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아름다움은 산 위에 산다. ⓒ이승범

고통과 아름다움은 산 위에 산다

김율도(남. 1965년생. 지체장애) 시인

그렇다

고통과 아름다움은 주로 산 위에 산다

남산타워를 똑바로 응시했던

창신동 산꼭대기 시민아파트

중세의 성처럼 늠름한 아파트는

끝내 사람 손으로 부서지고

나도 머리 둘 곳이 없구나

그래도 여태껏

시계노점 성희 아버지, 중동에 간 건주 아버지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산 위의 벌집에서

엄마는 손가락을 찍어가며

몇 백 원 하는 머리카락 정리하는 일을 하고

온 식구가 손가락 다치며 몇 천 원짜리

잣을 까는 부업의 시간

때때로 바람이 집을 흔들었고

별빛 몇 개 흔들려

그냥 어둠이 될 때 산 하나가 날마다 솟고

산 하나가 날마다 무너지는데

지린내 나는 층마다 흘러나오는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늘 취해있는 401호 아저씨는 으악새만

불러들이고

서정적으로 헤엄치는 창신동 사람 나는

땀에 절어 소금밭 그려진 옷을 입고

낙산허리 옛 성터*에서

삼거리 윷놀이판과 깡통돌리기를 뒤로 하고

윗풍 센 겨울 밤을 기도하듯 넘기는데

고통과 아름다움은 주로 산 위에서 산다.

*창신동 중턱에 있는 명신초등학교 교가중 일부

김율도_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1988) 구상솟대문학상 대상(2014) 외. 시집 <다락방으로 떠난 소풍> 외.

시평 : 문화유목민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김율도는 필명이고 본명은 김홍열이다.

창신동 달동네에 자리잡고 낙산을 넘나들며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는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 때문에 생기는 아픔을 시로 다독거리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아버지는 청계천 주변에서 손수레를 끌며 장사를 하며 고단한 삶을 이어갔지만 그는 시인으로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즐겼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해 198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어 서울예대에 입학하여 치열하게 대학생활을 하였지만 긴 방황 탓에 졸업했을 때의 그의 나이는 남보다 5년이나 늦어 있었다. 직장생활보다는 프리랜서로 10여 년 동안 5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역사, 심리학, 과학, 문학, 고고학 등 다양한 관심사를 배경으로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 작가와 강사로 활동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문화유목민이라고 칭한다. 예술 주변에서 유랑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한 시집 <다락방으로 떠난 소풍>은 어린 시절 아이들이 신나게 소풍을 간 날, 혼자 쓸쓸히 다락방으로 소풍을 떠나야 했던 아픔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김율도는 성우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얼굴은 숨기고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좋았다. 하늘로 돌아갈 날은 아직 멀었지만 얼굴을 숨기고 내 속의 너무 많은 나를 꺼내는 일은 그 후로 많을 것 같았다.' -詩 성우시험에서-

자신의 절뚝거리는 몸을 쳐다보는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 얼굴을 숨기고 할 수 있는 성우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시처럼 그는 얼굴을 숨기는 일들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시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

고통과 아름다움은 산 위에 산다(영시)

Suffering and Beauty Live Up on Hilltops

Kim Yul-do

That’s how it is.

Suffering and beauty mostly live up on hilltops.

The citizens’ apartments on the hillside in Changshin-dong

gazing straight at Namsan Tower,

those apartment blocks imposing as a medieval fortress,

ended up being demolished by human hands

and now I too have nowhere to lay my head.

Even now

Seonghui’s dad with the watch stall, Geonju’s dad off working in the Middle East ...

in that hilltop beehive, unable to leave though all longed to,

Mum works, slashing her fingers, tidying up hair for a few won a time,

while the whole family breaks their fingernails

for a few hundred won shelling pine nuts on the side.

From time to time the wind shook the house,

the light of a few stars flickered,

then when darkness came every day one hill would soar up,

another hill would crumble,

and from each floor, smelling of urine, out flows:

‘Ah, herons are crying mournfully, is it autumn already?’

Perpetually drunk, the man in number 401

would sing of nothing but herons

while I, a native of Changshin-dong, swim on lyrically

wearing clothes stained with salt for being drenched in sweat,

“From the the old fortress on Naksan hillside”

leaving behind those playing yut and spinning empty cans at the crossroads,

passing winter nights with that bitter wind as if in prayer,

yes, suffering and beauty mostly live on hilltops.

Note: “From the the old fortress...” is from the school song of Myeongshin Primary School on the Changshin-dong hillside.

Mr. Kim Yul-do. Born 1965. Physical disability.

Seoul Shinmun spring literary contest - award for sijo (1988)

Ku Sang Sosdae Literature Award - recipient (2014)

Poetry collection: Picnic Away in the At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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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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