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배고파요. 밥 주세요!”

지난 5월, 스승의 날을 맞아 대학시절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들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학교에 방문했던 날. 석양이 막 내려앉기 시작한 저녁녘이 되어서야 모든 일과를 마친 후 조금은 이른 저녁 식사를 위해 학교 인근 한 식당을 찾은 길이었다.

대학가에 위치한 음식점답게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으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대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곳 인만큼, 나 역시 학창시절 일주일에 3~4번은 드나들었던 단골 식당이었기에 조금은 익살스럽게 인사를 하니 단박에 내 얼굴을 알아보신 음식점 사장님 역시 반색을 하며 뛰어와 반갑게 맞아 주셨다.

“어? 소나! 오랜만이네. 졸업했다고 얼굴도 안 보여주고 이러면 섭섭한데~”

“아이구 참, 이모도. 그래서 오늘 학교 오는 김에 어김없이 딱 여기로 왔잖아요. 자주 못 와도 늘 생각하고 있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과의 대화라도 되는 양, 두런두런 잠깐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주문을 한 뒤, 무의식적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던 식당 안. 그제야 인테리어며 테이블, 의자 등 이모저모로 달라진 식당 내부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모, 가게 리모델링했어요? 좀 바뀐 것 같네?”

“어이구, 일찍도 물어본다. 새 옷 입은 지 꽤 됐지. 입구에 턱도 없어졌는데 들어올 때 못 느꼈어?”

“어? 진짜네? 진짜 턱 없어졌네?”

무심코 툭 던진 질문에 이어진 사장님의 대답을 들은 나는 깜짝 놀라 대답하며 식당의 출입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1~2cm 남짓,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신체의 전반 균형 조절이 자유롭지 못한 내가 식당 출입을 할 때면 무슨 거사(巨事)라도 치르는 듯 온 몸의 신경을 집중시키고야 간신히 오를 수 있었던 턱. 어느새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해진 식당 입구엔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절한 높이를 갖춘 튼실한 철재 경사로만이 반듯하게 놓여있을 뿐이었다.

“이야! 대공사 하셨네. 어쩐지 들어올 때 너무 편하게 들어와서 턱이 있었다는 사실 조차 인지 못 했었나봐요.”

끊이지 않던 과제와 프로젝트 등으로 밤낮 구분 없이 학교에 상주해야 했던 대학시절. 집 밥을 먹는 횟수보다 더 많이 이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면서 ‘저 턱만 없어도 나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훨씬 편할 텐데.’ 차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늘 마음 한 켠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부분이었기에 연이은 감탄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내게 뜻밖에 내 손을 꼭 잡으시던 사장님께서 갑작스레 한 마디 인사를 건네 주셨다.

“소나야, 고맙다. 네 덕분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 우리 가게 이렇게 새 옷 입힌 거 사실 네가 한 일이나 진배없어. 다 네 덕이야.”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들과 말에 어안이 벙벙.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어쩔 줄 몰라 하던 내 모습에도 한참을 씨익. 영문 모를 미소만으로 일관하시던 사장님. 그러나 잠시 후, 조금은 망설이는 듯 하시며 운을 뗀 사장님의 이야기 속에서 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놀라운 사실 몇 가지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입학하고 너 우리 집(식당)에 오기 시작하면서 들어 올 때마다 저 턱 때문에 불편해 하고 어려워하는 거 알고 있었거든. 몇 번 넘어지기도 하고 힘들어 하는 거 보면서 ‘그래도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온 손님인데 본의 아니게 불편 줘서 어떡하나’싶기도 했고 말이야.

꼭 너 뿐만 아니더라도 조금 연로(年老)하셔서 휠체어나 워커에 의지해 오시는 분들도 실제로 턱 때문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가시기도 했었는데 몇 번 그런 상황을 겪다 보니까 ‘이건 아니다’싶은 거야.

특히 여기 학교에는 장애 학생들도 많은데 그런 학생들이건, 나이 드신 분들이건 우리 집 밥 먹으러 오셨는데 그냥 돌려보내는 건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잖아. 어차피 부분적으로 너무 오래 되서 언제 한 번은 공사를 했어야 했는데 마음먹은 김에 지난겨울에 며칠 영업 중단 하고 리모델링하면서 턱도 깎고, 의자도 새로 들인 거지.”

아! 이 무슨 동화 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뭉클. 애써 차오르는 눈물을 목 뒤로 꾹꾹 눌러 삼키며 간신히 한 마디를 건넸다.

“이모,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요. ‘차별’이 아닌 ‘차이’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어서 너무 좋다.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요.”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수많은 생각들을 뒤로한 채 고작 전한 이 한 마디. 하지만 어찌보면 백 마디 말 보다도 정확한 감정표현일 수밖에 없던 이 한 마디. 자신의 이익은 접어둔 채로, 아니 되려 자신에게 닥칠 숱한 손실을 묵묵히 감수한 채로 묵묵히 우리네 이웃들을 끌어안으며 내가 그토록 부르짖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몸소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에 ‘고맙다’는 말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아니야. 내가 고맙지. 학교 다니는 내내 밝은 모습이던 널 보면서, 너도 힘들 텐데 너보다 더 불편한 일행이랑 같이 왔을 때는 너보다 상대방을 당연한 듯 먼저 챙기는 널 보면서 나도 많이 배웠고, 알게 모르게 지니던 편견들에 대한 반성도 많이 했단다. 네 덕분에 생각 하나 차이가 가져다 준 힘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됐어.”

마치 녹음테이프라도 틀어놓은 듯 연신 고맙다는 말만을 되풀이하는 내게 쓰윽 휴지 한 장을 내어주시던 사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에 결국은 뚝뚝. 애써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말았다.

‘생각의 차이가 세상을 바꾼다.’

한동안 TV를 통해 전해졌던 모 기업 CF의 광고 문구. 결국 내 마음 속 늘 이상적인 장애․비장애가 구분되지 않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핵심 가치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당연하게 부딪히게 되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 불편함들. 장애의 유무를 떠나 그저 한 인간으로서 봉착하는 어려움들을 그저 “내 일도 아닌데 뭐.”라는 식의 막연한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나의 불편함으로, 내 친구, 내 가족의 불편함으로 한 번 더 생각하며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아 주는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결코 ‘차별’이 아닌 그저 개개인이 지닌 ‘차이’임을 인정하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어느덧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어느 호텔도 아닌, 유명 식당도 아닌 동네 어귀 작은 밥 집 사장님의 그 사소한 생각 하나로 ‘우리 모두’가 더 편리하게 드나들 수 있는 식당이 한 곳 더 늘어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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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나 칼럼리스트
한국성서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어 직장생활 중에도 수필, 동화, 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습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동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사회복지학도로써의 다양한 관점, 그 밖에 평소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생각들을 장애인 당사자인 자신의 경험담과 잘 배합하여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여담 형식으로 꾸밈없는 우리네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연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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