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 많은 통증장애인의 유서. ⓒ서인환

스스로 목숨을 끊은 통증장애여성의 가족들은 지난 4월 27일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유서 일부를 공개하기로 했다.

가족들은 세상에 이런 문제가 있음을 알려 제도가 개선되고, 다시는 이런 문제로 인하여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제도의 적용이 잘못되어 억울할 경우라면 행정소송도 하고, 민사재판도 해 보겠지만 법이 잘못되어 장애의 범주를 국한하여 장애 인정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니 통증장애를 가진 그녀는 세상에 이 문제를 알려 바로잡을 방법은 죽음을 택하는 길 밖에 없었다.

분명 손이 마비되어 사용할 수 없고, 상식적으로 확실한 장애가 있는데도 검사방법이 규정으로 정해져 있어 장애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방법에서 결과가 만족하게 나오는가의 판정이니 그 검사 도구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마비는 뇌의 신경교란이나 병변 등도 있고, 뇌성마비도 있으며, 신경조직의 이상이나 신경물질의 이상에서도 올 수 있고, 근육의 이상에서도 올 수 있다.

신경다발이 있는 척수의 손상일 경우 척수장애로 인정하고, 뇌성마지도 장애로 인정되지만 다른 원인으로 인한 신경장애로 인한 마비는 마비로 인정하지 않는 규정이 문제이다.

“손이 다시 부딪혀 부러질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국가장애 신청도 이의 신청도 모두 인정해 주지 않았지. 한번쯤 재판으로 시도하고 싶은데 돈이 여의치가 않다.

의사 선생님들도 손 상태로 충분히 장애가 가능하다는 처음에 가졌던 순수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밤과 낮에 남몰래 싸우고 아파 신음하며 약 먹는 내 삶이 고통스럽다.

이렇게 해서 더 긍정적인 묘책이 생긴다면 모를까? 힘든 나라이다. 동생아! 엄마 모시고 병원 다니며 누나도 CRPS(복합통증증후군) 앓으며 (장애인등록조차 되지 않는다)고는 상상도 못했지. 지금도 학교에서 애들 가르쳤던 그때가 생각나고 눈물 나. 엄마 아빠 잘 부탁해. 언니도.

모두 사랑해. 표현이 서툴렀지. 하나뿐인 OO이도 고모가 고모가 안아주지도 못하고 미안해. 사랑한다.

현실에서 살아남아 보려고 병원치료를 열심히 했고, 약만 늘어나며 몸은 통증과 쇠약해지면서 자신감은 바닥을 향하는 세상에서 내가 이 병을 앓고 살아가야 할 자신이...“

그녀는 유서 첫째 장에서 장애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대항 방법으로 유일한 방법이 죽음이었다. 한때는 교사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였으나, 사고로 병원비를 대다 보니 이제는 재판할 비용조차 없다.

법원에서 재판비용이 없는 사람에게는 재판비용을 빌려주는 제도도 있지만 이는 억울한 사람에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승소 가능한 사람에게 지원한다. 이제 막다른 길에서 선택하는 죽음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유서 두 번째 장에서는 장기간 복합통증증후군을 앓으면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과의 싸움, 가족들에 대한 스트레스, 몸만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지는 과정, 자꾸 악한 마음이 생기는 심정, 그러다가 다시 다잡아먹는 마음가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혼자 느끼는 고통과 남몰래 흐르는 눈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외로움,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빛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러한 입장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화남과 우울, 다시 마음을 다잡아먹고 기대하고 다시 낙담하는 반복에서 생기는 조울증, 결국 자아존재감의 상실과 삶의 의미의 상실.

이렇게 비참하게 살면서 사랑하는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은 몸부림, 이런 찹찹한 심정에서 고생하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묻어 있다. 완전한 절망과 바닥에서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분함도 잘 나타나 있다.

유서 세 번째 장에서는 날이 갈수록 옥죄어오는 고통과 지속되는 좌절, 몸과 마음은 에너지를 상실하고 무기력해지며 나약해져가고, 체력적으로 몸과 마음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심정을 전하고 있다.

오랜 병수발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이고, 장기간 병을 앓는 본인 입장에서는 장기간의 병으로 인하여 버티는 자신감이 완전 소진되어 버리므로 스스로 생을 포기하여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 결국 병이 목숨을 뺏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완전한 자살은 없는 것이다. 자살 역시 타살이다. 더욱 잔인한 타살이다.

유서 네 번째 장에서는 다시 장애등록이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이 사회가 고칠 수는 없어도 고통은 인정해 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것마저도 상상 외로 되고 보니 이제는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는 그녀에게 아직도 그녀를 붙들고 있는 많은 생의 추억과 잔잔한 그리움과 미련이 남는다. 그것이 눈물이 되어 흐르니 그런 추억마저 포기하게 하는 세상이 더욱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나마 살아온 이 세상에서 하나의 따뜻함으로라도 만족하고 세상에 대한 긍정적 생각으로 간직하고 싶어 한다.

유서 다섯 번째 장에서 이제 세상과 작별하고자 하니, 모든 가족들이 생각난다. 가족을 부양하면서 고생하는 자랑스러운 남동생, 몸이 아픈 엄마, 제대로 사랑을 표현해 주지 못한 귀여운 조카,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또한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한 가족들을 부탁하고 싶다.

몸의 손상이 장애가 아니라 사회적 제약이 장애라면 장애판정이 장애이고, 국가가 장애국가이다. 그래서 힘든 나라라 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원망하고 있다.

제도가 장애라서 더 이상 살 수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꽃은 산소와 공기와 물이 필요하고, 장애인에게는 복지서비스가 필요하다. 그것이 삶을 영위하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조건은 커녕 그녀는 화분에 담기지도 못한 씨앗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

인권이란 사람답게 살 권리이다. 그녀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장애인등록이 거부되는 순간 그녀는 복지수급권에서 법적 권리가 부정되었고, 인권이 부정되면서 그녀는 죽임을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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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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