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근우(35)와 그의 작품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출판사 나무옆의자) ⓒ서인환

소설가 김근우는 하반신 신경계 이상으로 초등학교 시절 아홉 번이나 수술을 하였으며, 중학교 2학년 때에 건강문제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1996년 PC통신에 '바람의 마도사'라는 장르소설(판타지 소설)을 연재하였고, 이 소설이 출판되어 10만권이나 팔렸다.

작가 김근우가 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한때 장르소설로 인기를 모았으나, 본격적인 소설을 쓰고 싶어서 고민하면서 가난해진 장애인이자, 학력도 내세울 것 없는 한 작가가 다른 사람의 소설을 필사해가면서 습작을 하여 결국 올해 세계문학상에 당선된 작품이다.

필자는 장애인 여류 소설가 김미선 씨를 만나 장애인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 소설을 읽어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김미선 씨의 소설이 장애인 당사자가 쓴 흔치 않은 소설로 장애인이 아닌 작가가 추상적으로 장애인을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장애를 체험한 날것의 경험을 토대로 장애인의 주체적인 면을 보인다는 점에서 필자는 그녀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었었다.

김미선 씨가 이 소설을 통해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문학 속에 나타난 장애학이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변두리, 주변인, 일탈, 홀대, 소외 등과 연관된 배경과 인물들을 보여준다.

먼저 소설의 배경이 서울이지만 변두리인 은평구 불광천이다. 화려한 서울 같지만, 서울의 혜택이 없고, 시골 같지만 시골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도 아니다. 이 것도 저 것도 아니어서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주변이다. 그러니 혜택을 누릴 수도,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주변인들이다. 주인공 ‘나’는 실제 소설가인 작가 자신으로, 삼류작가로 판타지 소설을 쓰다가 출판을 거부당하고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면서 가난하여 월세도 밀린 자로서 단돈 오천원도 없는 자이다.

여자는 주식투자로 망하여 실업자가 되어 ‘나’보다 먼저 노인에게서 일당을 받고 오리를 사진찍으며,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라는 황당한 오리를 찾아다니는 자이다.

노인은 자식에게 사업을 반강제로 넘겨주고 분을 참지 못하며 자식과 단절하고 살고 있으며, 남은 재산인 아파트마저 자식 사업에 활용하기 위해 타의적으로 팔려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자이다. 그의 아들은 노인이 가진 비상금마저 노리는, '가진 자'이다.

할아버지의 손자는 부모보다 돈이 좋은 아이로, 학원을 간다고 하고는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는 아르바이트에 합류한 자이다. 부모의 공부 강요에 대한 신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학업에 시달리는 아이, 노인, 실업자, 프리랜서 소설가의 모습에서 일탈과 소외계층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광천은 한강의 한 지류이지만, 너무나 적은 보잘것없는 하천으로 많은 오리들이 살기에도 비좁은 빈약함을 보여준다. 오리 역시 불광천의 주인인 듯 흐르는 물 위에 유유히 떠 있지만, 조류의 특징인 날개짓을 잘 하지 못하는 주변적 존재이다.

작가는 왜 자신이 갖고 있는 장애를 드러내지 않았을까? 주변인이라는 것을 잘 드러낼 수 있지만, 비참함으로 비춰질 선입견을 절제하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호순이라는 고양이 역시 이름은 호랑이의 이름을 가졌지만 길고양이로, 노인의 사랑을 받다가 사라져버린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들은 이름조차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노인과 여자, 나 역시 이름을 소설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름조차도 필요 없는 존재들이다.

이들이 서로 만들어가는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내가 돈이 없어 고민을 하던 중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벽보를 보고 노인을 찾아가 노인이 키우던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기 위해 불광천 오리들의 사진을 찍는 일을 하게 된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여자와 후에 할아버지를 찾아왔다가 이런 돈벌이를 알게 된 손자도 합류하게 된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란 있을 수 없을 것이나, 노인은 직접 목격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노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돈벌이를 위해 이 일을 하면서 그들은 현실적 문제인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사진을 찍는 것은 일당 5만원이지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잡아오면 천만원을 준다는 현상금을 타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찾게 되는데, 전단지를 통해 진짜 호순이를 찾는 방법, 가짜 호순이를 구해서 진짜로 둔갑시키는 방법, 노인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라고 생각할 만한 가짜 오리를 만드는 방법 등이다.

폭우가 와서 불광천의 물이 불어나자 노인은 정이 떨어진 실망스런 가족보다 더 가족다운 집착을 보이는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았다며 물에 뛰어들어 물에 쓸려 내려가다가 지팡이가 돌다리에 걸리는 바람에 겨우 생명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나’와 여자는 노인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돈을 쫒는 것이 아니라 노인을 돕는 자신들의 양심을 찾게 된다. 그들은 고용된 일당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노인을 상대로 사기극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

폭우는 가짜 같은 하천이 진짜 하천이 되는 일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가짜와 진짜라는 주제를 계속 전개한다. 등장인물들의 삶이 주변인으로 가짜 같기도 하고, 진짜 같기도 하다. 그리고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가 진짜 있은 사건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노인이 주장하는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사건은 호순이라는 고양이가 있으니 잡아먹은 오리도 있는 진짜가 아닌가 하는 헷갈림과,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가 있어서는 안 되는 보편적 논리가 혼재하면서 진짜를 위한 가짜와 가짜를 위한 가짜를 이야기한다.

장애인은 사회의 부담이고, 장애라는 존재는 사회에 폐를 끼치는 존재이며, 장애인 복지로 인하여 사회적 부담이 크다는 사실 역시 진짜인지 오리와 같이 누명을 쓴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에서는 모비딕(백경)의 같은 배를 탄 것에 비유하고 있으며, 노인을 모비딕에서의 에이허브 선장에 비유한다.

백경은 흰색으로, 동양에서의 흰옷을 입은 귀신처럼 인간의 내면에 백색에 대한 공포심을 담고 있다. 오리 역시 흰색이고, 홍수에서의 물거품 역시 흰색이다. ‘나’와 여자는 그 배를 탄 운명적 선원이다.

모비딕에서의 에이허브 선장이 말한 ‘진짜를 잡으려면 가짜를 때려부숴야 한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 소설이 진짜와 가짜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동물에 원한을 가진 인간의 한과 집착을 보여준다.

이유는 모르지만 화가 나는 행동들이 여러 곳에 나타난다. 노인이 손자가 가져온 음식을 거부하는 장면, 청소도 하지 않고, 옷도 세탁하지 않으며, 음식도 해 먹지 않는 노인의 삶을 보면서 가족으로부터 방치된 것이 화가 나서 노인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여자와 ‘나’는 강제적으로 청소를 한다. 노인은 처음에는 화를 내고 거부하지만 나중에 음식을 시켜주며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말로는 절대로 고맙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일당과 무관한 노인을 자발적으로 돕는 행위가 바로 현재 노인의 삶을 보고 화가 나서 하는 행동으로 표현된다. 자기 자신의 일에는 익숙화되어 화가 나지 않으나 타인에게 투영된 자신의 모습에 그들은 화를 내고 있다.

가짜 호순이를 구해서 노인 앞에 내밀었을 때 노인은 호순이가 아님을 알지만, 가짜를 거부하지 않고 기른다. 그리고 고양이를 잡아먹은 가짜 오리를 구해다 내밀자 고양이와 오리를 마주하게 하여 서로 잡아먹는 적대적 관계가 아님을 보며 가짜임을 안다. 그러나 이 오리 역시 거부하지 않고 키우며 불광천에 고양이와 번갈아 가며 외출을 시킨다. 노인은 가짜를 통해 서로 잡아먹는 관계가 아님을 확인한다.

오리를 찾는 아르바이트는 가짜들의 등장으로 그만두게 되지만, 노인은 가짜를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속임수라는 배신에 대하여 문책을 하지는 않는다.

가짜이지만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됨으로써 진짜를 대신하였다고 볼 수 있으나, 호순이를 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치유를 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비록 홀대받는 변두리에서 불편한 환경이지만 유유히 떠 있는 오리처럼, 작은 물줄기이지만 한강으로 흘러가는 불광천처럼 그들도 시간의 흐름 속에 묵묵히 살아가는 주변인이 아닌 주체자임을 깨달은 것은 아닐까?

괴팍한 노인이 가짜를 거부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음을 거부할 수 없음을 수용하는 태도에서 가족 간의 화해와 세대 간의 화해를 보여준다. 가짜가 진짜가 되기도 하는 세상, 그 가짜를 거부할 수 없는, 가짜에도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 주변인이지만 주체적인 존재,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작가는 불완전하지만 그것도 완전한 하나라고 말한다. 이는 장애가 있어도 동등하고 완전한 한 인간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장애가 있다고 열등한 것도 아니며, 신체 일부가 없어도 인간이란 점에서는 완전한 한 인간임을 세상에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열등한 것이 아닌 장애인 당사자로서의 주체적 외침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호순이가 있었고, 그 다음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리고는 가짜 호순이 고양이가 있었고, 그 다음은 고양이도 오리도 있다.

하나가 있으면 다른 존재도 진짜일 수 있을까?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서비스가 새로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서비스가 생기면서 사라지고 새로운 서비스가 진짜가 되는, 장애인 LPG연료 세금공제제도가 연금의 보충예산으로 변한 현실을 수용하는 것이 노인의 가짜를 수용하는 것과 닮아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상실에 대한 부정과 수용과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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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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