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허락 받았어요?"

강사가 박옥선(가명) 아주머니를 꼭 집어 물었습니다. 허리가 구부정한, 말이 어눌한, 얼굴이 많이 야윈 아주머니가 남달라 보였는지 재차 물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옆에 있던 시설 직원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수영장 다니는 데 허락을 받아야 하나, 수강료 내고 등록했으면 그만이지 싶은데, 그렇게 물으니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정말이냐는 두 번째 질문은 좀 그렇죠.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정말로 무엇이 마땅찮은지 사무실로 가서 확인하더니, 앞선 두 번처럼 난데없이 "아주머니도 줄 맞춰 서세요." 하고 말았습니다. 생애 첫 수영 강습, 짐작보다 가혹했습니다.

장애인은 장애인 스포츠센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낯설게도, 장애인이 일반 스포츠센터를 이용한 겁니다. 그러니 강사는 낯설고 당혹스러웠겠죠. 우리 사회의 민낯입니다.

수강생들은 어땠을까요? 짐작이지만, 짐작이라서 조심스럽지만, 이랬을 것 같습니다. 아이 학교 보내고, 남편 직장 보내고, 집안일 마치고, 시간 내서 수영 배울 요량으로 왔겠죠. 그런데 우리 반에 장애가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있는 겁니다.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내가 잘 도와야지 하고 선뜻 나서서 환영하기를 바란다면, 순진하다 할까요? 왜 하필 우리 반이야 다른 반으로 옮길까, 하는 마음은 아니었을까요? 저 사람은 나와 상관없어, 강사가 알아서 하고 사무실에서 알아서 하겠지, 하지는 않았을까요? 어쨌든 아주머니는 일주일에 세 번 수영장에 갔습니다. 시설 직원도 매번 아주머니를 따라 갔고요.

강습 중에 자유 시간이 있습니다. 수강생은 자유롭게 수영하고, 강사는 쉽니다. 한 달쯤 지났을까, 그날은 자유 시간에 강사가 아주머니에게 잠깐 남으라 했습니다. 이번에도 난데없긴 마찬가지. 그런데 ‘아주머니는 호흡이 안 되니 이렇게 해 보세요. 집에서나 강습 후에 이걸 연습하세요.’ 하는 겁니다. 자기 쉬는 시간에 개인 교습하는 거죠.

불과 한 달 전 허락 받았냐는 기세는 어디 가고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요? 아, 시설 직원이 강사를 따로 만나 '장애(인)의 이해, 지역주민의 역할' 따위를 알렸다고요? 아닙니다.

그가 살던 세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장애인을 그가 사는 세상에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만나 보니, 자기 삶의 한 가운데에서 대면하니, 비로소 어떤 울림이 있었다고 봅니다. 내 삶터, 내 일터, 그 한 가운데서 만나면 어떻게 말을 걸고 어떻게 돕고 어떻게 어울리는지 알게 됩니다.

'중년 여성 세 명이 만나면 계를 만든다.'는 말이 우리 지역에 있습니다. 열댓 명 중년 여성들이 일주일에 세 번 꼭 만나니 계모임 조건으로는 아주 좋죠. 아니나 다를까 맏언니 애숙(가명) 씨가 계모임을 주선했고 다들 찬성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밥 먹는 계를 만들었습니다.

집집이 돌아가며 밥 먹는데, 여건이 안 되면 애숙 씨가 하는 식당에서 먹습니다. 애숙 씨가 먼저 식당으로 회원들을 초대했습니다. 박옥선 아주머니와 시설 직원도 초대 받았고요. 물론 계원으로서. 식당 밑반찬도 많을 텐데, 간단하게 국수 먹자 했는데, 땀 흘리며 부침개 굽고 족발에 수육까지 차려냈습니다. 계원들 대접하느라 그랬겠죠.

"아주머니 오셨어요? 잘 오셨어요. 물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해요. 아주머니는 허리를 더 펴야 될 것 같아요. 수영장 다닐 만하세요? 강사가 안 보는 것 같아도 아주머니 동작 하나 하나 유심히 보더라고요. 열심히 하세요." 수영장에서는 인사도 겨우 나눴는데 그간 못 나눈 말들을 쏟아 놓았습니다.

그간 인사도 겨우 나누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요? 아, 시설 직원이 따로 만나 '장애(인)의 이해, 지역주민의 역할' 따위를 알렸다고요? 아닙니다.

장애인은 저기 저 복지시설이나 복지관 같은 곳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그들이 살던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었는데, 이제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만나 보니, 내 삶터, 내 일터, 그 한 가운데서 만나 보니, 어떻게 어울리는지 실제를 깨달은 겁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게 어떻게 말을 걸고, 어울리고, 돕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의 세상은 따로 있는 듯 구분합니다. 분리, 격리 일삼은 (장애인)복지의 폐해인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가 모르고, 세상이 모르니, 장애인이 다닐 만한 수영장, 장애인도 다닐 만한 수영장, 장애인과 더불어 수영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리고 도울 겁니다.

수영 강습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처음 이삼 주는 그냥저냥 다녔습니다. 계속 다녀야 하나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어린이 풀장에서 혼자 운동하거나 스파 풀장에서 몸을 푸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강사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고, 아주머니는 깊은 물에 익숙지 않았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강사가 먼저 나서서 개인 교습을 했습니다. 물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게 우선이라며 깊은 곳으로 유도했습니다. 조금씩 물에 익숙해지니, 몸을 띄우는 모형을 발에 끼우고 혼자 걷게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까무러치게 놀랐지만, 강사가 물속에서 엉덩이를 받치며 도왔습니다. 몸놀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아주머니 보면 먼저 손 흔들며 인사하죠, 쉬는 시간에 개인 교습하죠, 엉덩이 받치면서까지 가르치죠. 아주머니에게 첫 날의 기억은 벌써 까마득하고, 강사 사람 참 좋다, 수영장 가는 게 재미있다 했습니다. 수영장 송년회 앞두고 강사가 그랬답니다. "송년회에 박옥순 아주머니는 꼭 참석하게 하세요." 허락 받았냐고 묻던 그 사람인가 싶죠.

사람 좋은 강사가 가고 다른 사람이 왔습니다. 그 강사는 어땠냐고요? 전임자의 모습을 봤겠죠, 회원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하죠, 그러니 새로 온 강사도 전임 강사처럼 가르치고 대했습니다. 사람들이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모르는 겁니다. 알고 나면, 만나 보면, 곧 익숙하게 잘 대합니다.

수영장 다니는 동안 이 집 저 집 다니며 어울렸습니다. 그럴수록 아주머니의 자리가 분명해졌고요. 이쯤 되면 아주머니도 한번 대접해야죠. 월평빌라 203호, 아주머니 집에 초대했습니다.

잔치 앞둔 사람처럼 손이 바빴습니다. 장 보고 음식 장만해서 손님 맞았습니다. 애숙 씨를 비롯해 네 명이 왔습니다. 점심 먹고 커피 한잔 하며 아주머니 사는 모습 보고 갔습니다. 아주머니가 그린 그림 보고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당신 집이나 당신 가게에서, 혹은 수영장에서 만났을 때와 다른 감정이 있었을 겁니다. 누구 집에 가서 사는 거 보면 그렇잖아요. 더 이해하고, 더 가깝게 느끼게 되죠. 삶의 일부를 공유한 느낌, 이런 게 있잖아요. 이때가 참 중요합니다. 아주머니를 '장애인시설에 사는 장애인'이라고 확신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러면, 슬프죠.

월평빌라 203호는 아주머니 집이고, 아주머니가 그 집 주인이며, 당신 삶의 주인으로 여기게 했습니다. 장 보고 음식 장만하고 상 차리고 커피 내고 과일 내며 손님 맞는 주인으로, 당신 집 소개하고 당신 사는 모습 그리는 당신 삶의 주인이게 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아주머니가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야 그의 집, 그의 삶, 그를 인정할 테니까요. 오랜만에 손님 맞은 아주머니 얼굴이 화사했습니다. 생기 있었습니다. 살아있었습니다.

스포츠센터에서는 매년 가을 나들이와 운동회를 합니다. 총무가, 아주머니는 꼭 참석해야 한다고 단단히 일렀습니다. 스포츠센터 전 회원 나들이로 지리산 단풍구경 가고, 이듬해는 수영장 계원끼리 단풍구경 갔습니다. 스포츠센터 전 회원 체육대회에 참석하고, 이듬해는 수영장 계원 미니 체육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전 회원 체육대회에서 아주머니는 팔씨름과 단체 줄다리기에만 출전했는데, 계원 미니 체육대회에서는 거의 전 종목에 출전했습니다. 계원들이 아주머니가 참여할 만한 종목을 고심해서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신발 꺾어 신고 멀리 던지기, 신발 던져 바구니에 담기, 윷놀이, 과자 따먹기.

'장애인이 살 만한 사회, 장애인도 살 만한 사회,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 월평빌라의 이상입니다. 꿈꾸는 세상입니다. 1년, 5년, 10년… 일해서 다다르고 싶은 곳, 다다를 곳, 그렇게 믿고 일합니다.

수영장에 2년 다녔습니다. 장애인이 살 만한 세상, 장애인도 살 만한 세상,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보았습니다. 적어도 우리 지역에는 장애인이 다닐 만한, 장애인도 다닐 만한, 장애인과 더불어 수영하는 수영장이 있습니다.

*박옥선 아주머니를 지원했던 월평빌라 송숙희 선생의 글과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