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는 15학번 000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 방학 때부터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해 보고 싶어 담당 교수님과 상담을 하던 중 교수님께서 선배님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요. 더 자세한 조언을 구하고 싶어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오전 중으로 급히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 정신없이 업무처리를 하던 중 받게 된 문자메시지 한 통.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습관적으로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아, 벌써 종강 시즌이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어느덧 졸업 후 1년. 아직은 새내기 졸업생이라지만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게도 매해 여름과 겨울, 대학생들의 방학시즌이 되면 꼭 받게 되는 연락들이 있다. 바로 같은 과 후배님들의 실습 및 자원봉사 문의.

어느 전공이든, 어느 직업이든 대부분 비슷한 경우이겠지만 역시나 이론적 지식 못지않게 현장에서의 경험을 중요시하는 사회복지라는 전공의 특성상 적절한 자원봉사 활동 및 현장실습은 필수. 그 덕에 사회복지학도들에게 방학이란 갖가지 대외적인 활동들로 실무현장에서의 경험을 익혀가는 또 다른 계절학기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학생의 경우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진다. 각자의 이유와 다짐, 또한 다양한 계기들로 발을 들여놓았던 처음이야 어찌됐든 학년이 올라갈수록 느끼게 되는 학문적 엑티브(active)함은 자신의 장애 정도와 자립상황 등 신체적인 제약에서 오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자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나 역시 4년의 대학과정을 마치는 동안 마치 통과의례처럼 밟아온 수순이기에 때마다 이러한 연락을 받게 될 때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메시지로, 유선상으로, 때로는 직접 대면하여 최대한의 자원을 나누며 도움을 주려 애를 쓰는 편인데

몇 번 이러한 일들이 지속되다보니 언젠가부터 이들에게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몇 명을 만나든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약속이나 한 듯 꼭 듣게 되는 말 한마디가 바로 그것이다.

“솔직히 무섭기도 하고, 막상 기관 선정이 된다고 해도 장애인인 제가 할 수 있을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몇 번을 들어도 가슴 아픈 말 한마디, 같은 장애인 당사자로서 마음이 미어지는 말 한마디가 아닐 수 없지만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매일 만나는 편견과 차별 가운데서 받게 되는 억압, 장애를 장애로 규정하는 세상의 벽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고민들이니까, 나 역시 이들과 같은 위치에 있던 과거, 졸업 후 어엿한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도 마주하게 되는 일들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고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게 된 깨달음이 있다면 그리 못할 일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 그리 겁먹을 일만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일단은 두드려서 열리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설령 그것이 아주 지극한 단순노동이라 할지라도 어딘가 꼭 한 자리는 내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네 삶에는 참 묘한 것이 있다. 늘 하던 생각, 행동, 말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조금 익숙하다 싶으면 이내 내성이 생겨 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 그러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노력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마음 한 가운데에 자신도 모르는 안일함이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장애인이니까, 나는 원래 못하니까. 아마 난 안 될 거야. 이 정도도 감지덕지지.”

아니다. 나 자신이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는 다르다. 아주 많이 다르다. 그러니 조금은 뻔뻔해져도 괜찮다. 다시 말하면 조금 더 당당해져도 괜찮다는 것이다.

마른 가지에도 꽃은 피는 법이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무척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아주 작은 일들도 우리 장애인들에게는 핏대 세워 부르짖어야 간신히 차지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특성상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비롯한 많은 장애인들이 세상 가운데 조금은 뻔뻔해졌으면 좋겠다. 장애의 유무를 떠나 나의 존재는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늘 상기하면서 그렇게 조금은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뭐, 여전히 나에게 씌워진 장애라는 굴레와 세상의 벽에 가로막혀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하고 낙담하며 우왕좌왕하는 나 역시 자신 있게 이런 글을 쓰고,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는 사람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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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나 칼럼리스트
한국성서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어 직장생활 중에도 수필, 동화, 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습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동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사회복지학도로써의 다양한 관점, 그 밖에 평소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생각들을 장애인 당사자인 자신의 경험담과 잘 배합하여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여담 형식으로 꾸밈없는 우리네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연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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