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에서 적응하고 유지하는 것이 오로지 장애인 개인의 능력과 극복정신으로만 해야 한다면 이는 아주 후진적이고 일차원적인 사회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척수장애인처럼 하루아침에 중증의 중도장애인이 된 경우라고 한다면 사회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강도는 더하다. 졸지에 갓난아이가 되어버린 약자들이 일어서고 걸음을 한 발자국씩 내 딛는 기초적인 것조차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이는 불공평한 것이다.

시원찮은 병원에서의 재활을 마치고 사회로 내딛는 초보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고 곱지가 않다. 우리 스스로가 느끼는 심리적인 위축보다 더 심한 냉소를 체험한다.

이에 굴하지 않는 동등함과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기본이 사회복귀훈련인데 이런 훈련을 받지 않고 나오는 중도장애인들은 총 한 자루 없이 전쟁터로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병원을 나와 지역사회에 안착하려고 하는데 상황은 형편없이 부족하고 열악하다.

척수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오는데 당장 걸림돌이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주택문제이다. 다치기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턱하나와 계단 하나, 좁은 문 그리고 화장실 변기가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한 공포의 벽으로 다가온다.

이 단순한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 준비하기 위해 병원을 전전하게 되고, 한번 들어간 집에서 나오지 못해 몇 년을 칩거한 동료들을 보면서 경제대국 한국의 척수장애인과 가장 최빈국인 네팔의 척수장애인들과 무엇이 다를까 의문이 간다.

주택을 개조하여 집밖으로의 왕래가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휠체어를 타는 척수장애인에게는 가장 기본이고 절대사항이다. 이는 복지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함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좋은 집으로 바꾸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살고 있던 집에 턱과 계단을 없애고 화장실만이라도 사용하자는 것인데 정부의 농어촌주택개량사업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여 기회를 잡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이다. 범정부차원에서 대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경단녀(경력단절여성)에게 다양한 지원을 통해 사회진출을 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척수장애인들도 경단장(경력단절장애인)이다. 우리에게도 다양한 지원을 통하여 사회로 재진출을 시켜야 한다.

척수장애인에게 직업은 그림의 떡 같은 존재이다. 분명 사고 전에는 아무 문제없이 직장을 다녔는데 휠체어를 탔다는 사실하나만으로 졸지에 직장에서 꺼려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하던 일도 다 기억하고 휠체어를 타고도 잘 할 수 있는데 기회조차 주지 않는 현실이 야속하다.

그러는 사이에 가정에서 경제적 주도권도 잃어가고 존재감도 없어지는 천덕꾸러기가 되어간다. 어렵게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었지만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세금 내는 장애인이 되고 싶은데 정부는 주는 돈이나 받고 가만히 있으라고 날개를 꺾어버리고 있다.

최고의 재활은 장애인에게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라는 미국의 복지정책이 부럽기만 하다.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이동을 위한 차량도 필요하고 장애인콜택시 등의 특별교통수단이 충족되어야 하고 저상버스 등의 대중교통도 눈치안보고 타야 하는데 이동이 쉽기가 않다.

활동지원제도나 근로지원인 제도도 충분하지가 않다. 직장의 편의시설도 준비가 되어야 하는 등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게 직업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척수장애인에 맞는 직업을 개발되어야 한다. 재택근무도 할 수 있으련만 그 또한 쉽지가 않다. 직장은 물론 창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해야 한다. 학업을 지원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기존의 직업재활프로그램에 변화가 필요하다.

고용을 유지하는 근로자는 물론 그의 고용주에게도 지금보다 많은 지원과 격려를 해주어야 한다. 그 노동의 힘으로 근로장애인들이 스스로 가정을 이끌어가고 노후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생산적인 복지이고 효율적인 복지이다.

최근 들어 척수장애인 중에 기초생활수급권을 탈피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용자(勇者)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주 바람직한 상황이다. 정부의 지원에 안주하는 수동적인 자세보다는 경쟁의 시대에 당당히 도전하고 노력하는 바람직한 모습이다.

이런 용자들은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식을 개선하며 사회통합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용자들이 많이 나오게 하려면 당연히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다양한 지원들이 나와야 한다.

직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체육활동 등 각자의 사회활동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제도적인 지원과 지역사회의 인프라가 필요하다.

척수장애인들의 사회복귀를 저해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의료적 지원의 부족이다. 아시다시피 척수장애인 손상이후 배뇨와 배변이 조절이 안 되는 치명적인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외출을 하려면 물도 안 먹고 음식도 조절하기도 한다. 지금보다 장애인 화장실이 부족하던 때에는 대기업 회장님보다 더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외출을 하던 때도 있었다. 특히 배뇨는 3~4시간 마다 소변을 빼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장계통에 문제가 생긴다.

외국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가도뇨를 위한 1회용 도구는 충분한 양만큼을 보험으로 제공한다. 이는 척수장애인의 사회활동과 건강에 매우 중요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2013년 7월부터 요양비로 제공을 하고는 있으나, 선천성신경인성방광환자에게만 제공을 하고, 같은 증상인 척수장애인과 같은 후천성신경인성방광환자에게는 제공을 하지 않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척수장애인에게 맞는 보장구의 현실적 지원도 사회복귀를 촉진하는데 중요하다. 특수형의 전동휠체어와 경량의 수동휠체어, 운전보조장치, 리프트장치 등 장애유형에 맞는 편리한 보장구는 본인은 물론 가족과 활동보조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부의 지원정책이 이분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사회복귀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다양한 장애인의 상황과 형편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잣대는 장애인들을 눈치와 기회만 보게 하고 하향평준의 집단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회복귀의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적시에 과감한 초기투자가 필요한 사회복귀훈련을 늦춤으로써 자립을 시키지 못해 두고두고 지질한 보호를 하고 있는 형상이다.

장애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욕구에 걸 맞는 지원이 있고, 지원을 통해 장애인과 가족들의 삶이 증진하고 그 에너지가 생산적인 활동으로 선순환이 되는 바람직한 복지사회를 꿈꾸어 본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세번째로 '장애인 당사자의 문제’가 이어집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