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졸업하면 뭐하지, 어떡하지?

학교 다닐 때는 시간, 공간, 활동이 분산되어 활력이 있고, 산만하고 떼쓰는 행동도 분산되었습니다. 이제 졸업이라니 막막했습니다. 실마리로 아르바이트를 궁리했습니다. 졸업까지 일 년,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하자고 민경(가명) 씨에게 찬찬히 설명했습니다.

강변에 늘어선 커피숍 몇 군데 갔습니다. 직업체험에서 바리스타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으로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말을 못 하고, 쉬 짜증내고, 청소나 설거지, 서빙을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알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나섰습니다.

7월의 커피숍 아르바이트는 경쟁자가 너무 많고 쟁쟁했습니다. 한 곳에서 한번 해 보자고 했는데, 민경 씨가 말을 못 하니 그 자리에서 안 되겠다고 했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은 지나고, 어느 날 파마하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커피숍에 들렀습니다. 가게 이름도 사장님도 우아한 클렌첸. 커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언제 갔는지 민경 씨가 사장님 뒤에 바짝 서있었습니다. 사장님이 주춤하다가 “재미있어 보이나 봐요.” 하며, 이내 부드럽게 맞아주었습니다.

이렇게 된 거 자초지종 설명하고 커피 배울 수 있는지 부탁했습니다. 민경 씨 만큼 직원도 난데없죠. 월평빌라 직원은 묻고 부탁하는 걸 잘합니다. 거절당하는 것도 잘하고요. 난데없는 부탁에도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지푸라기가 여기 있었네요. 그렇죠. 지푸라기는 떠다니는 것이지 계획에 있는 게 아닙니다. 파마하러 나선 길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했습니다.

다음날부터 바리스타 수업을 받았습니다. 공짜로 배우면 안 된다 싶어서 수업료 대신 일하겠다 했습니다. 바닥 쓸고 테이블 닦는 것도 배워야 할 형편인데, 수업료 대신 일하겠다는 이상한(?) 논리도 받아주었습니다.

청소 마치고 바리스타 수업을 했습니다.

“민경 씨, 민경 씨는 카페라떼를 제일 좋아하죠? 카페라떼 만들어 볼까요?” “예, 예.”

원두 가는 법부터 커피머신 사용법까지 차근차근 알려주었습니다. 직접 해 보라 하고, 어려워하는 건 손을 잡고 했습니다. 어설프고 번거로우니 가만히 있으라 할 수도 있는데, 손을 잡고 할지언정 대신하지는 않았습니다.

“민경 씨, 카페라떼에는 어떤 재료가 들어가죠?” 민경 씨가 냉장고를 가리켰습니다. “직접 찾아와 볼래요? 맞았어요. 잘 기억하고 있네요. 카페라떼에는 우유가 들어가요. 잘 기억해요.”

가르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진지했습니다. 내린 커피는 예쁜 컵을 고르라 하여 거기에 따릅니다. 민경 씨표 민경 씨 커피.

그해 여름방학 내내 클렌첸에 출근해서 바리스타 수업 받고, 바닥 쓸고 테이블 닦았습니다. 수업료 내고 배워야 하는데, 민경 씨가 일당 꼭 받아야 한다고 떼써서 일당 천 원씩 받았습니다.

개학하면서 바리스타 수업도 아르바이트도 마쳤습니다. 이제 클렌첸은, 학교 마치고 가는 곳, 좋은 일 있을 때 우울할 때 가는 곳, 가면 반기는 사람 있는 곳, 고향 못 가는 설움 달래는 곳, 민경 씨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시설에서, 울고 떼쓰고 때리고… 하는 민경 씨가 클렌첸에만 가면 요조숙녀가 됩니다. 클렌첸에 마법이 있는 걸까?

그렇다고 아무 탈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어느 날은 울고 떼쓰는 바람에 손님이 다 나가고, 자기 얼굴을 손으로 마구 떼려 놀라게 하고….

시설 직원이 사장님 찾아뵙고 민경 씨 형편을 알렸습니다. 민경 씨 살아온 이야기, 시설에서 또 학교에서의 모습, 기분 나쁠 때 하는 행동, 마법의 공간 클렌첸에서조차 사장님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 몇 번의 난리 뒤라 좋지 않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사장님이 가만히 듣다가 당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우리 가게 아르바이트생이 민경 씨와 같은 학교에 다녀요. 그 아이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좋지 않은 이야기까지. 손님들 있을 때 제 앞에서 몇 번 울고 떼썼죠. 아는 사람이 그런 사람을 가게에 두면 안 된다고도 하대요.”

사장님은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겠죠. 열 달을 함께했는데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니 더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 많이 사랑 받으면 나아지지 않겠어요? 제가 보니까, 민경이는 늘 관심 받고 사랑 받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아요.”

한 마디 한 마디가 위로였고 희망이었습니다. 먹먹했습니다. ‘다 알고 계셨구나, 그래도 내색 한번 하지 않으셨구나.’

“우리 집이 넓으면 하룻밤 같이 지내고 싶어요.”

오히려 더 품지 못하는 자기 형편을 아쉬워했습니다. 언제 민경 씨와 펜션에서 하룻밤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아, 그럼 이번 달 우리 강진여행 갈 때 같이 가면 되겠네. 민경 씨와 같이 가도 될까요? 여행사 하는 친구가 가끔 답사여행을 가요. 아는 사람 몇이 같이 가는데, 이번 답사여행에 민경 씨랑 같이 가도 될까요?”

민경 씨가 옆에 있었다면 벌써 “네! 네!” 했을 겁니다.

버스 잘 타는지, 걸음 잘 걷는지,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버스 기차 타고 밀양 아버지 댁에 가끔 다녀오고,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야영 잘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야영에서 휠체어 타는 친구를 지극정성으로 도왔는데, 이렇게 할 만한 역할을 맡기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쯤 듣자 사장님이 함께할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일정 잡으면 민경 씨와 의논하기로 하고, 4월 소매물도 답사여행이며 앞으로 얼마든지 있으니 형편 될 때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예상대로 민경 씨는 당장이라도 가겠다는 기세였습니다. 옷, 화장품, 머리핀, 반지, 시계가 필요하다고 온몸으로 말했습니다. 여행이라 하면 체험학습, 소풍, 수학여행이 고작이었고, 그나마 밀양 아버지 댁 다녀오는 게 장거리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이 들뜨고 기대했습니다. 옷, 파우더, 립스틱, 네일 용품, 반지, 시계를 새로 샀습니다.

새 옷 입고 클렌첸에 갔습니다. 사장님 손을 잡고 흔들고, 어깨를 주무르고…, 기쁘다 고맙다는 뜻입니다. 최고의 감사 표현입니다.

“어머, 민경아, 이렇게 예쁘게 입고 가려고? 민경이가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어. 우리 이번에 가서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재미있게 놀자.”

여행 중에 울거나 힘들어 하면 연락하라고 사장님에게 부탁했습니다. 아무 염려 없다는 듯 걱정하지 말라 하고, 자주 다니다 보면 나아질 것이라며 오히려 시설 직원을 안심시켰습니다.

민경 씨를 마주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민경아, 나는 네가 울고 떼써도 함께 갈 거야!” 하며 민경 씨를 안심시켰습니다.

잘 도착했을까, 휴게소에서는 별일 없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점심 즈음 사장님에게 전화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민경 씨 투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차,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차분하게 ‘괜찮다, 잘 놀다 가겠으니 걱정하지 말라.’ 했습니다.

민경 씨 투정은 시작하면 끝을 모릅니다. 거기에 울기까지 하면 큰일인데, 수화기는 내려놓았지만 염려는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진주 들러 저녁 먹고 집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졸였던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민경 씨 자랑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피곤할 텐데 내내 차창 밖을 구경하는가 하면, 산책로가 길어 조금 힘들어 했지만 일행이 다독이니 다시 잘 걸었고…. 민경 씨가, 당신이, 함께한 사람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했습니다.

3월 강진, 5월 곡성 답사여행에 함께했습니다. 일본 여행도 제안 받았는데 사정이 있어 못 갔습니다. 앞으로도 함께할 겁니다.

겨울방학에도 클렌첸에서 수업 받고 일했습니다. 여름에는 시설 직원이 동행했는데, 겨울방학에는 민경 씨 혼자 하루 한 시간 일하고 수업 받았습니다. ‘겨우 한 시간’ 할지 모르겠지만, 시설 직원 없이 하루 한 시간 일하고 수업 받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몇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일당을 꼬박꼬박 저금했습니다. 민경 씨는 믹스커피를 좋아해서 돈이 생기면 그게 얼마든 누구든 믹스커피와 바꿉니다. 그런데 일당 천 원은 꼭 저금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이 삼만 원입니다. 겨우 삼만 원 할지 모르겠지만, 민경 씨에게는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돈 모아서 파마할 거랍니다.

민경 씨는 종이를 찢어서 주머니 불룩하게 넣어 다닙니다. 남의 통장을 몇 번 그랬습니다. 통장 만들면 또 그럴까 걱정했는데 자기 통장은 절대 찢는 일이 없었습니다.

씻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클렌첸 가는 날은 먼저 씻고 기다립니다. 종일 집에 있는 날은 울고 떼쓰는 게 심한데 클렌첸 가는 날은 그나마 차분합니다.

이런 까닭에 졸업 후에도 계속 일하고 싶었습니다. 아르바이트도 졸업 후를 대비한 거였고요. 이런 이야기를 클렌첸 사장님에게 쉬 꺼내지 못했습니다.

겨울방학 어느 날, 곧 졸업이라고 하니, 졸업하면 어떻게 지내냐며 사장님이 먼저 꺼냈습니다.

“민경이도 졸업하면 일해야지? 난, 내가 없을 때 민경이가 손님한테 커피 만들어 주면 좋겠는데? 민경이도 그랬으면 좋겠지? 우리 지금부터 열심히 해서 졸업하면 여기서 일하자!”

졸업 후 진로를 진지하게 의논하는 이 말을 부모나 시설 직원이 한 게 아닙니다. 민경 씨가 자주 들르고 가끔 아르바이트하는 커피숍 사장님의 말입니다. 아, 정말, 세상은 이런 곳이었던가요.

졸업하면 뭐하지? 시설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런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걱정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기적처럼, 졸업 전이나 졸업하고 얼마 안 있어 일할 곳을 찾으니 걱정은커녕 기대를 합니다.

민경 씨 졸업했습니다. 일주일에 이틀, 클렌첸에서 일합니다. 우선 이틀 하고 조금씩 늘려가자고 했습니다. 가끔 사장님과 외식하고, 손님 없는 날은 사장님과 수다 떨다 옵니다. 올해도 답사여행 함께 가고, 기회가 되면 둘이 좋은 곳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습니다.

사장님에게 크게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민경 씨 기분이 좋지 않던 날, 클렌첸에서 크게 울었습니다. 클렌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자기 뺨을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사장님이 나서서 달랬습니다.

“어머, 민경아. 나, 민경이 이런 모습 처음 봐. 왜 그러는 거야. 울지 말고 얘기해 봐.”

소용없었습니다.

손님이 참다못해 나갔습니다.

“민경아, 민경이가 이렇게 크게 우니까 손님이 나가잖아.”

소용없었습니다.

“민경아, 나는 너랑 여행 가려고 했는데… 민경이가 이러면 속상해. 울지 말고 이야기해 봐.”

손을 내밀었습니다.

사장님에게 천 원을 받고 그쳤습니다.

“이렇게 돈 받고 싶으면 주말에 와서 일하고 받자. 알겠지?”

손님을 내쫓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렇게 차분할 수 있을까요? 화를 내거나 여행을 미끼로 협상하기 십상이잖아요.

‘이러면 여행 같이 못가! 울음 그치면 같이 갈게.’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손님 눈치 안 봤습니다. 민경 씨를 살피고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치사한 협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말, ‘나는 네가 울고 떼써도 함께 갈 거야.’ 이 말을 지켰습니다.

장애인을 이해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세상 탓하며 장애인의 삶터를 분리하고 격리하려 합니다. 장애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세상이 되면 그때서야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얼마면 될까요? 세상 사람 얼마가 이해하고 배려해야 더불어 살 수 있을까요? 절반, 60%, 70%…. 그때가 언제일지, 그런 때가 오기는 할지, 그런 때가 필요한지.

한 사람으로 족할 때가 있습니다. 머리하는 데에 한 곳이면 충분하고, 일하는 데에 한 곳이면 충분하고, 밥 먹는 데에 한 곳이면 충분합니다. 장애인이 머리하고 일하고 밥 먹는 것도 같습니다. 한 사람, 한 곳으로 족할 때가 있습니다.

월평빌라는, 지역사회가 얼마나 장애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지 분석하여 개선 개발하는 데에 관심이 없습니다.

장애인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더불어 함께할 ‘한 사람, 한 곳’을 찾는 데에 집중합니다. 찾는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를 만났고 아이를 만났고, 동료를 만났고 친구를 만났듯이 말이죠.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여기 클렌첸이 있습니다.

*민경 씨를 지원한 월평빌라 이지영 선생의 글과 말을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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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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