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위안부 어르신들과 관련해 한일 양국 간의 합의가 있었는데 이를 보고 분노한 국민들이 상당히 많았다. 일본정부의 정신적, 물질적 배상에 대한 법적 명시를 우리 정부가 일본 측에 당당하게 요구하지 않은 점, 정부차원의 배상금이 아닌 단순 위로금이라는 명목 등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 철거가 위로금 지급의 전제라는 소문도 돌면서 나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러는 사이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군에게 피해를 당한 위안부 어르신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계신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2월 24일, 위안부 어르신들의 증언을 토대로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고발한 영화 ‘귀향’이 전국에 개봉되었다. 나도 삼일절을 맞아 ‘귀향’을 영화관에서 관람했다.

영화에서는 일본군이 그 당시 젊거나 어린 우리 여성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중국 길림성 목단강까지 강제로 끌고 간다. 거기서 여성들을 성노리개로 보며 성폭행한 것, 정당한 이유 없이 뺨을 때리고 폭력을 행사한 것 등을 스크린으로 보며 나라를 잃은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영화 중간에는 여성 4명이 이런 지옥 같은 위안부 생활에서 탈출을 결심하며 탈출하려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일본군은 탈출 주동자에게 온갖 물리적 폭력을 가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

‘너희는 인간이 아니다. 다만 황국의 암캐일 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일본군이 이런 생각을 했으니 그 당시 여성인 어르신들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대상화하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왔다. 하지만 일본군의 이 말이 화가 나면서도 도무지 내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았다. 왜냐면 1년 반 전쯤 염전공대위 활동을 했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염전공대위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가해자인 염전업주에게 법원은 실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염전업주가 장애인에게 폭언을 퍼붓고 임금을 지불하지 않은 것은 지역관행인데 왜 나만 처벌하냐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경찰, 법원 등에 밝혔다고 했다. 그리고 가해자가 관리한 피해자 통장에 밀린 임금을 지급했다 한다. 법원은 이를 감안하며 염전업주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한다. 이 사실에 나뿐만 아니라 공대위 참여단체들이 분노하며 성명서를 쓰기로 했다.

이후 이에 관련해 염전공대위에 소속된 단체 중 내가 근무했던 단체와 또 하나의 장애계 단체가 성명서를 냈다. 내용은 발달장애인에게 자행된 인권유린을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염전업주를 강력 처벌하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염전업주들이 지역관행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피해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발달장애인들이다. 염전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에게 폭언을 퍼붓고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 관행이라면 염전업주들은 발달장애인들을 존엄성이 있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너희는 인간이 아니다.’고 일본군처럼 말을 하지는 않지만 염전업주에게는 ‘발달장애인은 인간이 아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짐승만도 못하다는 등의 인식이 있기에 인권유린 행위를 관행처럼 저질러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법원의 집행유예 판결을 보며 아직도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을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소중하게 대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얼마 전에는 서울 성일중학교에 발달장애인직업개발훈련센터(일명 서울커리어월드)를 설립하는 것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발달장애인 시설보다 쓰레기 소각장이 낫다.'

이 언어적 폭력을 접하며 일부 주민들에게는 발달장애인을 인간이 아닌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서 그 주민에게 항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발달장애인직업훈련시설 건립 반대는 헌법의 평등정신에 위배된다는 권고를 내렸다.

 

이외에도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발달장애인 인권유린, 지적장애인 성폭력, 장애 감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인권유린을 당한 발달장애인을 판사가 법정에 세워 취조하듯이 물어보는 분위기 등을 기사로 접한다. 나로서는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발달장애인은 인간이 아니다.'는 시선이 있어 발달장애인에게 인간다운 대접을 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는다. 발달장애인이 차별과 동정을 받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현실이 착잡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발달장애인도 권리가 있으며,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투쟁하고 노력했다. 그 노력 끝에, 2014년 4월 29일 발달장애인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이후 시행령까지 만들어지면서 작년 11월 21일부터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장애계에서는 계속 탈시설 운동을 벌여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가 인간답게 사는 환경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노력들이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도 존엄성을 지닌 소중한 인간이다.'라는 인식을 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의 장기적 노력을 지금부터 꾸준히 하지 않는다면, 발달장애인에게는 발달장애인법, 탈시설 운동 등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기에 정부, 지자체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장애인식교육 계획과 교육의 질 제고방안 마련, 그리고 상식적, 합리적 판결을 통해 장애인인권유린을 자행한 가해자를 엄중 처벌 하도록 사법부가 장애에 대한 인식 및 감수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 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진술조력인제도 등을 통해 당사자가 경험한 인권침해에 대해 도움을 받아 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 등의 환경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사자들이 자신의 장애를 정확히 알릴 기회를 잘 살리도록 노력해 사람들이 발달장애를 좋게 생각하게 하고, 이와 관련해 당사자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의사를 전달했을 경우 지원자가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정부, 지자체, 장애계, 당사자 등 모두가 합심해 발달장애인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 부모들이 꿈꾸는 발달장애인이 행복한 세상이 현실이 되는 그 날이 오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나의 간절한 바람을 쓰고 글을 마치겠다.

'발달장애인도 사람으로 존중받고 어울리며, 사람답게 살고 싶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