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이라구요?

안돼요!

어떻게 정신과 약을 먹여요!

10여 년 전, 아이한테 정신과 약을 먹여야한다는 의사의 말에 단호히 거부하며 병원문을 박차고 나왔다. 정신과 약을 먹인다는 건 아이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얼마 못 버티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공격성과 파괴성이 더욱 심해지고 결국은 아무 데도 못 다니게 되었다. 같은 반 아이들을 물거나 꼬집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행동들이 점점 심해졌다.

자폐성장애를 갖고 있는 내 아이는 그렇게 약과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니 전쟁은 엄마의 몫이 되었다.

약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정신과 약만 복용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다. 아이는 공격성과 파괴성이 없어지고, 학교에서 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어이없게도 약을 복용하는데도 문제행동들은 여전히 남아 있고, 오히려 약을 안 먹을 때보다 나는 더욱 절망하게 되었다. 그래도 약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의 방법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끊임없이 병원을 다니고 많은 의사들과 얘기도 해보고 뭔가 약을 통해 방법을 찾으려고 안간힘 썼다. 많은 약들을 가감하면서 이렇게도 먹여보고 저렇게도 먹여보면서 또 10여년이 지났다. 10여년을 약과 전쟁 치르듯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얻은 결과는 겨우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온갖 방법을 다 써보다가 먹이던 약을 정리해 보기로 한 것이다. 메인약만을 남겨놓고 같이 먹이던 모든 약들을 빼버렸다. 무서웠다. 아이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두려웠지만 문제를 찾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의외로 아이는 웃는 시간이 많아졌고 불안한 기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한 모습이었다. 먹던 약을 빼버리면 더 큰 문제행동을 할까봐 불안해하던 내 생각을 완전 뒤엎어 버린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또는 약에 따라, 나타나는 반응은 모두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약을 많이 먹여도 문제 행동이 심하고 어려운 상황이라면 약을 정리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여긴다. 맞는 약과 적당량을 찾아 복용한다면 문제 행동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자폐성장애인이 정신과약을 복용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정신과 의사들의 세심한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내 아이는 정신과약을 복용하며 감기약만 같이 먹어도 잠을 못자고 불안해 한다. 정신과약이 예민하게 하는 건지 아니면 내 아이가 예민한 건지 정신과 약과 다른 약물에 대한 충돌은 반드시 일어난다.

자폐성장애인들의 대부분이 정신과 약을 복용한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안타깝게도 문제행동(요즘엔 도전적 행동이라고 함)은 여전히 심하고 아이를 케어하는 보호자들은 그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정신과 약을 잘 복용하면 자폐성장애인들의 문제행동(도전적행동)들은 많이 줄어들고 좀 더 편안한 생활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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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명 칼럼리스트
발달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인식개선 사업 차원으로 시내 고등학생, 거주시설장애인, 종사자들한테 인권 교육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장애인당사자의 삶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에 근거해 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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