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의 개정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보다 실효적인 업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라기보다는 ICC(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에서 등급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세 번이나 등급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심사가 보류되었던 것은 지적사항을 수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인권위원 선출에 있어 규정이 아닌 법으로 정해야 하며, 인권위원의 면책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개정 내용을 보면 인권위원이 업무수행에서 고의나 과실이 아닌 선의로 한 발언이나 결정에 대하여 법적 면책권이 보장된다고 되어 있다. 위원선출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추천을 받을 수도 있고, 위원을 인권 관련단체 활동이나 대학·연구기관의 부교수 이상 또는 사법기관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자 중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ICC의 지적사항을 모두 수용하도록 노력한 것이 보인다. 이로 인하여 올해 상반기에 ICC로부터 등급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ICC 등급을 받은 국가 106개 국가 중 A등급을 받은 국가는 71개국, B등급을 받은 국가는 25개국, C등급을 받은 국가는 10개국이다. ICC는 5년마다 등급심사를 재실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이 15년이 된 시점에서 93년도에 인권기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유엔총회에서 제정한 파리원칙을 어느 정도 준수하고 있는지의 등급심사를 받지 못한 것은 국가적 지위에서 명분이 서지 않으므로 법 개정을 한 것은 필요한 조치였다. 하지만 진정 파리원칙을 준수한 독립기구인가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고, 법 개정이 등급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국가인권위원회가 바로 서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어야 했다.

파리원칙(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규칙)은 삼권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며,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업무수행에 있어서 그러한 지위는 확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권위원의 선출에 있어 삼권에 선출권을 부여하고 있어 서로 나눠먹기를 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선출된 위원이 과연 자신을 선출해 준 기관으로부터 완전 자유로울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 등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개선하라고 ICC로부터 지적을 받았는데,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는 삼권의 선출권은 그대로 두고 시민사회단체가 삼권에 추천을 할 수도 있도록 한 것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정부나 국회 여·야당, 대법원에 추천을 한다고 하여 선출된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추천만 하는 것이어서 시민사회 단체의 참여가 제대로 작동될지 의문이다.

완전한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삼권이 선출권을 분배하여 가질 것이 아니라 인권 관련 대표 단체가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선출이 되도록 해야 완전한 독립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ICC에서는 위원 추천에서 투명성과 독립성, 다양성을 확보하라고 했으며 위원 공석 시 모든 이에게 공개하고, 추천에 대한 심의도 투명하게 하며 구체적으로 그 선출방식을 법으로 정하도록 지적했는데 인권위원의 자격기준을 정하고 시민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 것이 효력이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히려 자격기준이 경력 몇 년이라고 하는 것은 다양성에 대한 발목을 잡는 것일 수도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기타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라는 문구를 추가해 놓음으로써 경력이 없어도 선출될 여지를 남긴 것이 보완적 조치로 작동할 수도 있으나 앞의 자격기준 예외를 둠으로써 사실상 자격기준의 규정이 의미 없도록 작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권위원 11명 중 여성을 4명 이상으로 하도록 되어 있던 것을 남녀 비율에서 어느 쪽도 60%를 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여성 몫이 하나 더 생긴 것은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으나, 배려가 아닌 평등이라는 의미에서는 개선된 것 같다.

인권위원에게 면책권을 부여하도록 법으로 정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였으나, 고의성이 없는 경우라는 단서를 붙임으로써 법적 문제가 제기될 경우 고의성이나 과실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그것을 원고와 피고 중 누가 증명해야 하는지도 애매하고, 증명하기 위한 다툼 역시 존재하므로 면책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왜 파리원칙에서 말하는 독립성에 부합하지 않는가를 생각해보면 첫째, 선출과 운영방식에서 독립적이려면 위원 선출권을 삼권이 아닌 시민사회단체 또는 별도의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맞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대로 된 시민사회단체와 소통하고, 협력하고 있는지와 역량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특정 시민사회단체와 단골로 소통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다.

둘째 업무수행에서 독립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파리원칙에서 말한 재정적으로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재정은 인건비와 사업비로 구성될 것이다. 인건비는 인력의 정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행정부의 허가사항이고, 재정은 기재부의 통제사항이라는 것이다. 또한 법무부와의 관계 설정으로 어느 정도의 연결성이 독립성을 해칠 수도 있다. 결정은 법무부에 보고를 해야 하고, 인권침해 구제절차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법무부가 시정명령으로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재정적 독립성을 부여하면 예산의 적절성을 누가 평가하며, 예산을 낭비할 수도 있다고 염려할 수도 있으나, 이는 기준을 정함으로써 조정이 가능하며 투명성으로 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과연 권고결정이 구속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가도 문제이다. 국가인권위의 결정은 사법부의 1심과 같은 효력을 가지게 하고, 피고의 방어권보호를 위해 2심은 사법부로 한다면 오히려 구속력도 있고, 강제성도 있으며, 진정인과 피진정인의 인권을 모두 보장하는 방안이 아닌가 한다.

15년간 약 10만 건의 진정 건수로 엄청난 사건을 접수한 실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국민들에게 왜 신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을까? 진정인들은 시간만 낭비했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진정 후 적게는 6개월, 많게는 몇 년간 조사기간이 소요되고, 피해를 구제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과 피로를 주어 진정인은 무력감을 느낀다. 또한 진정 후 2차적 피해를 입어 중도 포기를 하고 취하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피진정인의 회유와 협박에 의해 취하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력이 부족함에도 국가인권위는 연구와 교육, 홍보에 많은 인력을 쓰고 있으니 정부로부터 감원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물론 ICC의 권고나 파리원칙에서도 교육과 홍보를 하고, 국제기구로서의 협력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거나 연구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하고 구제에 전념하여 진정인의 힘들고 고통 받는 문제를 감수성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최소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 결정에 대하여 원상회복이나 재발방지에 대한 권고가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처럼 징벌적 배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손해배상을 민사소송으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법이 개정되어야 했다.

진정사건에서 사법절차 중인 것은 기각사유로 작동되면서도 직권조사는 영역이 열려 있는 것도 서로 모순이기도 하고, 국민의 관심사인 이슈에 직권조사를 할 가능성이 있고, 포퓰리즘으로 업무가 처리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사법절차와 영향을 고려하여 기각하는 것은 독립성이나 진정인의 감수성을 외면한 행정사무 편의적 조치로 해석될 수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오로지 인권을 최우선과제로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타협가능성을 먼저 고려하고 있지는 않은가 싶은 것이 스스로의 한계를 알면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너무나 미약하다는 것이다.

인권은 소신이며, 신념이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스스로의 권리를 제대로 찾아 행사하지 못한다. 마치 취업걱정을 하고 있는 계약직이 실업자 상담업무를 보는 것과 같다. 스스로 머리를 깎지 못하는 이가 장애인 취업을 상담하고 있으니, 그 경험과 전문성은 의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진국 독일도 인권기구 등급은 C등급이라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변명이 아니라 대부분 받고 있는 A등급을 받는 것이 왜 외국에서는 실현 가능한지 알아보아야 한다. 성적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자.

국가인권위원회가 헌법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과 같이 인권 역시 국민으로부터 나오도록 해야 함을 잊지 말고, 등급심사 통과가 아닌 진정한 인권보장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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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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