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에 대하여.ⓒ 이승범

흔들림에 대하여

김판길(남. 1959년생. 시각장애) 시인

순간 순간마다 사람들은 풀꽃처럼

흔들립니다

발자국에 묻어나는 쓸쓸함에도

덧없이 흔들립니다

묵은 것에 새 것을 더해야 할

시간에도 허전하여 또 흔들립니다

강은 무수한 소리의 흔들림

세상에서 애착은 한때의 속절없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돌들도

있어야 할 곳을 찾아 제 몸 뒤척이 듯

지우고 비워야 가벼워지는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돌 같은 나로 인하여

흔들릴 세상을 바라봅니다

김판길_ 실로암문학상 대상, 대전점자도서관시공모전 대상, 구상솟대문학상 최우수상(2005)

구상솟대문학상 대상(2009) 외. 시집 <버팀목>, 동인사화집 <3천원짜리 봄>

시평 : 시를 향한 일편단심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고등학교 시절, 백석의 시집을 들고 다니며 시인을 꿈꾸던 문학소년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을 가린 하얀 안개 때문에 꿈을 멈추었다. 1959년생인 김판길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시력 장애가 생겼다.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야 했지만 변변한 시설 하나 없었던 당시의 시골 병원에서는 정확한 그의 병명을 알지 못했고, 큰 병원에 가야 한다는 소견조차 없었다.

답답함과 불편함을 감내하며 성장한 그는 병역 신체 검사를 받고 나서야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되었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진행성 망막 질환인 망막색소변성증이었다. 그는 더 이상 백석의 시집을 넘기지 않았다.

이삿짐 나르는 일, 각종 판매원 일을 했지만 흐릿한 눈 때문에 번번이 좌절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지만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자꾸만 흐려져 넘어지고 다친 상처로 다리의 흉터가 아물 날이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그에게 다시 시가 찾아왔다. 눈 대신 귀로 시를 읽었다. 복지관에서 녹음한 음성도서로 시를 읽고 문학공부를 했다. 2006년도에는 별바라기 동인시화집 <3천원짜리 봄> 에 참여했다. 복지관 문학창작교실 강의를 맡은 국문학 교수들도 그의 열정에 감동했다. 그는 배우며 끊임없이 시를 썼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최우수상에 이어 2009년 구상솟대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태풍 부는 날 가로수가 꺾일 듯하면서도 무사한 것은 몇 개의 통나무로 단단히 버틸 수 있게 했기 때문이리라고, 언젠가 시집을 낸다면 이 ‘버팀목’ 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싶었다던 그는 2014년 첫시집 <버팀목>을 출간하였다.

시「흔들림에 대하여」은 흔들림이 소재이다. 흔히 사용하지 않는 소재이고 소재로 삼는다 해도 현상이 아닌 심리적 상태 즉 갈등을 의미하지만 시인은 흔들림을 온 몸으로 느끼며 시를 썼다. 모든 존재는 흔들리고 있고 그 흔들림이 세상을 바꾼다고 시인은 믿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는 흔들림 속에 있다.

흔들림에 대하여(영시)

On Trembling

Kim Pan-gil

At every passing moment people are trembling

like wild flowers.

At the melancholy exuding from their footprints,

they tremble fleetingly.

They are trembling, too, feeling empty at the time

they will have to spend adding new things to old.

The river is a trembling of countless voices,

in this world attachment is the futility of a moment.

Just as the stones to which no one pays attention

toss and turn seeking the place where they belong.

In a world that becomes lighter only when it is cleared and emptied

I watch the world that will tremble

because of me, tiny as a pebble.

Mr. Kim Pan-gil. Born 1959. Visual impairment.

Korea Siloam Literature Award - recipient

Ku Sang Sosdae Literature Award - grand prizewinner (2005)

Ku Sang Sosdae Literature Award - recipient (2009)

Poetry collection: Prop

Children’s poetry collection: 3000won Worth of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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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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