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이승범

낙엽

주치명(남, 1962년생, 시각장애) 시인

나무에서 가을이 진다

산은 말이 없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달이 진다

고개를 저으며 하늘 한 번, 땅 한 번

달빛 젖은 얼굴로 먼 산을 바라본다

그래도 산은 말이 없다

주치명: 구상솟대문학상 최우수상(2001). 시집 <당신은 모르시나요> <동백꽃>

시평 : 자연의 법칙으로 인생을 보다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이 시는 짧지만 자연을 노래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시인은 가을이 나무에서 진다고 하였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에 단풍이 들어 한 잎 한 잎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기 때문에 깊어가는 가을을 나무에서 발견한 것이다.

시인은 나무에서 시선을 산으로 넘겼다. 산은 나무가 가장 많은 곳이라 가을이 지는 모습이 가장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산은 말이 없다고 했을까? 사람은 자기 것을 잃으면 분노하거나 좌절하지만 자연은 잃어도 침묵한다. 그 이유는 봄이 오면 새싹이 움트고 초록의 잎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자연에 속한 존재라서 이 자연의 법칙이 적용될 텐데도 사람은 되돌아옴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여 초조해하고 불안해하여 불 같은 독설을 뿜어낸다.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복수할 거야, 죽여 버릴 거야…….

이제 우리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 자연의 법칙을 믿고 침묵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시인은 이런 자연의 이치를 시각을 잃은 후 깨닫게 되었다.

시인은 군복무 중 장갑차 운전 당시 돌이 날아와 왼쪽 눈에 들어와 박힌 것이 훗날 포도막염으로 진행이 되어 실명하였다.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오른쪽 눈이 혹사당하면서 오른쪽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시인은 어둠에 갇히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자연의 변화를 더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낙엽(영시)

Fallen Leaves

Ju Chi-myeong

Autumn is falling from the trees.

The mountain says nothing.

The moon sinks down between bare branches.

Slowly nodding its head, once to the sky, once to the ground

face drenched in moonlight I gaze at the distant mountain.

Still the mountain says nothing.

Mr. Ju Chi-myeong. Born 1962. Visual impairment.

Ku Sang Sosdae Literature Award - grand prizewinner (2001)

Poetry collections: Darling, Don’t You Know?; Camellia

The poet also works installing amenities in Gyeongsang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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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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