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 불볕더위의 기세가 어느덧 살갗을 스치는 선선함으로 바뀌어가던 며칠 전.

모처럼의 여유로웠던 주말을 이용하여 여름내 잠들어있던 옷장 깊숙한 곳 두툼한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언제나 힘찬 날개 짓으로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날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던 선풍기의 묵은 때를 씻어내며 소리 소문 없이 성큼 다가올 가을맞이의 채비로 한참을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였다.

이른 오후부터 노을 비끼는 저녁녘이 되던 시간까지. 하루의 반나절을 꼬박 바치다시피 이루어졌던 입추(立秋)준비가 막바지로 치닫을 무렵, 미처 눈길을 주지 못했던 깊숙하디 깊숙한 옷장 속 한 귀퉁이에 덩그러니 놓인 웬 종이상자 하나가 내 시선에 포착되었다.

“어? 이게 뭐지?”

궁금증 반, 호기심 반으로 조심스레 개봉했던 상자. 뜻밖에도 그 상자 안에는 24년 전, 해가 바뀌기 무섭게 이 세상의 일원이 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출생확인서를 비롯해 영아기, 유아기, 유년기까지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박제된 나의 어린 시절 추억 사진들이 수북하게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우와! 여기 이런 게 있었네?”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전혀 생각지 못하게 마주하게 된 물건 하나에 마치 서프라이즈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하던 일손을 멈추고 기억의 태엽을 되감으며 이제는 아련한 그 때 그 시절의 회상에 푹 젖어있던 나.

그렇게 시간가는 줄도 모른 채로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던 시간이 얼마쯤 지난 뒤였을까?

무의식적으로 넘겨보던 수 십장의 사진들 속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불현듯 발견하게 된 공통점 하나에 한참을 목이 메어 그 어떤 말도 이을 수가 없었다.

그건 바로, 때가 어떻든, 장소가 어디든, 또 나의 모습이 어떻든, 초지일관(初志一貫) 어린 나의 손을 꼭 쥔 채로 늘 곁에 서 계시던 부모님의 모습에서였다.

“그게 뭐가 어때서?”

맞다. 사실 어찌보면 너무나 일반적인, 별거 아닌 당연한 장면인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가 태어나는, 아니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 ‘부모’로써의 2막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어느 유명 블로거의 말처럼 우리나라,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부모라는 이름 아래 헌신은 가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단함 그 자체가 틀림없는 일이니 말이다.

딱히 정해진 법이 없어도, 누군가의 가르침이 없어도 ‘부모’라는 이름은 늘 자신보다 자녀를 먼저 생각하는 존재인 것 같다. 자신의 일이 바빠도, 자신의 일을 못해도, 하물며 자신의 몸이 아파도 부모는 당연한 듯 자신을 먼저 걱정하기보다 자신의 역할 부재로 곤경에 처할 자녀들을 먼저 생각한다.

이는 내 아이가 아무리 신체 건강하고 건장한 청년이라 할지라도, 부모라는 위치에서 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염려이거늘, 장애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사는 하나뿐인 자식을 버젓한 사회의 청년으로, 직장인으로 키워내기까지 나의 부모님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아마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유년기의 수없는 재활로 일상생활 대부분의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정도라 할지라도 행여 길을 거닐다가 넘어지지는 않을지, 그래서 다치지는 않을지 매일, 매 순간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처럼, 장애자녀의 부모역시 자신의 몸이 아프면 자녀를 먼저 생각한다. 아무리 자식에게는 모든 걸 다 쏟아내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지만 부모역시 살아가는데 있어 몸이 아프지 않으리라는 가능성은 없다. 그래도 아픈 자신의 육신보다 아이에 대한 걱정부터 앞선다.

“나는 내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자신을 대신하여 자녀를 돌봐 줄 사람이 먼 미래까지 생각하며 자신의 몸 하나 추스를 힘이 없어도 장애자녀의 삶을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거나 쓰러질 때까지 돌봐야 하는 것이 장애자녀를 둔 부모의 현실인 것이다.

“아! 좀 알았어요. 내가 알아서 할게. 신경 쓰지 마요.”

피눈물 나는 부모의 헌신과 노력으로 일상생활 대부분을 혼자 수행하고 이제는 버젓한 직장인이 된 자식은 언젠가부터 부모의 조언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옳다 여기는 머리 큰 자식이 되었지만 나는 안다. 알고 있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뜻하지 않은 장애라는 이름을 하나 더 얹은 자식들을 돌보며 ‘어찌하면 이 녀석이 지고 가야 할 무게를 내가 나누어 들 수 있을까? 내가 어찌하면 이 녀석의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고, 고민하며 백방으로 뛰는 장애 자녀의 부모님들이 있듯이

하나 뿐인 자식이 행여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때로는 권익옹호자로, 또 때로는 사회 개혁가로 부모라는 이름 안에 수많은 역할들을 묵묵히 감당하며 철인(鐵人)이 되어 주었던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비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경우, 자식들이 장성한 뒤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삶의 재 충전기를 누리는 방법으로 여행이나 여가 활동을 대표적으로 꼽는다고 한다.

하지만 장애 자녀의 부모라면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진다. 2012년을 기준으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남성은 77.95세, 여성은 84세라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이 평균 수명을 살아감에 있어 자녀들이 장성했다 하여 여행이나 여가 활동을 누릴 수 있는 장애자녀의 부모들이 얼마나 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장애 자녀의 부모라 할 지 라도 결코 철인이 될 수 없다. 즉,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삶에 있어서도 반드시 쉼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쉼은 커녕, 채 회가 주어지기조차 어려운 우리나라의 현실을 잘 안다면 ‘손에 장 지질 소리’라며 혀를 내두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 더 바뀌어야 하고, 변화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움직임으로, 공공기관이 움직임으로, 관계부처의 움직임으로 반드시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의 삶에도 쉼표라는 부호를 찍을 수 있는 여유를, 더 나아가 정책적 대안을 마련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쉼이 곧 장애인 당사자들의 홀로서기, 주체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써의 자립(自立) 가까워지는 첫 발이 될 테니까 말이다.

하루 속히 나의 염원이,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장애 자녀 부모님들의 염원이 현실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전시적 행정이 아닌 리얼(Real)한 국가적인 정책 마련과 대안이 나타나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아, 한 가지 더! 이제는 어엿하게 제 밥벌이를 하며 사는 자식이건만 아직도 심심찮게 “미안하다. 다 내 죄인 것 같고, 내 잘못인 것 같다.”는 말을 반복하는 나의 부모님을 비롯한 이 땅의 모든 장애 자녀들의 부모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자녀들의 장애가 마치 당신들의 잘못인 양, 책임인 양 미안해하고 자책하지 마시길. 자녀들 앞에, 이 사회 앞에 당당하고 떳떳해지시길.

더 좋은 환경을 남겨주고, 더 좋은 사회를 개척하기 위해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역할들을 감당하며 늘 우리의 철인이 되어주는 당신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지속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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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나 칼럼리스트
한국성서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어 직장생활 중에도 수필, 동화, 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습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동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사회복지학도로써의 다양한 관점, 그 밖에 평소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생각들을 장애인 당사자인 자신의 경험담과 잘 배합하여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여담 형식으로 꾸밈없는 우리네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연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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