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2011년에 방영했던 '빠담빠담'이라는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 동생이 참 좋아해서, CD로 전집을 선물하기도 했는데 정작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가 문득 생각나 케이블 티비를 통해 보는 중이다.

정우성과 한지민이 주인공인 이 드라마 3화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정우성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16년을 보내고 출소하지만, 간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고, 한탄한다.

"왜 하필 나야! 내가 저 하늘에 올라가면 한 번 꼭 물어볼꺼야."

함께 출소한 옥중에서 만난 동생인 김범의 말이 놀랍다.

"...너면 왜 안되는데.

평생 고생만 하신 우리 어머니나 너희 어머니여야 해? 아니면 나?

아니면 앞에 계신 큰형님? 그러면 좀 공평해?"

"왜 형이냐는 안 중요해.

그래서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느냐 가 중요하지!"

이야기의 1화 마지막에 알게되는 일이니, 좀 덜 미안한 마음으로 스포일러하자면, 사실 김범은 정우성의 수호천사로 나온다. 21세기 드라마에 천사, 그리고 상처를 안고 있는 정우성과 한지민의 이야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하다.

사실 내 마음을 다잡을 일에 급급하기에 마음 아픈 드라마는 가능하면 자주 안접하고 싶은 편이다. 어쩌다 생각나서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위 장면은 보자마자 참 잊혀지지 않는 대사가 되었다.

"왜 너면 안되는데..?"

구의동 체육시간의 어머니들의 대화가 떠오른다.

한 언니가 왠지 쑥스러워하며 말한다.

(대부분 우리 대화는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아니니까, 이런 대화는 쑥스럽다)

"가끔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사람에겐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고,

우리 아들을 키울 수 있는 건 나니까 할 수 있는 것 같아.."

언니들의 이런 말이 너무 감사하다.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이지만 언니는 이 말을 정말 깨달은 순간이 있었고, 그 느낌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었다. 귀한 순간이다.

여기에 난 조금 잘난척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본다.

"언니, 내가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우리의 영혼은 긴 인생 아주 정교한 수레바퀴로 여러 생의 많은 이야기들 속에 중간점을 찾아가도록 되어있대. 내가 참으로 귀한 집에 나 자랐더라면 또 한 번은 아주 가난한 집에도 나 보는거야. 반드시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 책에서는 이렇게 말해. 영혼의 대차대조표는 너무나 정밀하여 언제나 0으로 수렴할 수 있도록 선행과 악행, 기쁨과 괴로움, 베품과 모자람이 공존해 가는데, 중요한 건 내가 권한을 많이 갖고 있을 때에 그보다 못한 이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반대의 입장에 서게 하여 상대방의 곤란을 겪어보게 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영혼의 대차대조표를 맞춘다고 말하고 있었어.

언니, 영혼의 긴 일생 중에 어차피 겪어야할 일이라면, 바로 지금 오늘, 나의 영혼이 이 삶을 살아가는 시점에서, 상우의 영혼이 오늘 이 삶을 살아가는 시점에서 지금의 아픔을 겪고 있음을 다행이라 생각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상우를 도울 수 있고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이 삶, 상우를 알뜰살뜰하게 돌보며 겪어갈 수 있는 이 삶이 내게 주어진 것에 참으로 다행이야. 언니 말처럼, 나니까 할 수 있어."

사실 나도 정리가 잘 안되는 이야기를 편하게 말했지만, 언니들이 참 대견하다는 듯이, 예쁘다는 듯이 바라보아주어 내 말이 전달되었음을, 그리고 그런 사랑스런 시선에 고마움을 느꼈다.

흔히들 어떤 종교에서는 장애를 얻은 것을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종교에서는 내세의 귀함을 약속받은 사람들 이라고 한다. 사실, 내심 피식 웃으며 콧방귀 뀔 말이지만, 어쨌든 기왕 그렇다면 이것은 결론적으로는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길고 긴 영혼의 일직선상에는 지극히 정교한 슈퍼울트라 캡숑짱인 컴퓨터가 있어서, 이 생애의 풍족함 또는 그 풍요를 유익하게 다스리지 못하였음은 다음 생의 결핍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 을 깨닫게 하는 시간을 계산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언젠가는 겪어야 할 결핍과 역지사지의 상황을 겪어내며 그 시간을 경과하며 성숙해지는 영혼은 내세에서는 그와 같은 결핍을 겪지 않을 것을 약속받은 것과 다름없다.(그런 시간을 지나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섣불리 "내가 부럽죠?" 라고 약 올리지는 않기로 마음먹는다.)

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언어로 언니들에게 열심히 말하려 한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언니들은 내 서투른 언어를 다 이해한 것 같다. 대견해하며 사랑의 눈길을 보내주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여러분께도 내가 하려는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왜 형인가는 안 중요해. 그래서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느냐 가 중요하지!"

김범 천사님, 그래서 앞으로 정우성님이 걸어가야 할 귀하고 소중한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옳은 길로 이끌어주시길 바라나이다.

나의 수호천사는 언제나 곁에서 지켜주고 바라보아주시는 내 어머님이시다.

어머니가 안 계셨으면 상우는 직장생활을 하는 내가 못 키웠을 것이다.

어머니께선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상우와 나를 더할나위없이 사랑해주신다.

수호천사를 갖지 못한 분들에게는, 권한을 가진 여러분이 기꺼이 수호천사가 되어주시기를. 말씀드리지만, 영혼의 대차대조표, 슈퍼울트라 캡숑짱인 컴퓨터는 정교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기에 늘 계산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리며,

또한, 고난을 겪으며 눈에 어린 눈물의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를 볼 수 있는 이들은, 수호천사를 적극 찾아주시기를..수호천사에게 당당하게, 날 지켜달라고, 날 바라보아달라고 말하실 수 있기를..

그 일은 우리의 고난을 나누어지며, 함께 더욱 더 고귀한 내세 또한 나누어갖는 일, 결국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사족을 덧붙이자면, 윗글은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무엇 하나라도 기여하는 것 없이 사회에 이런 저런 요구를 해도 될까.. 라는 생각에 기인해보았습니다. 군대를 가는 것도, 애기를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정말 쓸모라곤 하나도 없는데, 그냥 이쁘고 잘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작정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할 수 있는건가..한 번 생각해 보았답니다.

발달장애아이를 키우는 한 어머니께선 "우리도 많이 베풀 줄 알아야하고, 아이도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되고, 친절을 베풀어주면 고마움을 알아줘야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되고.." 라고 하셨고

늘 점심을 같이 먹는 회사 차장님 한 분에게 우리가 장애인을 도와야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물으니, "장애인을 도와야지. 그들도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잖아." 라고 하셨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굳이 두 세계를 나눌 순 없는 일이지만 겪어보지 않은 일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니까요. 아직 다 풀리지 않은 고민들은 계속되겠지만, 서로서로 이 사회를 이끌어가며 잘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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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맘이자 새로운 세계, 장애아동을 키우는 삶에 들어선지 10년째다. 아들이 네 살 때 발달장애인 것을 인지하고 1년 휴직하며 아이 교육에 힘쓰는 한편 아이의 장애등록에 따른 고심과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 등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장애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오래 가는 “길 장(長), 사랑 애(愛)” 임을 깨닫게 된다.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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