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공주의 사랑. ⓒ이승범

유민공주의 사랑

허성욱(남. 1966년생. 전신마비) 시인

누군가를 시리도록 사랑한다는 것이

이토록 설운 것이라면

무엇과도 바꾸지 못할 그대를

그냥 이대로 가슴에 묻으렵니다

오늘도 님이 놀던 그 곳을 보며

사무친 그리움에 몸서리치다

이내 몸 한 사랑이 여의만 할까

애써 애써 아닐 거라 고개만 젓다

애꿎게 옷매만 적셔냅니다

기다립니다

말없이 그냥 기다립니다

언젠가 이 곳을 쳐다봐 줄 당신이기에

눈길 쉽게 닿을 이 곳에서

오늘도 당신을 기다립니다

해반천 줄기 물이 그어 놓은 그 금도

흥부암 종루鐘樓에 걸려 제 곡조를 이기지 못하듯

기다린다는, 언제까지 기다린다는

내 사랑의 여운은

언제나 봉황대鳳凰臺를 싸고 돕니다.

*유민공주 : 가락국의 공주. 남편 황세장군이 정혼녀 여의 낭자를 따라 죽자 절로 들어가 평생 두 사람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고 전함.

허성욱: 구상솟대문학상 최우수상(2011), 환산백일장 장원 외.

시평 : 사랑의 기다림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사람들은 공주 스토리에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공주는 고귀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런 여인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설공주. 인어공주, 낙랑공주, 평강공주 등 많은 공주들이 지금껏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유민공주는 낯설다. 유민공주가 가락국의 공주이고 남편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였고 그 여자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 지독한 배신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궁궐을 버리고 깊은 산속 절로 들어가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떠난 두 사람을 위하여 평생 기도를 한 바보 같은 사랑의 주인공인데 시인은 유민공주의 사랑을 자신이 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시인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장애를 갖게 되었다. 시인은 사고 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시인은 장애 때문에 그 사랑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다. 그 사람이 다른 이를 사랑한다 하여도 말리지 못하고 그저 기다리고 있는 바보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장기간 침상 생활로 건강이 악화되어 이제는 숨쉬는 것조차 힘들지만 시인의 기다림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런 사랑을 시인은 유민공주의 사랑으로 애절하게 표현하여 사랑은 뜨겁고 격렬하지 않아도 아름답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유민공주의 사랑(영문)

The Love of Princess Yumin

Heo Seong-uk

If loving someone to the point of being dazzled

is such a sorrowful thing,

I will have to bury you in my heart just as you are,

for you could never be replaced by anything.

Today again looking out at the place where you used to rest

I shudder with a yearning held deep inside.

Would my love match that of Yeoui?

I try and try, but shake my head, it cannot be.

Blameless, I soak my clothes with tears.

I wait.

Without a word, I simply wait.

In the hope that sometime you will look down on this place,

here in this spot which will surely catch your eye

I wait for you again today.

Just as the water of Haeban Stream,

and the belfry at Heungbu Hermitage, could not drown out my melody,

as I repeat, waiting, waiting forevermore,

the echo of my love

will eternally circle Phoenix Ridge.

Note: Yumin was a princess of the Garak Kingdom; it is said that when her husband General Hwangse followed his fiancee Yeoui to the grave, she entered a temple and prayed for the two of them for the rest of her life.

Mr. Heo Seong-uk. Born 1966. General paralysis.

Ku Sang Sosdae Literature Award - grand prizewinner (2011)

Hwansan Writing Competition - 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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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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