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요새는 엘리베이터도 다 있지, 리프트도 있지. 게다가 요금도 무료잖아. 이정도면 장애인들도 살만하지.”

며칠 전 어스름한 땅거미가 내려앉던 이른 저녁. 지친 퇴근 길,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우연히 듣게 된 한 행인들의 대화였다.

그야말로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모르는, 그저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인파들 중 한 명의 스치듯 흘린 대화였지만, 그들이 무얼 보고, 무슨 연유로 이러한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지만 '이런 게 바로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는 속담의 참 뜻이던가?' 순간적으로 주춤대던 걸음을 쉽사리 옮기울 수 없었을 정도로 아무런 준비 없이 듣게 된 그 한 마디가 나에게 남긴 파장은 상당했다.

별도의 보장구가 없어도 독립적인 보행이 가능해 비교적 자유자재로 거리를 활보하며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덕에 지하철 역시 일주일에 서 너 번 정도로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아닐 수 없다.

장애인이 없던(?)시절에 지어진 탓에 편의시설이 전혀 갖추어 지지 않았던 지하철역의 옛 풍경과 달리 이제는 어느 역이나 엘리베이터나 리프트는 기본, 장애인용 화장실에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의 교통약자들을 위한 경로우대석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확실히 우리 사회에도 장애인들을 배려하려는 의지와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은 틀림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어느 행인들의 말처럼 장애인들에게 지하철이란 “지하철이 있음으로 우리의 이동권이 정말 잘 보장되고 있는 것 같아.”하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한 대중교통일까?

7월 초 집필했던 바로 앞의 칼럼에서 이미 한 차례 장애인의 이동권과 저상버스의 문제점에 대한 내용을 다룬 바 있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저상버스 못지않게 만만찮은 것이 바로 이 지하철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1급 지체장애인인 나는 지하철에 탑승 시 경로우대석에 아무리 빈자리가 있어도 잘 앉아서 가지 않는다. 아니 이미 나의 무의식 속에 ‘저 곳은 내가 앉으면 안 되는 자리’라는 생각이 굳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어찌보면 쓸 떼 없는 자존심, 쓸 떼 없는 고집이라고 비춰질 수 있는 태도일지 모르겠지만 “쯔쯧.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같으니라고. 요즘 애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걸어 다닐 때야 타인의 눈에 확연히 비춰지는 나의 모습과 달리 가만히 앉아 있는 경우 나의 장애 여부를 모르는 어르신들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던 다수의 경험에 자리가 없는 지하철에서 서서 가는 습관은 어느새 그렇게 나만의 규칙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이다.

어디 이 뿐인가. 장애인들의 사회참여 확대 및 촉진을 위한 대안,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설치되었다는 엘리베이터는 언제부터인가 이용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할 장애인들은 뒤로한 채 나이 드신 어르신들, 자전거, 유모차 등 부가적인 짐을 소유하고 탑승한 비장애인 승객들에게 앞다투어 점거 당하기 일쑤.

수억의 예산을 투자해야 하는 엘리베이터의 차선으로 선택되었지만 전동 휠체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철저히 수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되어버리고도 안전성과 사전 지식 미흡 등의 여러 이유로 어느 틈에 장애계의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사건을 대표하는 애물단지로 전략해버린 리프트까지.

도대체 이 땅의, 아니 적어도 서울 시내의 모든 장애인들이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편의시설을 정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날은 언제부터일까?

‘대한민국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에 의거하여 만들어졌다는 편의시설들이 오롯이 당당하게 그 명성을 발하는 날은 언제부터일까?

이야기가 이쯤 흘러갈 때면 항간의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장애인들이 뭐 때문에 그리 쓸 떼 없이 돌아다니느냐고,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장애인콜택시도 있는데 왜 굳이 목숨을 담보로 타지 말라는 지하철을 타려 애쓰느냐고.

혹 지금 어느 경로로든 이 글을 접하고 잠시나마 이같은 생각을 품은 어떤 이들이 있다면 잠시만 멈춰주길 바란다. 그리고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더 넓은 생각을, 넓은 마음을 품어주길 바란다.

국민의 생산 활동과 소비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해주며 가능한 한 많은 국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한다는 목표를 지향하는 사회간접자본. 그리고 그런 사회간접자본의 대표주자인 대중교통. 그렇다면 비록 조금 다른 모습일지라도, 다른 모양일지라도 엄연한 이 사회 ‘국민’의 한 사람인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더 나아가 도로, 항만, 철도, 통신, 전력 등의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서슴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나 같은 장애인이 눈치 보지 않고 경로우대석에 앉아 갈 수 있는 사회, 장애·비장애의 구분을 떠나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우리 사회에 속해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당당하게 곳곳의 편의시설들을 조금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내가 꿈꾸고, 우리 모두가 꿈꾸는 더불어 사는 세상의 참 모습이 아닐까?

글의 말미. 오늘도 그렇게 내 마음 한 켠에는 언젠가 반드시 갖게 될 더불어 사는 세상의 진정한 모습이 한 획 더 굳게 새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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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나 칼럼리스트
한국성서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어 직장생활 중에도 수필, 동화, 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습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동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사회복지학도로써의 다양한 관점, 그 밖에 평소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생각들을 장애인 당사자인 자신의 경험담과 잘 배합하여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여담 형식으로 꾸밈없는 우리네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연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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