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교회의 소망부 어머니들과 제기동 성일중학교에 갔었다. 성일중학교 내의 4층짜리 안 쓰는 별관을 활용하여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직업교육의 장이 될 발달장애인직업개발훈련센터(서울커리어월드)가 생길 예정으로 원래는 지난 여름부터 논의하여 가을에 설립될 예정이었는데,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사실, 우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도 커리어월드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어떤 상황에 와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 곳에 가보고 많이 놀랐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천막을 치고 짜장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계신 여러 학부모님들이 애처롭게 모여계셨다.

커리어월드는 고1, 2학년의 발달장애 학생들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년 이내의 발달장애 학생들이 직업교육을 받는 장으로 설립하려한 곳이다. 현재 상황이 어떤 지경인지는 잘 몰랐지만, 성일중학교를 찾아가는 입구가 너무 복잡하고 주변지역이 낙후되어있어, 가는 길에 퍼뜩 든 생각은 '우리 아이들이 이곳을 잘 다닐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학교 바로 앞에는 고가도로가 높이 서 있고, 제기동 사거리쪽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개천을 건너기 위해 다리가 있는 100미터 앞까지 가서 유턴을 하여 들어가야했다. 대중교통을 타려해도 꽤 거리가 있어보였다.

솔직히, '만들어주도록 허락만 해주어도 감지덕지할 사람이 너희들 장애인 부모들이 아닌가, 너희들은 제발 설립하게 허락해달라고 단체로 우리 앞에서 무릎까지 꿇어 빈 사람들이 아니냐, 라고 생각할 지역주민들에게 이 글은 다소 껄끄러울 수도 있겠다.

아니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화장터는 들어와도 되지만 장애인시설은 들어오면 안 된다는 막말을 일삼는 지역주민들, 커리어월드 설립 무효를 위해 행정소송까지 낸 주민들이 이 이 글을 읽는다면, '아 그래 잘 되었네. 그러니 여기 장애인 직업교육센터같은 혐오시설을 지을 생각조차 하지 말고 우리 귀찮게 안하면 되겠네' 라고 하는 말이 바로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아직 내가 학생일 때,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이 바로 우리집 뒤쪽 청계천로에 생긴다고 들었다. 1993년 12월에 개관하여 성동구에서 설립해 '성모성심수도회'에서 위탁운영하는 이곳의 관훈은 '생명은 하느님의 은총이다, 노동은 생활을 풍요케 한다. 자립은 이웃을 기쁘게 한다'이다.

이곳의 정확한 정식 명칭은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이고 장애인을 위해 설립되었다. 그래서 이 복지관 설립공사 이전 어머니를 비롯한 지역 어르신들은, 장애인 복지관이 내 지역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촛불집회를 여셨다.

그 때 기억을 어머니께 여쭈어보면 어머니께선 ‘동네 반상회 회의가 몇 번 있었고, 촛불을 들고 동네 한 바퀴 돌았었다’ 정도로 기억을 하신다. 설립 전부터 지역주민들의 반대와 잡음이 있었던 장애인시설, ‘집값이 떨어질 것이다’, ‘장애인들이 길거리에 걸어가는 걸 마주하면 혐오스러울 것이다’, 당시에도 여러 말들이 많았지만, 주민들은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고, 복지관은 잘 완공되었다. 처음의 여러 우려와는 달리 복지관 설립 후 복지관에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주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성모어린이집이 그러했고, 종종 열리는 바자회가 그러했다. 또 지역주민들을 위한 여러 교육프로그램이 있었고, 주변 지역의 초등학생들은 피아노교습 등 여러 방과후활동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내 초등학교 동창생의 아들녀석도 이곳의 성모어린이집을 다녔고, 어머니께선 어제도 복지관의 바자회에서 3천원에 산 원피스를 자랑하셨다. 꽤 예쁘고 풍성하고 따뜻해 보이는 원피스라 지금 입기 딱 좋다.

현재 상우의 일과는 방과후에는 복지관의 주간보호센터의 선생님, 친구들과 보내며 복지관의 언어, 놀이, 체육, 댄스 수업을 받고 있다. 좋은 교육을 시켜보겠다고 서초동으로 이사가 치료센터에서 보내던 시간이 뒤늦게 안타깝게 여겨진 건, 이곳의 수업내용과 선생님들의 열정이, 돈이 몇 배 더 드는 사립기관만큼 훌륭하고 성의 있음을 알게 된 후이다.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은 지역주민들의 수요도 점점 늘어나게 되어, 몇 년 후 시설을 증축하였다. 기존 건물에 2개층을 더 올리고 옆에 새로운 별관도 들어섰다.

만약 1993년도에 어머니와 지역주민들이 ‘우리 동네에 장애인을 들일 수 없다’며 결사반대의 항전을 벌였다면 그래서 장애인복지관 설립이 안되어 가까운 곳에 복지관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의 삶이 조금 더 많이 피로하고 경제적으로도 조금 더 곤란해졌을 것 같다.

사실 이 곳이 처음 만들어질 때 나는 학생이었고, 이 복지관을 지금처럼 잘 이용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상우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갖는 심정은 똑같다. 아이는 내 이마의 낙인이다. 이렇게 사무치게 예쁘고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더 만들지 않겠다라고 생각한 어느 날들이 있었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이 아이를 잃으면 내 자신이 어찌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 어느 날 난 이렇게 이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은 더 만들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한 적이 있었다. 근원을 알 수도 없는 사랑의 마음이 언제나 우리 상우를 볼 때마다 샘솟으니 정말 이 사랑 어찌한단 말인가. 어떤 아이를 키우던지, 이런 부모의 마음이 다르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장애인은 분명히 일반아이들과 다를 것이다. 그렇다. 불편하다. 스스로가 불편하고 친구들에게, 남들에게 많이 불편을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비장애아이를 키우든, 장애아이를 키우든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똑같다. 기왕이면 내 아이가 다닐 지도 모를 기관이 조금 더 좋은 주변환경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아니 사실 그런 건 중요치 않다.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상관없다. 다만 하나 바란다면 이왕이면 길에서 마주치는 친구들에게도 동네 주민들에게도 사랑받으며 당당히 다니고 싶다. 사랑의 눈길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너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고 우리는 한 동네, 같은 지역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이웃주민이려니 라는 일반적인 생각만 가져주어도 좋으련만.

발달장애 아이들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천치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말이 어려워 표현이 어렵고, 중학생이어도, 다 큰 성인이 되어도 7살 이상의 지능을 갖기가 어렵지만 일반적인 정서는 보통 사람과 똑같이 자라고 성장한다. 사실 요즘 키우기 힘든 비장애아이들에 비해 이렇게 착하고 순수한 아이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보기 드물게 귀한 아이들이다.

왜 부자동네인 강남에는 세울 엄두조차 못 내고, 가난한 우리 동네에 이런 시설을 세우는가 라고 외친 주민이 있다. 강남에는 청담동 고급주택가에 정애학교가 있다. 유치원부터 전공과까지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하여 교육하고 있다. 밀알학교 역시 강남에 있다. 서울지역 유일하게 성동구와 동대문구에만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체장애 아이들이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학교 등 특수학교 자체가 한 군데도 없다. 지으려 하였으나 번번이 반대에 부딪혀 지을 수가 없었다.

왜 (그들의 말처럼) ‘가난한 동네’의 사람들은 스스로 꽃을 피우지 못할까. 조희연 교육감이 제안한 것처럼 커리어월드가 성일중학교에 생기면, 그 곳은 열악한 주위환경을 상쇄하고 아름답게 피어날 꽃의 작은 씨앗이 되어 사람을 모이게 할 것이다. 성동장애인복지관 설립을 반대하던 청계천로의 주민들에게 일어난 일이 똑같이 일어날 것이다. 지역주민이 모여 담소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바자회도 열 수도, 어렵고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주민들이 함께 모여 김장김치도 만들게 될 지도 모른다.

복지관 1층에 자리한 해누리 까페는 올해 마치 전문점처럼 확장하였다. 메뉴도 많이 추가되었다.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아이들이 느리고 어눌하지만 차분한 말투로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한다. 다소 허둥거리는 모습을 볼 때는 참 귀엽다는 생각도 든다.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장애인들이 낯설지 않다. 내 친한 친구의 남동생도 사고로 목 아래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고, 성동장애인복지관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그 분들의 말처럼, 가난하고 열악한 동네이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한 곳은 씨앗을 품었고, 꽃을 피워내어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만들어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곳에 커리어월드가 지어진다한들, 이런 마음으로는 당신들의 삭막한 마음과 시선이 우리 아이들에게 전염되어 내 사랑하는 아이가 상처를 받게 되지 않을까 무척 걱정스럽다. 부모의 권유로 함께 피켓을 들고 나와 장애인혐오시설 설립 반대를 외치는 내 아이의 친구들이 자라서 이 다음에 과연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지 참 걱정스럽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 중 한 명이다. 어느 날 끄는 찢어진 신발 때문에 눈물이 날 정도로 심한 통증을 느끼며 수용소에서부터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뚝절뚝 걸어가고 있었다. 날은 추웠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쳤다. 그는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계속 생각했다. 저녁엔 뭘 먹게 될까? 특별 배급으로 소시지가 나온다면 그걸 빵과 바꿔 먹을까? 신발 끈이 끊어졌는데 끈을 대신한 철사를 어디서 구하지? 작업반에 갔다가 고약한 감독을 만나면 어떡하나? 그러다가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그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그 앞에는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그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 상태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언젠가 이런 강연을 하는 날이 정말로 올 줄은 몰랐습니다"라면서 말이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인간에게 마지막 남은 자유', 즉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내면적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확신, 희망을 잃어서는 안되고 우리들의 가망 없는 싸움이 삶의 존엄성을 손상시키지 않다는 믿음 속에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는 결국 살아남았고, 그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92세로 숨을 거두기까지 많은 책을 쓰고 전 세계를 돌며 강연을 했다."<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김하나 저 / 김영사’ 발췌>

나는 커리어월드에 대한 모든 기사를 읽고 아주 많이 울고 난 후에 이 글을 쓴다. 아무도 모르게 씨앗 속에 담겨있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가능성을 그 분들은 영영 잃어버릴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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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맘이자 새로운 세계, 장애아동을 키우는 삶에 들어선지 10년째다. 아들이 네 살 때 발달장애인 것을 인지하고 1년 휴직하며 아이 교육에 힘쓰는 한편 아이의 장애등록에 따른 고심과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 등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장애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오래 가는 “길 장(長), 사랑 애(愛)” 임을 깨닫게 된다.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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