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다가 원치 않는 사고로 하루아침에 하지마비나 사지마비의 3중(중도, 중중, 중복)장애인이 되는 척수장애인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어려움과 자아정체성의 혼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손상 초기의 척수장애인들은 삶보다는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정, 분노, 협상, 우울 그리고 수용의 과정을 오르내리며 장애를 인정하고 수용하게 되는 혹독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희생이 동반되고 일상의 삶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가정이 해체되는 등 최악의 경우도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정신을 차렸을 때 대부분의 척수장애인들은 병원생활 동안 희망을 키우지 못한 미련과 아쉬움을 토로한다. 조금 더 체계적인 재활과정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사회복귀훈련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무런 준비없이 덩그러니 병원 밖을 나서는 불안함 때문에 퇴원이 즐겁지도 않고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주저주저하다가 몇 년씩 장기입원을 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이중으로 사회와 격리되고 뒤처지게 된다.

선진 외국은 손상 후 응급실에서부터 팀접근방식으로 체계적인 의료적 조치를 하고 초기부터 퇴원 후의 사회복귀에 대한 라이프 디자인을 통하여 3~6개월이면 퇴원을 하고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러하지 못한가? 준비되지 않는 사회복귀에 대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이런 자책과 고민은 계속 될 것이다.

우선, 병원이 척수손상 환자를 보는 시각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끝까지 치료하고 보호해야만 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다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장애인으로 봐주어야 한다.

미국의 어느 병원은 척수손상환자가 수술한 부위의 실밥만 제거하면 바로 수영장에서 훈련을 한다고 한다. 잔인한 것 같지만 당연히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재활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복지제도나 지역사회의 인프라 부족을 감안한다면 하지마비인 흉수는 9개월, 사지마비인 경수는 12개월 정도의 입원기간이면 적절하다는 재활의학과 의사들도 있고, 더 짧아도 된다는 견해도 있다.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기간 동안의 재활의 질이다. 단순히 물리치료나 작업치료로 그 긴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과반 이상을 사회복귀훈련에 집중해야 한다.

생활 체력을 키우고 직업상담, 가족상담, 재정교육, 요리실습, 직장으로 돌아가는 훈련, 가정에서 생활해야 하는 훈련, 운전연습, 그간 단절되었던 대인관계 회복 훈련, 성재활, 생활체력 강화, 재활 스포츠체험 등 병원에서 경험하고 체험해야 할 많은 것들을 배우고 나가야 함에도 이러한 것들은 모두 퇴원 후의 일로 미루어 버리는 병원내의 재활과정에 문제가 크다.

경수의 척수장애인들은 활동보조인과의 관계강화를 위한 훈련도 필요하다. 자신을 표현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도 해야 한다. 가능하면 독립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복귀가 준비되어야 당당히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첫 단추를 꿰는 것이다.

이런 훈련들은 제도적으로 강제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재활병원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에 대한 의료수가가 없다. 그러니 전문 인력도 태부족이고 매뉴얼도 없다. 이를 위해 재활의료에 대한 대대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사회복귀 훈련에 대한 포괄수가를 제안한다. 퇴원을 앞둔 2~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사회복귀를 준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고 합당한 수가를 적용하여야 한다.

또는 조기퇴원을 조건으로 재활바우처를 시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바우처를 이용하여 본인이 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훈련을 하는 것이다. 수영장도 다니고 외부활동도 하고 학원도 하고 여행도 다니는 실질적인 사회훈련을 하는 것이다.

척수협회는 사회복귀와 관련하여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척수장애인재활지원센터를 통해 재활병원에 정보 메신저를 파견하여 관련정보를 전달하고 사회복귀의 의지를 심어주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복귀훈련을 통하여 초기 척수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잘 안착하도록 훈련도 시키고 있다.

병원과 지역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는 '일상홈'이라는 공간을 통하여 실생활과 똑같은 환경에서 체험과 훈련을 통해 당당히 지역사회로 나가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척수장애인 당사자가 진행을 하고 있어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이중의 효과도 있다.

병원에서 장기입원을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가 보험합의나 소송때문에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훈, 산재, 교통사고의 경우에도 유리한 결과를 위하여 훈련을 기피하고 가장 최악(?)의 상태를 유지하려하는 모순이 있다.

척수장애는 노동률 손실이 거의 100%임에도 몸에 조금의 변화만 있어도 보상금이 달라지는 현실에 보험금 합의 종료까지는 움직이는 것까지도 두려워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 근육도 죽지 않고 장애이후의 삶에 도움을 주는데, 이런 보험제도의 허점때문에 장애인들을 더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다. 차라리 조기 종결을 하면 사회복귀에 도움이 되도록 지원을 더 해주는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모든 것은 조기에 진행되어야 효과가 더 극대화 된다. 뉴질랜드의 재활병원에서는 수술을 마치고 2주 후부터 직업상담과 심리상담이 진행된다. 가족상담이 진행되고 가족 교육도 같이 진행 된다. 초기에 시간을 끌고 허비할 여유가 없다. 그러는 사이 척수장애인은 사회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장애 이전의 사회적 경험을 충분히 살려서 사회활동이 가능한 인재들을 시스템 부재 때문에 시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두번째로 '준비되지 않은 우리 사회'가 이어집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