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우와 함께 약수동에 있는 바리스타교육을 하는 커피전문점에 다녀오는 길에, 버스에서 만난 한 어머니가 있었다. 버스에서 자리를 못 찾고 서있는 나와 눈을 맞추시더니 곧 내릴거라며 이리 오라고 손짓하신다.

왠지 특별한 친절에 감사해하며, 상우와 나란히 자리에 앉으니, ‘우리 아이도 그래요’라고 말씀하신다. 난 마음으로 흠칫 했지만, ‘아, 네..’하며 대답했다. ‘우리 아이는 다 컸어요. 집에 있는데, 직업훈련하는 곳 여섯군데나 떨어져서.. 그냥 집에 있어요. 손이 좀 빨라야 하는데, 잘 안되나봐요. 매번 시간타임에 걸리는지...’

아주머니 아이는 딸이고 스물여섯. 내 옆에 앉아있는 상우를 보더니 의젓하다며 칭찬하신다. 나는 따님이 학교를 어디 다녔는지, 우리 상우의 중고등학교는 어떻게 보내야할지 잠시 이야기 나눈다. 그 어머닌 내가 내리기 바로 앞 정거장에서 내리신다. 조금은 침울한 표정으로..

내가 상우와 함께 다닐 때엔 더 천진하게 굴고, 회사에서 만나는 고객들은 내게 -한편으론 참 억울하게도- ‘세상물정 모르고 인생 평지풍파 없이 고이고이 잘 자랐을 것 같은 사람’ 이라는 말씀들을 하시는데, 그 어머닌 대번에 내 마음을 헤아린 것이다.

침울한 표정은 집에 있을 따님 생각과 더불어, 앞으로 내가 겪고 만나게 될 인고의 삶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이었으리라. 그 분은 나를 알아보고, 상우를 알아보셨고, 나 역시 말로 표현치 않더라도, 그 분의 마음을 잘 안다.

우리가...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처음으로 겪었고, 필사적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거란 사실을..

그리고 우리는 또 잘 아는데, 우리가 가진 한밤의 눈물. 아니 시도 때도 없이, 단 십 초 만에도 뚝뚝 떨어뜨릴 수 있는 눈물을 언제나 갖고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난 그 눈물이 갖게한 것들에 감사한다.

상우가 네살 때 처음 찾은 발달장애 자폐 정보 ‘나눔터’라는 다음까페는 그 당시 회원이 3천명이 채 안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3만명이 넘는 것으로 안다. 요즘엔 자주 들어가지 않지만, 어느날 들어가보고 그 회원수에 깜짝 놀랐다.

물론 자폐 스펙트럼이라 불리울 만큼 발달장애는 그 범위가 무척이나 넓은데다, 아이 발달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신경쓰는 엄마들이 아이가 채 자라지도 않았는데 이것저것 느린 줄로만 생각하고, 조기에 많이 가입하여 발달과정을 체크해보고자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고, 온라인을 사용치 않던 분들이 나눔터의 존재를 뒤늦게 알고서 가입할 수도 있는.. 여러 원인으로 회원수가 늘어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화면상에 나타난 회원수는, 굵은 눈물 한 줄기를 천천히 토해내게 만들었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특별한데, 그 특별함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내 마음은 그야말로 혼란과 혼돈이었다. 울며 출근하고, 울며 퇴근하던 날들이 2005년 4월, 지난지 십년 즈음 되어가지만,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다.

아이의 특별함을 알게되어 혼돈을 겪고 있을 많은 초보엄마, 아빠들. 내가 그러했듯이 그분들도 여기저기 찾고 있으리라. 교육, 병원, 학교, 친구, 언어, 원인, 결과, 그리고 내 앞에 떡 버티고 있는 생과 아이의 생. 나처럼 일 년만 집중하면 다 해결될 일이리라 치기어린 부모도 있을 것이고..

늘어난 회원수를 바라보며, 잠시 먹먹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나 처음 막막할 때, 치기어린 희망으로 엉뚱한 소리를 해댈 때, 이곳의 많은 선배들께서 진실하게 이야기해주었던 것처럼, 나 역시 내가 깨달은 것들을 잠시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 만한 게 있을까. 아직도 상우는, 나는, 많이 부족하고, 여전히 허둥대고, 헤엄쳐가야 할 앞날이 무궁무진 망망대해처럼 펼쳐져있고, 뚜벅뚜벅 힘찬 발걸음 대신, 조심조심 살금살금 걸어가야 할 날들이 태반일텐데...하지만, 용기를 내어본다.

작은 경험이나마 그 분들에게 읽히고 마음을 다지고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하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만난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자리를 양보해주시던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리고 마흔,. 마흔이면 그동안 사회로부터 받아온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산자의 입장으로 사회에 무언가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은 드는 것이다.

아이의 특별함을 발견한 어머니 아버지.. 분명 일반아이들을 키우는 것과는 다른 또 다른 세상과의 만남이다. 키워보니 정말 그러하다.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이 부모라는 면에서는 성장하겠지만, 그냥 부모와는 달리, 한두번쯤은 더 신에 대해 생각하고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때로 나라는 사람은 상우를 키우며 남들보다 우쭐한 마음을 느끼기도 하는데, 남들은 모를 것 같은 삶의 비밀을 나는 아는 사람이라며 홀로... 우리 아이들이 우리를 선택해 와준 이유(아이가 아무 생각없이 나에게 왔겠는가. 고르고 골라 나에게 와주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만큼 상우는 내게 보석과 같이 멋지고 아름답다), 그리고 그 세상을 함께 하고 겪게될 나는 처음 알게 되어 막막한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하니, 내 글들을 읽는 가운데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대하고 만나야할지, 내 인생을 어떻게 대하고 만나야할지, 이 마음을 전하는 마음은 그 혼란과 당황을 생생히 알기에, 한없이 안쓰럽고 속절없다 할지라도, 내가 진솔하게 쓴 글이 새로운 세상을 처음 대하는 당신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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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맘이자 새로운 세계, 장애아동을 키우는 삶에 들어선지 10년째다. 아들이 네 살 때 발달장애인 것을 인지하고 1년 휴직하며 아이 교육에 힘쓰는 한편 아이의 장애등록에 따른 고심과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 등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장애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오래 가는 “길 장(長), 사랑 애(愛)” 임을 깨닫게 된다.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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