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이 목욕은 이렇게 지원한다. 휠체어에 앉히면 혼자 힘으로 샤워실까지 온다. 방에서 샤워실까지 족히 십 분은 걸린다. 그동안 직원은 갈아입을 옷과 수건, 목욕용품을 챙기고, 욕실 바닥에 매트를 깐다.

은성이가 도착하면 휠체어의 가슴 벨트를 풀어준다. 배 벨트는 그대로 둔다. 그래야 스스로 상의를 벗을 수 있다. 바지와 양말을 입은 채로 미리 깔아놓은 매트에 누인다. 누운 채로 은성이가 바지와 양말을 벗는다. 아직 바지와 양말은 잘 벗지 못하기에 상황을 봐서 돕는다. 휠체어에 큰 수건을 깔아놓은 뒤 직원도 옷을 벗는다.

매트 위에 은성이를 앉히고 직원이 뒤에서 안는다. 두 다리로 은성이의 다리를 고정하면 둘 다 넘어지지 않는다. 은성이 손에 샤워기를 쥐여 주면 스스로 머리에 물을 묻힌다. 샴푸를 오른손에 짜주면 두 손으로 머리를 감는다. 다시 샤워기를 주면 헹군다.

다음은 양치, 치약 묻힌 칫솔을 입에 넣어 주면 양치를 한다. 조금 닦다가 도와 달라 하면 마무리만 돕는다. 칫솔 헹구는 것은 꼭 본인이 하려고 한다.

샤워 타월에 비누를 묻혀 건네면 거품 내서 손닿는 곳까지 닦는다. 아직은 상체와 다리만 겨우 닦는다. 그나마도 조금 하고는 도와 달라 한다. 비눗물 씻는 것은 샤워기를 쥐여 주면 혼자 한다. 좋아한다.

목욕을 마치면 바닥 청소하는 걸 좋아한다. 샤워기 쥐여 주면 바닥 여기저기를 물로 씻는다. 칫솔 헹구는 것과 바닥 청소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몸을 일으켜 큰 수건 깔아 놓은 휠체어에 앉히고, 배 벨트를 채운다. 수건을 주면 손닿는 데까지 스스로 몸의 물기를 닦는다. 그동안 직원은 바닥을 정리한다. 은성이 몸에 남은 물기는 직원이 닦는다.

옷 입을 때는, 상의는 머리만 꿰면 나머지는 혼자 입는다. 하의는 팬티, 내복, 바지 순으로 다리에 걸쳐 놓고, 은성이를 일으켜 세워 차례로 입힌다. 머리를 잘 말리고 로션을 바른다. 로션을 손에 짜 주면 곧잘 바른다. 손이 닿지 않는 등과 엉덩이는 직원이 돕는다.

은성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살펴 스스로 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서은성 목욕 지원 요령, 2013년 1월 30일, 임우석>

은성이 지원하는 월평빌라 임우석 선생이 쓴 <서은성 목욕 지원 요령>을 발췌․편집했습니다. 임우석 선생의 말처럼, 장애 정도가 어떠하든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살펴 스스로 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욕, 빨래, 식사, 청소 같은 일상의 여러 과업을 세분화하여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합니다. 할 수 있는 것도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하는지 살피고, 무엇을 조금 거들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궁리합니다. 할 수 없는 것도 무엇이 얼마나 안 되는지 살피고, 무엇을 조금 거들면 조금이나마 혼자 할 수 있을지 궁리합니다.

'은성이 손에 샤워기를 쥐여 주면 스스로 머리에 물을 묻힌다. 샴푸를 오른손에 짜 주면 두 손으로 머리를 감는다', 어떻게 이해하셨습니까? 뇌성마비를 앓은 은성이가 샤워기로 얌전히 머리에 물을 묻히고, 두 손으로 얌전히 머리를 감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오, 아닙니다. 샤워기 물줄기는 온 사방으로 뻗고, 머리에 묻힌다고 했지만 실은 어쩌다 머리에 묻었다고 해야 합니다. 머리를 감는다고 했지만 실은 허우적거리는 두 손으로 머리를 때렸다고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샤워기를 쥐여 주고, 손에 샴푸를 짜 주고, 칫솔에 치약 묻혀 건네고, 타월을 손에 쥐여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까닭은 장애인 당사자의 ‘삶’에 있습니다.

“(시설) 입주자는 사람입니다. 살아 있는 한 끝까지 사람이고 싶은 사람, 사람이어야 할 사람, ‘사람’입니다. 사회사업은 입주자가 사람답게 살게 돕습니다. 복지를 이루는 데 주인 노릇 하거나 주인 되게, 자기 삶을 살게, 사람들과 어울려 살게, 사람 구실 잘하게 돕는 겁니다.

복지를 이루는 데 주인 노릇 하거나 주인 되게 돕습니다.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고 약한 만큼 거들어 줍니다. 거들고 또 거들다 다 해 주게 되더라도 그래도 당사자가 주인 되는 당사자의 일이게, 그렇게 여기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합니다.

그리하여 당사자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을 늘려가고 그 수준을 높여 갑니다. ‘내 일이다. 내가 한다. 내가 했다.’ 하는 일이 많아지게 합니다.” ≪복지요결≫ <시설사회사업편>, 2016.

약한 만큼 거들어 준다, 거들고 또 거들다 다 해 주게 되더라도 그래도 당사자가 주인 되는 당사자의 일이기에, 그렇게 여기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게, 애쓰는 겁니다.

<언젠가 혼자 목욕할 날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 오늘은 휠체어 벨트 푸는 것을 시도했다. 가슴 벨트는 혼자 풀 수 있지만 배 벨트는 못 한다.

오늘은 은성이가 나서서 배 벨트를 풀어 보겠단다. 시간을 충분히 주고 풀어 보라 하니 몇 번 시도 끝에 성공했다. 요즘은 다리 벨트에서 다리 빼는 것도 잘한다. 잘했다고 칭찬했다. 서은성 지원 일지, 2014년 8월 11일, 임우석>

앞서 은성이 지원 요령을 쓴 때가 2013년 1월, 그때는 풀 수 있는 벨트가 없었죠. 1년 7개월 만에 가슴 벨트와 배 벨트를 스스로 풉니다. 다리 벨트에서 다리를 뺄 수 있게 되었고요. 기대하며 기다린 결과입니다.

<스위치 달린 샤워기가 있다. 누르면 물이 나오고 다시 누르면 잠겼다. 혼자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 쉽게 성공했다. 평소 손을 많이 사용하게 하는데, 그 덕분인가 싶다. 머리 감고 헹구는 것, 비누칠 하고 헹구는 것도 곧잘 했다.

은성이가 나서서 “엉덩이도 내가 씻을게요.” 했다. 직원이 돕는 부분이 줄고 은성이가 하는 부분은 늘어난다. 은성이도 그게 좋은지 신나서 한다. 목욕 마치고 로션도 스스로 발랐다. 로션을 손에 짜 주면 얼굴, 목, 팔, 배는 은성이가 바른다.

목욕을 마친 은성이가 한마디 했다. “오늘 목욕 내가 다 했네.” 서은성 지원 일지, 2014년 10월 6일, 임우석

어제처럼 혼자 하도록 기다렸다. 전에는 몸을 헹구고 샤워기를 아무데나 던져놓았다. 물을 틀고 잠그느라 직원이 샤워기를 쥐여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샤워기를 사용할 수 있으니 이제 본인이 샤워기를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함부로 놓지 않고 다시 쥐기 편한 곳에 잘 두려고 애썼다. 이렇게 요령을 익히나 보다.

오늘도 한마디 했다. “엉덩이 내가 씻을게요. 수건도 내가 씻을게요. 이제 선생님이 안 도와 줘도 돼요.” 서은성 지원 일지, 2014년 10월 7일, 임우석>

혼자 할 수 있는 게 또 늘었습니다. 이번에는 샤워기 물을 틀고 잠그는 것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샤워기를 찾은 덕분이죠. 은성이가 아주 잘 사용했고요. 그랬더니 신나서 더 많은 것을 스스로 하고, 더 잘하려고 했습니다. 급기야 ‘오늘 목욕 내가 다 했네. 이제 선생님은 안 도와 줘도 돼요.’ 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모습, 이런 거죠. 사회사업 제대로 잘한 증거, 이것이죠.

“만약 당신의 아이가 언젠가는 컵으로 물을 마시는 기술을 습득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당신은 아이가 성공하기 전에 가능하면 보다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반면에 당신이 그렇게 기대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가 보내는 첫 번째 어려움의 신호에 도움을 준다거나 그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그가 그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뇌성마비 아동의 이해≫, 일레인 게라리스 지음, 시그마프레스

기대한다면 더 많은 기회를 주라고 합니다. 어떤 기회요? 컵의 물을 쏟고, 컵을 떨어뜨리고, 심지어 컵을 놓쳐 컵은 산산이 부서지고 바닥은 엉망이 되는 그런 기회를 주라는 겁니다.

떨리는 손 뻗어 있는 힘 다해 혼자 하려는 찰나에 '잠깐! 잠깐 잠깐! 내가 도와줄게. 도와 달라 하지 그랬어' 하며,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겨 주고 한다면 나중이 어떨까요? 좋은 마음에서 그런다지만, 기대한다면 기회를 주고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월평빌라 동료들에게 무엇이 가장 어려운지 물었더니, 기다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기대한다면 기회를 주고 기다려라, 사랑한다면 기회를 주고 기다려라. 할 수 있는 거기까지 하게 함이 ‘사람다움’을 지키고 살리는 겁니다.

* 은성이를 지원한 월평빌라 임우석 선생의 글과 말을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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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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