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종합판정 체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놓고 토론하고 있는 제8회 한국DPI대회 세션1의 진행 장면. ⓒ서인환

한국DPI는 '세계장애인의 날(12월 3일) 23주년'을 기념, 제8회 한국DPI대회를 여성플라자에서 개최했다. 지난 2일부터의 2박 3일 간 열린 행사 중 첫째 날에 ‘장애인종합판정체계 개편을 통한 사회통합’이라는 주제토론에서 장애인의 등급제 폐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인권 활동가들에 의해 주장되어 정치권에서 대선공약으로 수용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지만, 장애인 당사자에게 수렴하는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설문조사가 필요했다.

등급제가 폐지되면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판정과 전달체계가 재정비될 수밖에 없고, 등급제 폐지는 장애 유형별 동일 등급일지라도 형평성이 없다거나, 서비스 판정에서의 등급제가 서비스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등급제 폐지에 대한 설문조사는 설문지를 장애인단체별로 배포하여 조사하는 것과 인터넷을 통한 조사를 겸하여 실시되었는데, 총 421명 응답자 중 장애인은 242명이었다.

연구의 제한점으로는 중증장애인에 비해 경증 장애인의 응답자 수가 적었다는 점, 청각장애인 등 장애유형별로 골고루 조사되지 못하여 소수장애인의 의견이 충분히 조사되지 못하였다는 점, 현재 시범사업으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사회 중심의 전달체계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 등이 있다.

조사에 의하면, 장애인 중 77%가 감면할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모든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감면할인 서비스의 이용률이 높기는 하지만 모두 이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등급제 폐지에 대해서 전체 421명 중 30.9%가 반대를 하였는데, 그 중 장애인은 36.3%가 등급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었다. 이는 비장애인 집단의 등급제 폐지 반대 23.4%보다 높았다. 중증장애인의 반대 비율은 39.5%이고, 장애 유형에서는 시각장애인 집단이 좀 더 반대가 많았다.

등급제 폐지를 찬성하는 이유가 등급은 낙인이기 때문이라거나, 등급에 따른 서비스 신청권을 부여하는 것에서 서비스 확대를 위해서가 아닐까 기대했으나 조사에서는 개별화가 필요해서가 1순위로 나타나 등급이 아닌 개별적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등급제 폐지의 이유로 나타났다.

등급제 폐지의 기대효과에서는 등급으로 인한 낙인이나 서비스 확대를 기대한다고 응답하여 기대효과와 폐지의 이유가 서로 달랐는데, 서비스 확대는 부수적 효과이지 등급제 폐지의 근본적 원인은 이제 개별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패러다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서비스의 경계선에 있는 장애등급에서는 설문조사에서 현재 받고 있는 서비스를 유지하거나 새로이 진입하려는 주장이 두드러져 응답에서 다소 다른 양상을 보였다.

간편 등급의 도입에 대하여는 경증과 중증으로 구분하는 것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정도를 기준으로 두 등급으로 나누자는 의견에서 시각장애인은 중증과 경증에, 지체장애인은 도움 정도에 따른 간편 등급을 더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각장애인은 도움정도보다는 점자를 사용하는 중증과 잔존시력을 활용하는 경증의 구분이 더 명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서비스 종합판정에서 의학적 판정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의학적 판정은 기본적인 자료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욕구조사나 환경조사는 생애주기별로 나누어 여러 차례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판정기관으로는 전문기관이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장애인들은 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거나 장애인단체가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전문가들은 이러한 의견이 거의 없었고, 단체 활동가들은 단체의 참여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는 활동가들이 장애인단체의 역량을 염려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장애 등급 판정심사에서 등급 하락률이 높아 재심사는 청구 시 무조건 재심사하여야 한다고 주장할 것을 기대하였으나, 응답자들은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서비스 재판정 심사를 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월등히 많았다.

근로능력 평가는 의학의 손상을 신체기능의 어려움으로 중복 조사하는 것이므로, 일상생활에서의 제한점을 위주로 조사하도록 수정했으면 한다는 의견이 많았고, 환경조사에서는 틀에 박힌 항목조사보다는 환경적 어려움을 자기진술로 자유롭게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간편 등급제로 판정하여 유지해야 하는 서비스가 무엇이냐는 응답에서는 연금 등 현금 서비스를 이용하는 집단, 바우처나 프로그램 등 현물 서비스를 이용하는 집단, 감면할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집단이 각각 자신들의 현재 이용하는 서비스가 유지되었으면 한다는 응답을 하였다. 이는 등급제의 모순은 극복해야 하지만, 현재의 서비스는 유지하여 변화를 원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종합판정에서 고려해야 하는 점으로는 개별화계획, 자기선택권 보장, 복지수급권보장 등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응답하여 앞으로의 제도 개선에서 이러한 점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함을 지적하였다.

토론자로 나선 조한진 교수는 서비스의 축소가 없이 추가적으로 확대되어야 하지만, 어느 정도의 조정은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 생각되며, 의료적 판정과 근로능력 판정은 둘 중 하나면 되지 않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중증 장애인들에게 등급제 폐지 찬반을 물으면 반대가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찬성이 많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여건이 마련된 것이 아닌가 한다고, 감면할인 서비스의 현금지원으로의 전환은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지만 어느 정도의 유지는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하였다.

정기영 경기도장애인부모회장은 간편 등급제가 획일화된 기준으로 서비스의 욕구를 배제할 수 있어 개별화된 서비스지원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조윤화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원은 감면할인 서비스는 총 26개가 시행되고 있는데, 소득보장에 기여하는 바가 크므로 직접 현금 보상보다는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 더 실익일 수 있다고 하였다. 보편형과 잔여형 등 서비스 유형이 다양하여 일률적 직접소득 보장으로의 전환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강윤택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지체장애인의 어려움을 묻는 도구로 시각장애인에게 적용하면 안 되는 것처럼 장애 유형별로 신뢰성이 있는 도구가 개발되어야 하고, 판정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하며, 서비스의 상한선으로 인한 제한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보건복지부 이준미 사무관은 80여 개의 장애인 서비스 중 등급과 관련된 서비스는 20개 정도로 정부가 새로운 대안의 마련과 서비스의 유기적 연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공급자 위주에서 수용자 중심으로 개편할 것이며, 서비스 접근성을 확보하면서 개인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번 설문조사는 의미 있는 조사로 정책수립에 잘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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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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