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귀옥(가명) 씨, 아버지 좋아하시는 음식으로 하면 어때요? 어떤 음식 좋아하셨어요?”

“미역국 끓이고……. 아빠가, 고기는 고등어 좋아해요.”

“그래요? 그럼 조갯살 들어간 미역국에 고등어구이 할까요?”

“네. 케이크도 사고요.”

“텃밭에서 가지하고 호박 따서, 가지나물 호박전은 어때요?”

“네. 따고 씻는 거는 내가 할게요.”

돼지갈비, 조갯살, 표고버섯 그리고 고등어 한 손, 귀옥 씨 좋아하는 초코 케이크 대신 아버지 좋아하실 고구마 케이크를 샀습니다. 가지, 오이, 방울토마토, 고명으로 넣을 고추 따서 다듬으니 얼추 준비가 끝났습니다.

“졸업하면 선물도 살 거예요. 지금은 내가 학생이잖아.”

올해 아버지 생신은 딸 집, 월평빌라 201호 귀옥 씨 집에서, 귀옥 씨가 차려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귀옥 씨는 스물여섯에 월평빌라에 이사 왔습니다. 고향에서 부모님과 살았는데, 지적장애가 있는 다 큰 처자가 동네에서 어떤 사고라도 당할까 걱정된다 해서 시설에서 삽니다. 부모님이 가까이 있어 자주 오가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스물일곱에 초등학교 입학했고, 올해(2016년) 서른넷,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초등학교 몇 년은 월반했습니다. 입학식, 학부모 간담회, 운동회, 학예회, 졸업식… 학교행사 때마다 부모님 참석하게 부탁했고, 손 하나가 아쉬운 농번기에도 어머니는 왔습니다.

아버지 생신은 다행히 8월 한여름입니다.

부모님이 수박 사 들고 아침 일찍 왔습니다.

“날도 덥고 일 못 하는 때라 일찍 왔어요.”

“잘 오셨어요. 딸 밥하는 것도 보고 그러세요.”

귀옥 씨가 쌀 씻어 밥 안치고, 육수 끓는 동안 미역 불리고 조갯살 씻었습니다. 시설 직원이 옆에서 말로 조금 거들면 잘합니다. 부모님과 살면서 살림했고, 시골에서 나고 자라 그런지 손끝이 야무집니다. 갈비찜, 가지나물, 호박전은 직원이 했습니다. 고등어 구워 내니 생신상 채비가 끝났습니다.

“우리 귀옥이 밥 해 묵는다 캐도 이렇게 잘 거들 줄 몰랐네. 집에 와도 오늘처럼 엄마 거들어 봐라.” 눈여겨보던 어머니가 대견해 했습니다.

수저 세 벌을 놓고, 아버지 어머니 딸이 마주 앉았습니다.

“아이고, 우리 귀옥이 집에서 생일상을 다 받고. 귀옥아, 아빠가 기분이 좋다.” 음식 장만하는 딸을 묵묵히 보던 아버지가 한 말씀 했습니다. 생일상 소감이고 칭찬입니다.

국 식기 전에 드시라 하고 직원은 방을 나왔습니다. 아버지 생신상 뜻을 아는지, 귀옥 씨가 평소와 다르게 조용하고 차분합니다.

시설에 살아도 자식 노릇하며 살기 바랍니다.

시설에 살아도 여느 부모 자식처럼 삽니다.

2.

민경 씨 고향은 밀양입니다. 아주 어릴 때 부모님 손을 놓쳐 헤어졌고, 그때부터 부산 어느 시설에서 살았습니다. 월평빌라에는 2009년 이사 왔습니다. 그때가 스물셋. 이듬해 기적처럼 부모님을 만났지만 함께 살 형편이 안 되어 떨어져 지냅니다.

근래 아버지 혼자되고는 더 마음이 쓰입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딸은 아버지에게 더 의지하는 것 같습니다. 시설에 사는 딸이 고향 아버지에게 밑반찬 장만해서 보냅니다. 참치나 김 같은 것을 사고, 멸치볶음 같은 마른 반찬은 직원 도움 받아 직접 해서 보냅니다.

“민경(가명) 씨, 한 해 돌아보며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인사 해요.”

“아빠! 아빠!”

민경 씨의 답이 분명합니다. 아버지.

얼마 전, 임플란트 하는 데 보태라며 백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날품 팔고 농사지어 당신 살림 겨우 사는데, 큰돈입니다. 민경 씨도 알겠죠. 그래서 가장 먼저 ‘아빠 아빠’ 하는 겁니다.

어떻게 인사할지 물으니 커피 마시는 시늉을 합니다.

“커피 사드리고 싶어요?”

“예예.”

“택배로 보낼까요?”

“예예.”

“요즘 어머니 안 계셔서 반찬이 없다고 하던데, 밑반찬 보내드리는 건 어때요?”

이번에는 손으로 오케이.

귤 한 봉지 담고 아빠 아빠, 참치캔 두 개 담고 아빠 아빠, 김 담고 커피 담고 아빠 아빠. 한 바구니 채워서 계산하고, 우체국에 들러 택배로 보냈습니다.

시설에 살아도 자식 노릇하며 살기 바랍니다.

시설에 살아도 여느 부녀처럼 삽니다.

3.

다른 얘기 좀 해 볼까요.

요양원에서 일하는 후배가 어버이날 앞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가족들 초대해 어르신에게 카네이션 달아드리는 ‘어버이날 행사’를 기획했는데, 직원들 의견이 분분하답니다.

행사를 반대하는 입장은, 보호자 간담회로 얼마 전에 가족들 다녀갔는데 또 오라고 하면 부담스러워한다는 겁니다. 사정이 있어 못 오는 가족들의 불평도 예상합니다.

행사를 찬성하는 입장은, 그래도 어버이날 맞아 부모님 꽃 달아드리러 오라는 건데 가족들 부담스럽다고 일면식 없는 사람들 불러 공연하고 꽃 달아드리고 음식 대접하며 자식들 대신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버이날 행사, 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남 얘기 같지 않습니다. 장애인시설에서도 시설 입주 장애인의 부모형제를 초대하는 ‘행사’가 여럿 있습니다. 보호자 간담회, 부모 교육, 가족관계 프로그램, 가족 나들이, 가족 체육대회, 송년회, 어버이날 행사, 어린이날 행사…. 이런 행사에 가족들 참여가 저조하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동료들을 봤고요.

시설은 행사하느라 분주하고 부담 갖고, 가족은 참여율이 저조하고 또한 부담 갖고. 일 년에 몇 번 있는 이런 행사에 시설은 시설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왜 이럴까요? 각자 사정이 있겠죠.

질문을 바꿔보죠.

시설의 이런 행사는 시설에 부모형제를 둔 가족들에게 ‘시설 행사’ 일까요? ‘가족 행사’ 일까요?

평소 시설 입주자와 시설 바깥 부모형제들이 어떻게 관계하게 도왔느냐에 따라 다를 겁니다. 부모형제로 관계하게 했는가? 시설 입소자와 보호자로 관계하게 했느냐? 그에 따라 다를 겁니다.

시설에 사는 어르신이 오늘 아침 유독 기운이 없고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시설 바깥에 사는 큰아들에게 전화해서, 평소 어르신이 어여뻐하는 큰손녀와 화상통화하게 부탁합니다. 막내 손자 군대 가기 전에 어르신에게 인사하게 합니다. 직접 오면 좋고, 화상통화로라도 짧은 머리 얼굴로 어르신에게 큰절하고 입대하게 합니다.

어르신 생신에 온 가족 모이게 주선합니다. 장남 집에 온 가족이 모이거나 시설 근처 식당을 주선하여 모이게 부탁합니다. 편지 쓸 만한 손주가 있으면 준비해서 낭독하고, 어르신이 가족에게 전할 말을 연습해서 하게 합니다.

연말연시 앞두고 어르신의 손주들에게 연하장 쓰고 사진 넣어서 어르신 사는 곳으로 보내게 합니다. 연하장 도착하면 읽어드리고 사진은 앨범이나 액자에 담아서 어르신 방에 둡니다. 어르신 좋아하는 반찬 부탁해서 가족이 가져오게 합니다.

명절, 생일, 제사, 나들이, 가족 행사에 할 수 있는 만큼 어르신과 의논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오가게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든 하루 한 번이든 여느 가족처럼 소식하고, 어르신의 일상을 편지, 소식지, SNS 같은 것으로 전합니다.

평소 이렇게 돕는다면 ‘어버이날 행사’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한다 하더라도 시설 행사로 하지 않을 겁니다. 어르신과, 어르신 가족과 의논하겠죠.

보호자 간담회, 부모교육, 가족 나들이, 가족 체육대회, 송년회, 어버이날 행사, 어린이날 행사… 시설의 행사로 할 게 무얼까 싶습니다.

4.

월평빌라에서는 부모형제와 이렇게 지냅니다.

어머니 챙겨주시는 과일로 냉장고에 과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산 사는 어머니가 보내는 반찬으로 밥상 차립니다.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가 할머니가 싸 주신 반찬 들고 와서 할머니 표 밥상 차립니다. 부모님 댁에 가면 딸 온다고 반찬 해 놓고 기다립니다. 손수 농사지은 콩으로 청국장 띄워 보냅니다. 해마다 농사지은 쌀을 딸에게 보내옵니다. 시설에 사는 언니에게 배즙 보내고 화장품 보내옵니다.

고향에 혼자 계신 아버지에게 반찬 보냅니다. 생일 맞아 부모님 초대해서 식사 대접합니다. 아버지 생신에 집에 초대해서 대접합니다. 동생 생일에 용돈 아껴서 선물합니다. 월급 타서 할머니에게 용돈드립니다. 농장 다니며 농사지은 사과 들고 누나네 갑니다. 농번기에 새참 사서 누나와 자형 찾아갑니다. 명절 선물 준비해서 고향에 다녀옵니다.

막내 생일이라고 집에 다녀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남동생, 여동생, 사촌동생이 방학했다고 놀러옵니다. 군대 간 오빠 휴가 나왔다고 온 가족이 놀러가는 데 함께 갑니다. 아버지와 가끔 목욕탕 가고 야구장 갑니다. 아버지와 낚시하러 갑니다. 비 오는 날 어머니와 찜질방에 갑니다. 어머니 고향으로 어머니와 단 둘이 1박 2일 여행 다녀왔습니다. 어머니와 봄옷 장만하러 대구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기일에 복주 한 병 소고기 한 근 사서 갑니다. 아내 기일, 부모님 기일, 누나 기일에 산소 다녀옵니다.

6개월마다 위관 교체하는 딸의 병원 진료를 부모님이 감당합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가족이 수속하고 할 수 있는 만큼 간호합니다. 심하게 아픈 날은 아버지에게 연락해서 아버지 목소리 듣습니다. 자취방 구하는 데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했습니다. 학교에서 가정통신문 받아오면 가장 먼저 부모님에게 전화로 읽어드립니다.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에 부모님 오시고요.

어버이날, 부모님 생신, 본인 생일에 감사합니다. 특히 본인 생일에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면 많은 경우 부모님들이 우시더군요.

시설 행사로 할 것도, 하는 것도 없습니다.

시설 행사 거두고 가족 행사 거들기 바랍니다.

시설에 살아도 부모형제 자식으로 살기 바랍니다.

* 김귀옥 씨, 김민경 씨를 지원한 월평빌라 임경주 선생, 이지영 선생의 글과 말을 참고했고, 부모형제 자식으로 지내게 돕는 월평 동료들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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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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