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없는 자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일은 무엇보다도 일자리 찾기입니다. 일자리 찾기는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는 것도 어렵고, 경쟁을 해서 최종 합격을 해야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자리를 신청한 것은 몇 군데 있지만 아직 “함께 일 합시다!”라는 메시지를 받은 곳은 없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쓴 시점에도 두 곳에서 올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그 ‘나의 일자리 구하기 전쟁’의 세세한 이야기들입니다.

장애인개발원에서 나오기 직전에 한 금융회사에서 장애인 사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받고 응모했습니다. 그 때 동료 직원들이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며칠을 수고하면서 작성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허망하게도 서류탈락이었습니다.

그 회사는 “○○문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비장애인 지원자들도 골치 아파하는 자기소개서 준비로 악명이 높았고, 제 친구에게 물어보니 기업문화가 조금 안 좋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역설적으로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문제가 종료되자 장애인고용공단(이하 고용공단)과의 밀고 당기기식 일자리 구하기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인천에 살기 때문에 인천지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천에는 아쉽게도 생산직 위주의 일자리가 많기 때문에(이 이유는 인천은 사무실보다 공장이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천지사의 담당직원은 자신이 아는 서울남부지사의 다른 직원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즉, 서울남부지사로 연결된 것이죠.

서울남부지사에 가기 전, 저는 서울의 구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백지도를 구해서 대학시절 배운 포토샵 실력을 발휘해서 하나의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통근이 가능한 지역, 정확히 답하기 어려운 지역, 통근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지역 세 지역으로 나눈 지도였습니다. 인천과의 거리와 교통조건이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서울남부지사의 담당 직원은 이에 놀라면서 일자리 구하는 문제에 참조하겠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서울대 근처의 작은 사무실을 알아봐주셨습니다. 연결이 되어 사인을 맞춰서 면접 날짜를 잡아 면접을 봤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면접결과는 또 탈락이었습니다.

마침, 모 그룹에서 장애인 공채가 있었습니다. 그 그룹은 사무직을 뽑는 계열사가 단 두 곳 뿐이어서 선택지가 두 개 뿐이었습니다. 1지망과 2지망을 어디로 넣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지원서를 썼지만, 이번에는 기분이 좋게도 서류에서 합격을 했었습니다.

다음 단계이자 최종 관문은 면접이었는데, 이것에 저는 승부를 걸었습니다. 그 면접은 화기애애했었고, 제 전공(사진)에 대한 질문도 받았고, 심지어는 “솔직히 이 질문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면접관)가 질문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스스로 질문을 말하고 그 답도 말해주세요.”라는 특이한 면접 질문도 받았습니다. 물론 저도 답했습니다. 그런만큼 잔뜩 기대를 했건만, 또 탈락이었습니다.

그 이후 며칠간 추스르면서 새 일자리 찾기를 시작했습니다. 한 곳에서는 서류를 보냈는데 서류에서 탈락했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리고, 일자리 구하기 전쟁에서 최악의 면접을 만나야 했습니다.

고용공단 인천지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1:1 면접이 아니라 1(질문자) : 2(면접 응시자)였는데, 부천(실제로 부천시는 인천과 생활권이 겹치는 문제가 있어서 고용공단의 경우에도 경기지사가 아닌 인천지사에서 관할한다고 합니다.)의 한 사무실에서 사무지원 요원을 찾는다고 해서 고용공단 직원과 함께 그 회사의 사무실에 갔습니다.

사무실의 첫 인상은 “진짜 이 직장 다니면 쾌적해서 일할 맛나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잠깐 본 회사 게시판에는 “휴가를 아끼려고 하지 말 것” “야근을 가급적 하지 말 것”이라고 붙여놓은 벽보도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 면접은 최악의 면접이었습니다. 따로따로 면접을 본 것이 아니라 같이 면접을 본 것이 탈이었습니다. 옆에 있었던 장애인 지원자도 공교롭게도 같은 장애유형, 같은 등급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류를 같은 시점에 냈습니다. 즉, 조건은 똑같은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저는 무언가 꼬이고 있다는 분위기가 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응시자에게는 이런 말이 오갔습니다.

“엑셀의 (이런저런) 함수를 하실 수 있으세요?”

“○○에서 일하셨다는데, 어떻게 일 하신 것인가요?” 같은 이런 사소한 질문도 나왔지만, 제게는 자기소개 이후 단 하나의 질문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전 경력이 사실이었냐라는 질문조차 없었습니다.

결국 불합격되었고, 저는 그날 밤 매우 우울하였습니다. 결국 잠이 들기도 힘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배고픈 것은 참아도 불공평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기에 더 그랬습니다. 그래도 다행일까요? 그 몇 주 뒤 다시 새로운 일자리 공고를 찾게 되었고, 지금까지 4곳에 지원서를 보냈습니다.

현재 4곳 중 하나는 현재 3단계의 채용 심사 중 제2단계에서 탈락했고, 하나는 서류 탈락했으며, 두 곳은 서류 심사 중입니다.

이제 ‘일자리 구하기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습니다. 요즘의 삶은 역설적으로 따분한 삶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역설적인 ‘무료함’은 일을 통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폐성장애인의 사무직 활동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확 깰 인재, 여기 있습니다. 바로 저입니다!

추신: 저번 칼럼에서 제가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한 발달장애인분의 근황을 들었는데, 다행히 일자리를 구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의 성함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새 직장에서 열심히 일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