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경 아주머니가 시설 바깥에 집 얻어 자취합니다.

월평빌라에는 이미 시설 바깥에서 자취하는 사람이 세 명 있습니다. 농장 주인집 아래채에, 직장 가까운 곳 사글셋방에, 미로 같은 골목길 주택에 삽니다. 시설 정원에 속하고 시설 지원을 받으며, 방학이나 주말에 형편따라 일시 시설에 들어와 지낼 수 있고,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 자취 접고 시설 안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칠 년 전 월평빌라에 이사 왔습니다. 부모형제 소식은 모르고, 아주 어릴 때부터 시설에서 살았습니다. 그 세월이 오십 년. 전에 살던 시설이 아주머니 친정이고 고향입니다. 무엇 때문에 속상하면 이전 시설에 간다 했지 시설 밖에서 살겠다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주머니에게 시설은 세상의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아주머니가 자취를 한답니다. 시설 밖에서 자취하는 사람들을 보며 꿈을 키웠는가 싶습니다. 작년(2015년) 여름, 백 씨 아저씨가 자취한 후로 자취한다는 말을 자주 했거든요. 백 씨 아저씨가 동기가 되긴 했지만 자취를 꿈꾸고 시도하는 발판은 아주머니 둘레 사람들입니다.

아주머니는 삼 년 전부터 신발 가게에서 일합니다. 가게 문 열기 전에 청소하는 일인데 신발 먼지 털고 바닥 쓸고 닦고, 며칠에 한 번은 유리문을 청소합니다. 한 시간 남짓 하는데 이제 능숙합니다. 퇴근길에는 매일같이 단골 미용실에 들러 커피 한잔 하고 수다 떨다 옵니다. 아주머니 사랑방입니다.

오전에 퇴근하면 오후에는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한글교실에 갑니다. 몇 년 다녔습니다. 강사와 회원들과 친해서 회식 자리나 나들이에 함께합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는데, 이사 올 때부터 다녔으니 칠 년 되었습니다. 명절에 집에 초대해서 가족처럼 어울리는 성도가 있고, 전도회 가입해서 회비 내며 활동하고 회원들과 잘 어울립니다. 며칠 전에도 전도회 나들이에 참석했습니다.

아주머니 곁에 사람이 많죠. 많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취의 발판입니다. 직업, 종교, 미용, 취미… 아주머니 일상을 함께하고 돕는 사람들, 이제 이 사람들과 아주머니 자취를 의논할 겁니다. 자취도 이 사람들이 거들고 돕게 할 겁니다. 아마 자취 후의 삶도 그럴 겁니다. 그래야 사회사업이라고 배웠습니다.

김정숙 미용실, 아주머니 단골 미용실입니다. 몇 년 째 머리하는 곳이자 퇴근길에 매일같이 들르는 사랑방입니다. 원장님이 아주머니를 잘 압니다. 귀하게 대합니다. 아주머니도 원장님과 스텝, 그리고 미용실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자취하겠나?" 아주머니에게 이미 여러 번 들었지만 시설 직원이 나서서 자취를 돕겠다하니 염려를 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오십 년 시설에서만 살았는데, 장애가 있는데… 이렇게 저렇게 마음 쓰이겠죠. 그러면서도 근처에 나와 있는 사글셋방을 소개했습니다.

'미용실 이모'라 부르는 경숙(가명) 씨와 가 봤습니다. 방 둘 거실 하나에 바로 이사하면 될 정도로 살림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김정숙 미용실’에서 가깝다는 게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벽에 새까맣게 핀 곰팡이에 마음이 싹 가셨습니다.

미용실에 가서 자취를 꺼냈고 원장님에게 소개 받아 한 곳을 본 뒤로 아주머니 마음이 시설을 떠났습니다. 그때가 2015년 9월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아주머니는 매일, 만나는 사람마다 자취한다고 했습니다.

아주머니의 떠난 마음을 따라 집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미용실 손님에게 추천받은 삼화아파트 일대를 다녔고, 주택가에 사는 어느 권사님에게 부탁했고, 길에서 마주친 지인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갈 곳이나 만날 사람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새해가 밝고 신년을 맞아 미용실 원장님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작년에 원장님 댁에서 하룻밤 지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주머니는 원장님 댁 거실에 누워 TV 본 것이 가장 좋았다 했습니다. 올해도 작년처럼 하룻밤을 부탁했고 원장님이 흔쾌히, 설날에 함께하자고 했습니다.

신년 맞아 목사님에게 인사하러 갔습니다. 한 해 잘 지냈고 한 해 잘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직장 생활 전하고 자취 이야기 꺼냈습니다. 작년에 몇 번 알아봤고 올해는 적극 찾는다고 했습니다. 성도 중에 세놓는 사람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잖아도 소식 듣고 한번 알아봤다며 더 알아보고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2016년 3월, 시설 밖에서 자취하는 박상재 아저씨가 세놓는 집 소개해서 아주머니와 시설 직원이 아저씨 안내 받아 갔습니다. 축협 뒤쪽 주택가였습니다. 방 두 개짜리인데 방이 작고, 화장실과 세면장이 공용이었습니다. 부엌에는 수도만 있고. 여러 가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세 들어 사는 분이 보증금 싸고 전기세 물세 없다고 알려줬습니다. 다른 방도 보았는데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 집을 나와 다른 집에 갔습니다. 거기는 이미 나갔다고 합니다. 알아봐 준 아저씨가 고마웠습니다. 시장에서 순대국밥 대접했습니다.

직원의 마음이 온통 아주머니 자취방에 가 있습니다. 수많은 전단지에서 ‘방 있음’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아주머니도 그렇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 대신 방 알아본다는 소식 전합니다. 아주머니 말과 생각으로는 벌써 이삿짐 꾸려 이사했고, 혼자 밥 해 먹으며 유유자적 시내를 거닐었습니다.

우연히 사글셋방 전단지를 봤습니다. 거창초등학교 뒷길 전봇대였습니다. 집주인과 통화했는데 전세 50만 원에 사글세 150만 원이랍니다. 괜찮은 조건입니다. 아주머니와 함께 갔습니다. 주인집에 딸린 집이고, 방 두 칸에 화장실과 부엌이 실내에 있고, 기름보일러였습니다. 의논해서 연락드리기로 하고 나왔습니다.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습니다. 싫은 기색이 분명합니다. 근처 다른 집이 있어 갔더니 주인은 없고 이웃에 물었더니 좋은 얘기를 하지 않아서 돌아섰습니다. 오늘은 또 여기까지.

지역 일간지 몇 개를 가져왔습니다. 아주머니와 마주 앉아 월세방 광고를 찾았습니다. 집의 위치와 방세를 이야기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들를 생각으로 18만 원 짜리와 20만 원 짜리 집을 메모했습니다.

한글교실 회식하고 강사 자가용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마침 마주친 강사에게 자취하면 도움될 만한 공부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공부시간에 자취하면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 사야하니 이런 글자를 공부하라고 알려줬어요.” 시금치, 콩나물, 오이, 가지…. 아주머니 자취를 위해 온 세상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금이 만기되어 퇴근길에 은행 들러 정기예금으로 전환했습니다. 적지 않습니다. 은행 직원이 서명을 부탁하자 아주머니가 잘 썼습니다. 글 잘 쓴다고 칭찬하니 한글교실 다닌다고 아주머니가 당당하게 답했습니다. 보통예금도 여유 있습니다. 봄옷 사고 아주머니 좋아하는 고기 먹고, 살림 장만할 여유가 됩니다.

죽전동사무소 근처에 방이 있다 해서 연락하고 갔습니다. 주인집 본채에는 할머니가 혼자 살고, 본채에 딸린 아래채가 나왔습니다. 방 두 칸에 부엌과 화장실이 실내에 있습니다. 깔끔했습니다.

"도배했네요. 텔레비전은 없네요. 빨래는 어디 널어요?" 아주머니가 나서서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싱크대 문을 열어 보고 옥상에 가서 빨래 건조대를 확인했습니다. 다른 집을 볼 때와 달랐습니다. 발걸음도 표정도 말도 달랐습니다.

보증금 삼십만 원에 월세 이십만 원입니다. 방세를 조금 깎아 달라 했더니 그건 안 된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오십 평생에 처음 자취하는 형편을 설명하며 한 달 살아 보고 계약하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그것도 안 된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집주인 입장을 이해합니다.

주인집 할머니가 다니는 교회에 마침 월평빌라 입주자 몇 명이 다녀서 아주머니 형편을 짐작한다고 했습니다. 잘 되었다 싶어서 아주머니 형편 다시 설명하고, 종종 어떻게 지내는지 들여다봐 주기를 부탁하니 그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거야 내가 하지. 국 끓이면 한 그릇 줄 수 있고, 김치 담그면 줄 수도 있지." 방세는 못 깎아줘도 인정은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아주머니 마음에 들고 주인 할머니 인정 넘치니 바로 가계약했습니다. 비로소 오십 년 만에 만났습니다.

아주머니가 온 동네 이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날부터 월평빌라 이웃에게 일일이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종종 놀러 올 테니 걱정 말고 잘 지내라, 누구는 누구 잘 돌봐 주라, 누구는 집에 놀러오라고 했습니다.

이사할 날이 촉박했습니다. 마음이 바빴습니다. 살림을 챙겼습니다. 가져갈 것은 옷가지와 이불, 세간 몇 가지뿐이었습니다. 다른 세간은 함께 쓰던 것이라 놔두고, 텔레비전, 냉장고 같은 것을 사기로 했습니다.

살림 장만은 미용실 원장님에게 부탁하자고 하니 아주머니가 좋다고 했습니다. 퇴근길에 간식 푸짐하게 사서 ‘김정숙 미용실’에 들렀습니다. 마침 가게에 손님이 없었습니다. “원장님, 나 이사 가요.” 문 열기 바쁘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시설 직원이 자초지종을 전하고, 살림살이 장만하는 것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렵사리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다음 날 미용실 일찍 문 닫고 가기로 했습니다. 살림 사는 주부답게 살 품목을 메모하자 해서 텔레비전부터 냄비, 수저까지 꼼꼼히 의논해서 적었습니다. 빈 집에 살림 하나씩 챙겨 넣었습니다. 다 마치니 손님이 왔습니다.

아주머니가 월평빌라에 이사 왔을 때, 시집가거나 독립할 수 있으니 아껴 쓰며 돈을 모으자고 했습니다. 칠 년 만에 그날을 맞았습니다. 며칠 전에 만기 적금을 찾았고요. 자취방 규모에 맞게, 형편에 맞게 이것저것 둘러보며 골랐습니다. 미용실 원장님이 아주머니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권하기도 하며 매장을 돌고 또 돌았습니다. 시설 직원 눈에는 느지막이 시집가는 딸 같아 보였다고 합니다.

먼저 텔레비전을 고르고, 냉장고, 가스레인지 순으로 결정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카드로 결제했습니다. 이사하는 날 맞춰 배달하기로 하고 사은품 받아서 돌아왔습니다.

세간은 얼추 장만했고, 이제 이삿짐 옮기는 게 남았습니다. 적당한 차가 필요하고 도와줄 사람도 필요합니다. 이 일은 목사님과 의논하자고 하니 아주머니가 좋다고 했습니다. 방 구한 소식 전하고 축하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당일 일정이 있어 안 되고 다른 성도에게 부탁해 보겠노라 했습니다.

이사 전 날, 퇴근길에 집 청소하러 갔습니다. 직장에서 걸어 십 분 거리입니다. 자취하면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길을 잘 봐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간 다녔던 길이라도 이제는 다른 길입니다. 집주인 할머니가 청소하라고 빗자루며 걸레는 빌려주었고, 설거지하는 데 쓸 만하다며 창고에서 큰 대야들을 내 주었습니다. 청소할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청소 마치고 계약서를 썼습니다. 한글교실에서 배운 실력을 제대로 써먹었습니다. 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강자경', 느리지만 또박또박 꾹꾹 눌러 섰습니다. 보증금으로 준비한 삼십만 원을 아주머니가 건넸습니다. 이제 아주머니 집입니다. 아주머니가 '내 집'이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없어 못 샀던 부엌살림은 작년 설에 집으로 초대해 주었던 김성희 권사님에게 전화로 부탁했습니다. 당신 딸 소식처럼 반겼습니다. 남편 간병 때문에 나가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소식 전하고 축하 받은 것만도 기쁩니다.

여미향 집사님이 부엌살림 사는 데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일정이 워낙 촉박해서 당일 급하게 전화로 부탁했습니다. "집사님, 나 오늘 이사 가요. 그릇 사야 해요. 함께 갑시다." 아주머니가 부탁하고 직원이 자초지종을 다시 설명했습니다. 흔쾌히 같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여미향 집사님이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나왔습니다. '아주머니 이사하는데' 하며 김성희 권사님이 남편 병수발 잠시 놓고 나왔습니다.

아주머니 앞세워 밥그릇과 냄비를 골랐습니다. 권사님이 꼼꼼히 설명하고 권했습니다. 여 집사님이, 컵 같은 것은 여전도회에서 집들이 때 선물할 수도 있으니 다음에 사자고 했습니다. 아주머니 살아온 세월을 알고, 아주머니 사는 집과 형편을 아는, 아주머니를 아는 사람들이라 그에 맞게 설명하고 권했습니다. 시장 한 바퀴 돌았더니 살림이 제법 많습니다. 여 집사님 남편 트럭에 부엌살림 싣고 아주머니 집에 왔습니다.

아주머니는 이사하는 날에도 출근했습니다. 시설 직원이 아주머니 자취방에서 짐 챙기자니 직장 다녀온 아주머니가 합류했습니다. 전자제품이 막 도착해서 놓을 위치 정하고 설치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목사님 부탁받은 교회 집사님이 월평빌라 가서 며칠 전부터 내 놓았던 이삿짐을 싣고 오십 년 만에 장만한 시설 바깥 아주머니 집으로 왔습니다. 이삿짐이라야 별로 없지만 그래도 손길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손이 귀합니다. 집 정리 마치면 집들이해서 초대하겠다고 했습니다.

2016년 4월 1일 만우절, 시설에서 오십 년 살았던 아주머니가 오십 년 만에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만우절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삿짐 정리하니 오후 다섯 시 넘었습니다. 아주머니와 장을 봤습니다. 첫 날 첫 끼 장입니다. 여태 가던 마트에 여태 보던 장이지만 새로웠을 겁니다. 사고 싶고 먹고 싶은 것 고르자는 직원의 말도 여느 때와 달랐습니다. 사과, 고기, 밑반찬, 양념… 고르는 손길도 여느 때와 다를 겁니다. 없으면 시설 공용 물건 갖다 쓰지 하던 때와 다르게 꼼꼼히 챙겼습니다.

밥을 했습니다. 쌀 한 톨, 밥솥 수증기, 밥 냄새… 해 아래 새것이 없다 했는데, 모든 게 새로워 보입니다. 오십 년 밥 먹던 탁자에서 내려 방바닥 밥상에 앉았습니다. 차려 놓은 밥상 대신 계란 프라이 하고 두부 굽고 김 꺼내 상을 차렸습니다.

낮에 왔던 손들이 가고 아주머니만 남았습니다. 미용실 원장님 댁에서 하룻밤 잘 때 가장 기억에 남았다던, 조용한 방에 앉아 텔레비전을 봤습니다.

집주인 할머니가 외출했다 들어오는 길에 아주머니 방문을 열었습니다. 직원이 있는 것을 보고 "아직 안 갔네." 했습니다. 주인 할머니의 말이 분명합니다. 아주머니 집이라는 말이죠. "이제 가려고 합니다. 한번씩 들여다봐 주세요." 부탁했더니, "그런 것은 걱정 말아." 합니다.

아주머니 혼자 남겨두고 나왔습니다.

"주거 지원의 필요성, 관계 지원의 결과. (복지시설) 입주자를 사람으로 보고 사람답게 도우려 하니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게 되고 그 관계를 살리는 데 힘쓰게 됩니다. 입주자의 관계를 살리는 데 힘쓰다 보면, 사회 활동이 늘어나고 활동 반경이 넓어져서, 거처도 유동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입주자의 주거를 다양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주거 지원은 이렇게 입주자를 사람으로 보고 사람답게 도우려는 사회사업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복지요결>> <시설사회사업편>, 2016

사람 구하면 집이 필요하게 되고, 사람 구하면 집은 자연히 생깁니다. 자취, 집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복지시설과 시설 입주자의 형편을 보면 '집보다 사람'이 절실합니다.

* 강자경 아주머니 지원한 월평빌라 최희자 선생의 글과 말을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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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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