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TV에서 보아온 분이라 제게는 참 친근한 신은경씨. 저와 동갑이고 삶의 궤적도 비슷한 당신이 멋져보이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요.

드라마 ‘종합병원’에서 보이시한 매력이 넘치던 의사. 영화 ‘조폭마누라’에서의 섹시하고 터프한 모습. 대하드라마에서의 안주인 역할. 얼마 전 방영했던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에서의 신들린 연기. 그리고 따뜻한 햇살 아래 행복했던 결혼식 모습도 가끔 떠오르네요. 그 중에서도 제 기억에 가장 좋아보였던 건, 누가 보아도 평범하지 않은 아들을 품에 안고 활짝 웃어보이던 돌잔치 때 사진이었어요.

당신은 언제나 인생의 고비 고비를 용감히 헤쳐 나아가는 사람이었는데, 얼마 전 티비에는 가뜩이나 여위고, 눈빛이 불안해보이던 당신이 나오고, 그런 당신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한없이 안타까웠지요.

TV를 통해, 당신 품에 안겨 사랑받던 돌쟁이 아기가 어느새 12살의 어린이로 자랐다는 걸 알았어요. 학교 스쿨버스를 타러 가던 뒷모습은 곧 장성하여 소년이 되겠구나 싶더라구요. 달콤한 향기가 나던 정수리가 어느 순간 땀 냄새 가득하고, 하루만 안 씻어도 쿰쿰한 아저씨 냄새가 폴폴 나는 어른이 되는 과정의 소년이요. 내 품을 떠나면 울던 그 아기가 어느 새 내게 어깨동무를 해줄 정도로 커서는 방을 혼자 쓰겠다며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떨어지질 않고, 방긋방긋 웃던 아이 얼굴이 여드름 가득하여 가오잡는 씨익 미소로 변하게 되지요.

아이가 소년이 되어가는 동안 우리 특별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또한 점점 특별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어요. 삶의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나와는 정말 상관없던 그 세상이 내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을 겪지요.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기가 그러한 특별함을 갖고 있으니 그것은 결국 내가 그 특별함을 갖게 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아는 순간, 그건 마치 또 다른 탄생의 고통을 겪는 것과도 같지요.

그리고 그날 당신에게서 아직 그 탄생 중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연기 중 세상의 모든 감정을 겪고 소화해내는 당신, 연기를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며 어루만져주던 당신은, 정작 당신의 새로운 탄생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저의 아들 상우가 어릴 적, 서초동 치료실을 다닐 때 아이를 수업에 보내고 난 후 대기실 엄마들의 대화는 마냥 밝았지요. 지방에 살다 아이를 키우러 서울로 와 슈퍼빌에 살던 한 어머니는 너무나 예쁜데 성격마저 좋아서, 항상 대화를 이끌어갔죠.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아이가 오십점이라도 내가 백오십점이니 둘이 합쳐 백점이야~"

전 초창기라 각오가 대단하고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이제 5,6년차 된 선배엄마들의 잡담 같은 건 귀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어둡고 침울한 세상 속에 마냥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마음은 치료대기실에서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도 한결 나아졌어요.

내 또래의 엄마 한 분은 양가 모두 라이온스 클럽의 회장단에 계시던 부모님을 두었는데, 친척 조카의 이야기를 하며 희망을 말해주고,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전시회를 열었던 어머니는 아이를 가졌을 때 태교를 환상적으로 잘 했다고 이야기했었지요. 그 어머니에겐 좋은 치과를 소개받아 상우는 지금도 그 치과에 다닌답니다. 상우가 급히 응급실에 가야했을 때는, 종합병원 응급실 과장님의 부인이었던 치료실에서 만난 어머니의 도움으로, 조금 더 빠르게 상처를 볼 수 있었어요.

말이 어려운 상우는 요즘은 매주 토요일 오전은 분당에서 언어소통 보조기구를 활용하는 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체육수업을 받으러 구의동으로 다녀요.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다양한 레포츠를 두루 섭렵하는 동안, 우리는 또 엄마들끼리의 오붓한 티타임을 갖는답니다.

이제는, 한 달에 몇 백씩이라도 돈을 쏟아 부어 아이를 치료할 것이라는 그 비장한 각오의 어린 엄마로서가 아니라 아이의 행복과 미래를 생각하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아가는 성숙한 엄마로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모으기도 하지요. 점점 성장해가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아직 만들어가야 할 일, 해야 할 일들이 참 많고 그건 엄마들이 나서주지 않으면 어려운 일들이랍니다.

은경씨, 언제나 당당하던 은경씨의 황망한 눈빛을 보고 안타까웠던 건, 그동안 은경씨가 해온 일 중에 가장 멋지고 훌륭한 일을 할 기회를 갖고 있음에도, 행복할 수 있는 여건이 당신에게 주어졌음에도 마음의 고통을 어찌하지 못하여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동안은 사랑을 받는 여인의 모습으로, 대중의 사랑을 양식으로 살아왔다면, 특별한 아이를 키우는 특별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살아보는 건 어떠세요?

남자의 사랑이나 대중의 사랑은 영원하지 못한 것이지만, 엄마로서의 삶은 고달프고 힘들 때가 있어도 무한한 힘이 샘솟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답니다. 누구보다도 공인인 당신이 그 일을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지 우리는 기다리고 있답니다.

제가 마음을 다스린 십년의 세월을 당신이 속성으로 배울 순 없겠지요. 하지만, 당신을 그리워하는 아이와 함께라면,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엄마들 또한 당신을 안타까워하고, 당신을 우리 티타임에서 같이 볼 수 있기를 바라요. 친구처럼 언니처럼 서로 안아주며 이야기 듣고, 행복과 고통을 나누며 다 함께 우리아이들의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직장인이라 주말 이외에는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가 어렵답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아들 얼굴 한 번 보고, 이젠 어릴 적 향기는 안 나더라도 쿰쿰한 냄새가 나는지, 목욕해서 향긋한 비누냄새가 나는지 한 번 들여다보고, 학교 수업 가방 챙겨두고, 아침엔 같이 스쿨버스를 타러 가 학교에 보내고, 주말엔 함께 하는 체육 수업 등으로 어머니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일요일엔 교회 소망부에서 또 마음을 나누어요.

상상해보세요. 열심히 촬영하고 집에 가면 나를 기다리는 아이의 향긋한 냄새를 맡는 거예요. 그 아이는 앞으로 어엿한 소년이 되겠지요.(잠시 TV속에 비친 은경씨 아이는 어떤 면에 있어선 부러워할 정도로 훌륭한 아이랍니다)

부모님이 훌륭히 키워주신 내 아들과 함께 하는 엄마로서의 삶. 내 아들과 같이 특별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내가 가진 재능으로 힘과 용기를 더해주는 삶. 남은 인생의 또 다른 이모작은 은경씨 아들과, 우리 아이들과 우리 엄마들과 함께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삶이 어떨까요.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큰 아들이 지적장애로 태어나자,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소설을 썼고, 이 작품은 오에의 인생과 작품세계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지요.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은 아들을 잃은 상심과 전쟁으로 겪은 아픔들을 훌륭한 소설로 남기며 스스로를 치유해가셨답니다. 은경씨의 동료 연예인 중에서 유명하신 여러 분의 자녀분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힘들어 외면하고도 싶었지만 사랑하며 아끼며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은경씨, 은경씨가 공인으로서 아들을 위해, 또 많은 엄마들을 위해 해주실 일들이 참 많다고 생각해요.

아니, 사실은 한 개인인 은경씨의 삶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선택이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바라는 내 아이와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그 특별한 아이로 인해 내가 할 수 있는 사명을 다하는 삶, 참으로 귀하고 보람되리라 생각되어요. 아드님이 힘들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랑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크고 성대하게 돌잔치를 치러주고 싶다던 당신의 사랑. 여전히 기억합니다..

은경씨, 토요일 2시 구의동 체육시간 티타임에서, 당신을 기다려도 될까요?

당신의 따뜻하고 확신에 찬 눈빛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상우엄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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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맘이자 새로운 세계, 장애아동을 키우는 삶에 들어선지 10년째다. 아들이 네 살 때 발달장애인 것을 인지하고 1년 휴직하며 아이 교육에 힘쓰는 한편 아이의 장애등록에 따른 고심과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 등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장애가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오래 가는 “길 장(長), 사랑 애(愛)” 임을 깨닫게 된다. 어린이집,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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