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연구소에서 '성인발달장애인의 정보접근권 확보방안 연구'공청회를 주최했다. 나는 그 당시 공청회의 원활한 진행을 돕기 위한 보조역할을 하고 공청회에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다.

공청회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서는 연구조사에 참여한 성인발달장애인의 약 80%가 방송에서 나오는 외래어인 '퍼펙트'라는 용어조차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등 알기 쉬운 말 사용욕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장차법, 방송법 등의 법령에 화면해설, 수화 등 시·청각장애인 관련 정보접근권은 명시되어 있는 반면,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명시조차 없다는 점이 한 요인임을 토론자들이 지적했다. 

한편 연구결과 발표 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공청회에서 방송이해와 관련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당시 발달장애인들은 이런 의견들을 냈다.

'드라마는 보지만 뉴스는 내용이해가 어려워 자주 보지 않는다.' 

‘뉴스는 어려워서 잘 안 본다. 뉴스에 이해하기 쉬운 자막을 넣으면 우리 발달장애인들이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

공청회가 끝나고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방송에서 뉴스, 생활경제 등을 발달장애인들에게 알기 쉬운 자막으로 제공하면 발달장애인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요즘 세상이 어떤지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국가정책을 알기 쉽게 이해하면서 발달장애인이 차별에 대응할 힘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텐데.’

그러면서 발달장애인에게 알기 쉬운 정보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권리를 제대로 누리게 되는 시작점이므로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1년이 지나 2012년 연구소는 알기 쉬운 자막사업을 진행했고, 11월 '알기 쉬운 자막' 효과 분석 보고회에서 사업결과를 보고했다. 보고회 당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한 목소리로 알기 쉬운 자막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이를 통해 방송에서 알기 쉬운 자막 등의 정보가 중요하다는 나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런 경험들이 나에게는 이후 UN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에 참여하며 발달장애인의 열악한 방송접근권 등의 정보접근권 현실을 연대단체에 알리게 되는 이유로 작용했다.

2014년 9월 당시, 제네바에서 개최되었던 장애인권리협약 대한민국 정부심의 전에도 이 현실을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에게 알렸다. 결국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는 장애인방송의 질적기준까지 포함시켜 방송에서 읽고 이해하기 쉬운 내용을 발달장애인에게 제공해야 함을 대한민국 정부에 권고했다.

2014년 9월 당시, 필자가 UN장애인권리위원회 분탄 위원에게 한국 발달장애인의 열악한 방송접근권 등의 정보접근권 현실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 유엔인권정책센터, NGO보고서연대

또한 2년 반 전에는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장애인의 영화관람권 개선에 관한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간담회에 참석하기 전 발달장애인 인형극단인 '멋진 친구들'에게 발달장애인의 영화관람권 개선방안을 물어보았고 단원들은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의견들은 다음과 같다.

‘외화의 경우 외래어가 이해가 어렵고 자막간격이 너무 빨라 내용이해가 어렵다. 자막의 단어를 알기 쉽게 바꾸고 자막들 간의 시간간격을 늘렸으면 한다.'

'영화 홍보 시 영화소개 및 영화관 소개 등의 알기 쉬운 정보로 리플렛을 제작하면 발달장애인이 영화관 접근 시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공감했고 이 의견들을 간담회에서 얘기했다. 그런데 알기 쉬운 정보의 중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자막들 간의 시간간격을 길게 하면 영화가 재미없어지지 않느냐는 우려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2011년, 2012년도의 방송접근권과 관련된 경험들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쳐서인지, 알기 쉬운 자막 등의 정보가 영화에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될 때 발달장애인은 영화를 보며 사람들과 교감하고 의미 있는 여가생활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언론을 통해 발달장애인에게 선거는 남의 일이라는 이야기도 접하면서 선거권을 발달장애인이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알기 쉬운 선거공보가 필요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나 여기 있어!' 제작과 제작보고회 과정을 경험하며 알기 쉬운 정보를 통해 발달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한 시작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직장에서 4년여 시간을 보내며 나는 발달장애인에게 알기 쉬운 정보가 중요한 이유가 다음의 두 가지임을 배우게 되었다.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알며 행사하고 책임을 다하기 위함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해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함이다.'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나 여기 있어’ 1, 2조 내용 ⓒ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알기 쉬운 정보 등 발달장애인의 알 권리를 보장해 방금 위에서 말한 이 두 가지 이유가 현실이 되도록 장차법에서의 발달장애인 관련 정당한 편의('알기 쉬운 정보' 등) 조항 삽입 등의 법적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발달장애인법 제10조 알 권리 관련조항을 실효성 있게 실현하려는 정부, 지자체의 고민과 실천의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알 권리 실현을 위해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참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바로 'Nothing about us, without us(내가 직접 관여됨이 없이는 나에 대한 결정을 하지 말라.')'라는 장애인당사자주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 발달장애인법 제11조에 자조모임 관련 조항이 있는 만큼 알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에 대해 국가에서 예산지원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지원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이 알 권리에서 배제 받아 차별을 받는 현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정부, 종사자, 전문가, 발달장애인 당사자, 부모 등 모두가 전력을 다하여야 한다. 그럴 때 발달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한 사람의 시민으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당당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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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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