 이제 2분으로 줄었습니다. 계단 오르내리는 데 필요한 다리 근육이 생겼을 것이고, 학원 계단만큼은 어떻게 오르는지 요령이 생겼을 겁니다. 물론 이렇게 생긴 다리 근육과 계단 오르는 요령은 일상의 다른 상황에 도움이 됩니다.

휠체어 앉은 채로 계단을 오르내리면 안 되나? 굳이 그렇게까지 하며 학원 다녀야 하나? 이때 은성이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근력을 키우고 요령을 익히기 바라서 굳이 그렇게까지 했습니다.

집과 학교에서 물리치료를 꾸준히 하고 재활을 위해 승마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고 교회 가고, 가족과 여행 가고 친구와 영화 보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는 그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재활을 살피면 어떨까요? 다리 힘 생기고 계단 오를 수 있으면 그때 학원 가고 학교 가는 게 아니고요. 은성이 물리치료실은 학원 계단입니다. 시설 물리치료사의 현장도 학원 계단입니다.

위의 글을 갖고 물리치료사와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평소 생각을 더해 주었습니다.

“물리치료의 목적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물리치료는 더욱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월평빌라에 일하면서 점점 커집니다. 못 하는 것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할 수 있고 가능한 것을 더욱 살리는 것, 특히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것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은성이를 지원하던 초기 물리치료사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생활 속에서 재활과 물리치료를 해 보자고 했을 때, ‘생활은 생활이고 치료는 치료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별개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케어 기술』을 공부하며 일상생활이 모두 물리치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료와 공부한 『새로운 케어 기술』이 선생님에게 적잖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치료 대상자에서 삶의 주인으로, 재활에서 일상으로, 치료실 안에서 삶의 현장으로. 복지시설에서의 물리치료 개념을 고민하고 궁리하고 실천했습니다. 『환자가 주인이 되는 새로운 케어 기술, 오타 히토시, 동학사』

은성이가 4년 동안 올랐던 계단 앞에 서 보고 싶었습니다. 눈을 감고 상상했습니다.

첫 계단을 마주한 은성이, 첫 계단을 마주한 사회사업가와 물리치료사가 보였습니다. 두려움과 용기가 수시로 얽히고설켰습니다. 가만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주르르 흐르는 날은 첫 계단부터 흠뻑 젖었습니다. 추위가 매서운 날은 성큼성큼 올라가서 문고리를 잡고 싶었습니다. 비 오는 날은 미끄러운 계단이 야속했습니다. 사투였습니다. 스무 계단은 산 넘어 산, 어떤 싸움보다 치열했고 그들은 누구보다 용맹했습니다. 한 번의 씨름으로 끝나지 않았고 지루하리만치 끝이 없었습니다.

눈을 떴습니다. 그 계단이 계속 보였습니다. 여느 사람이 첫 번째 계단을 의식하지 않고 성큼 내딛듯이, 몇 번째 계단인가 헤아리지 않고 오르듯이, 은성이가 첫 번째 계단을 성큼 올랐습니다. 단숨에 올랐습니다. 용맹한 전사였습니다.

재활, 일상에서 합니다. 은성의 재활, 물리치료 현장은 집이고 학교고 학원이고 교회입니다. 집에서 밥 먹고 화장실 가는 데 필요한, 학교에서 공부하고 노는 데 필요한, 학원 계단 오르내리는 데 필요한,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데 필요한 기술과 요령과 힘을 기르는 겁니다.

시설 입주 장애인의 재활은 당사자의 삶, 그 현장에서 삶의 기술을 익히는 게 더욱 절실합니다.

* 은성이를 지원하는 월평빌라 도은주 물리치료사와 여러 직원의 말과 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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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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