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들이 대중목욕탕에서 서로 등목을 해주는 장면, 예전에 이 장면은 대견히 자란 아들 모습을 보는 것, 잘 키워낸 아빠의 자부심 같은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훈훈한 장면으로 여겨졌다.

시대가 달라졌다. 요즘 부모들에게 아이 목욕은 혹시 학교에서 어디 맞고 오지나 않았는지 상처는 없는지 몸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야하는 필수일과가 되었다.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낸 후 처음으로 사건이 터졌다. 목욕 중 팔뚝에서 물린 상처가 발견된 것이다. 이빨 자국 다섯 개가 분명했고 그 주위로는 울긋불긋 핏줄이 서 있었다.

며칠 지나서도 상처는 선명해지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학교로부터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 물론, 부모회 일로 최근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통화를 하던 상대방 부모에게서도 아무 연락을 받지 못했다. 상우에게 물으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라고는 하나 반 아이 한 명을 지목해 그 아이가 그랬는지 물어도 고자질하는 느낌이 들었는지 아무 답이 없다.

퍼뜩 스쳐가는 생각이 들어 1학년 때 한 반이었으나 지금은 옆 반이 된, 마찬가지로 그 아이에게 물렸던 아이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가해 학생의 공격적인 행동으로 인해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만 했지 그 때는 정확히 듣지 못했던 일이었다.

피해 아이는 봄에 물렸던 상처가 가을이 가도록 흉이 안 지워졌다고 했다. 한동안 학교가는 것을 거부하고 아이들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가해학생 부모가 부모회일로 많이 바빠서 신경을 많이 못 쓰는 것 같다고. 우리 아이도 그럴 수 있으니 이해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인지라 많이 힘들었지만 그냥 잘 넘겼다고 한다. 특수학교에 보낸 것을 많이 후회했고, 그 아이와 함께 다니던 복지관 수업도 모두 끊는 것, 즉, 피하는 것으로 대처하며 마무리했다.

나 역시 그냥 그렇게 넘어가려 하였다. 우리 아이도 그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아이 부모는 얼마나 힘들까.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그 심정은 어떨까.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따뜻한 말 한 마디 듣고 상처를 살펴주면 나 역시 서로를 위로하며 그냥 지나쳐갈 해프닝에 불과한 일, 상우는 많이 놀라고 아팠지만 같이 이해해야겠지 하며.

그리고 나 역시 가해자의 부모에게 똑같은 변명을 들었다. 상처를 못 보았으니, 자기 아이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 하여 보낸 사진에서는 ‘상처가 크네 미안해~ 부모회일로 부침개 부치느라 바빠서 이제 보았어.’이런 답은 어떻게 해석해보면, ‘부침개 부치는 일보다도 못한 남의 아이의 상처’로 들리는 답이다. 여러 번의 변명에서도, 요즘 부모회일로 정신이 없어 그 자리에 참석한 나를 못 보았다거나 아이를 못 보았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한다. 걱정하는 말 한마디를, 상처를 염려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면 끝났을 일을, 계속 부모회를 언급하며 바빴다는 변명이 우선인데, 작년에 다른 피해아이의 부모에게 했던 말과도 같다. 이런 변명거리를 만들기 위해 부모회 일을 하는 것인가?

부모회 일은 모든 아이를 위한 대표성을 띄는 일이라 공격성을 가진 자기 자식은 물론이요, 표현이 서툰 남의 자식들의 권리 또한 앞장서 보호할 줄 알아야하는 자리이다. 이런 사건에 언급하며 이해를 바라는 마음은 옳지 않다.

이번 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선생님과 가해자의 부모는 사건에 대해 인지하였고 서로 연락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일은 물론 다음날까지 스스로 먼저 내게 이야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더 속상한 일이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묻혀 지나갔을까. 단지 흉터를 그들이 못 찾고 못 보았다는 이유로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놀랐을 아이의 마음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특수학교에서도 공격적인 성향의 일부 아이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아이들은 평소 조용하고 말수도 적은 아이들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피해자만 피해를 당한 채로 속상하게 끝난다. 그것은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무딜 대로 무디어진 가해자의 ‘네가 그래봐야 어쩔 수 없어. 답은 정해져있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라는 태도에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용기를 낸다.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사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더라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그냥 넘어가는 것은, 다음에 같은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친구에게 잘못하는 일인 것 같아서.

먼저 하루하루 전쟁터 같은 일선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발달장애 스펙트럼의 다양한 양상, 사춘기를 지나며 호르몬 변화를 겪는 아이들, 급격히 자라나는 신체상황과 힘, 나쁜 습관들, 여러가지 양상들을 다 관리하시며 아이들을 가르치시며 직접 그 어려움을 다 견디고 계시는 선생님들의 노고는 말로 표현할 만한 것이 없다. 공개수업에 가보면 그 40분의 수업을 얼마나 성심껏 지도하고 계시는지 마음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상황이 어려운 친구들은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더욱 전전긍긍하며 가르치고 계실 것이다.

아마 특별히 큰 일이 아닌 이상 학교의 일은 학교에서만 감내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고 계실 지도 모르겠다. 사람에 따라서 아이의 행동을 연락해주면 고맙게 여기고 더욱 신경쓰는 부모도 있지만, 학교에 있을 때는 학교에서 알아서 해야한다는 주장을 펴며 자기 자식의 행동을 상세히 알려주려 연락하는 선생님을 매도하면서 나쁜 평판을 만들어내는 부모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선생님의 일은 이 뿐만 아니라, 매일 알림장을 작성하며 다음날을 준비시키고, 학교보고서 서류작성 등 해야 할일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안다.

나는 여기에 하나의 제안을 더 드리고 싶다.

문제행동이 발생했을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겼을 경우 사건의 발생부터 해결단계까지의 보고서를 작성, 보존하여 남기는 것이다. 그동안 피해자는 피해버리니까 피해자인 듯 아픈 마음을 추스르며 문제학생과 당분간이라도 멀리 떨어뜨려달라고 부탁할 뿐이었다.

그러나 더더욱 피해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피해자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다음에 아이가 비슷한 사건을 일으켰을 때, 피해자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가늠할 수 있다. 입으로 전해지는 정보는 정말 불충분하다.

문제가 된 사건에 대한 자세하고 세밀한 정보가, 다음에 해당 학생을 지도할 선생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사건의 발단, 추정 원인, 사건 이후 부모들의 해결노력과 관계,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상황 등도 기록해두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고 나면, 그 다음 해야할 일도 지침을 정하여 매뉴얼화해서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옳겠다. 양쪽 부모에게 신속히 연락하는 일이 최우선이 될 것이며, ‘이런 일이 있었기에 학교규정에 따라 연락드립니다’라고 말하면 아이를 맡겨놓았는데 귀찮게 한다며 허위평판을 만들어내는 일 따위에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이번에 반성했던 일은, 상우에게 좀 더 다방면으로 신경을 써서 힘을 주어야하지 않았나 하는 부분이었다. 아이가 공격성이 적다고,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달리 생각하면 더 소외되기 쉽고 관심 밖에 머물 수 있다.

아이가 공격성을 띄며 많이 힘든 경우, 부모회 활동을 하여 더더욱 신경쓰는 부모들도 많이 계시지만, 활동을 안한다고 하여 아이에 대한 사랑이 적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런 의도로 시작한 부모회 활동은 자기 자식만 최우선이기에 활동 자체의 공공성과 자리의 의미라는 것을 과연 생각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회 활동을 하고 있는 이번 가해학생학부모가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맡은 자리의 공공성을 생각했다면, 상처입은 피해학생의 부모에게 그 활동으로 인한 바쁨을 변명거리로 삼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서로의 애타는 마음들을 왜 모르랴. 그러나 제발 최소한의 에티켓과 예의는 서로 지키자. 이제 처음 아픈 사건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 여러 번 이런 일을 겪어와 결론까지 뻔히 다 알고 있다는, 대수롭지 않다는, 네가 이해하고 넘기라고 먼저 말하는 태도는 더욱 상처를 준다.

물론 그 부모도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힘겨워했겠지만, 이후 생채기에 여러 번 딱지가 앉아 그리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 세월의 두께로 인해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스스로 매뉴얼을 만들어보자. 그 매뉴얼의 첫째는 이런 일 겪게 되어 아프고 힘들어할 아이에 대한 상처 확인과 진정한 사과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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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맘이자 새로운 세계, 장애아동을 키우는 삶에 들어선지 10년째다. 아들이 네 살 때 발달장애인 것을 인지하고 1년 휴직하며 아이 교육에 힘쓰는 한편 아이의 장애등록에 따른 고심과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 등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장애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오래 가는 “길 장(長), 사랑 애(愛)” 임을 깨닫게 된다.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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