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본 교토에서 공부 중인 큰 딸의 졸업식참가로 온 가족이 일본여행을 하게 되었다. 고베에서 2박, 교토에서 2박 총 4박5일의 일정이었다.

일본은 워낙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어 개인적으로도 여행을 하기에 부담이 없는 나라 중에 하나이다. 늘 여행할 때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특히 휠체어를 타는 입장에서 여기저기를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게 된다. 이번 여행도 다르지 않았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하여 고베로 가는 경로는 다양하다. 전철은 두 번 이상 환승을 해야 하고, 배로 가는 것은 버스를 탔다가 배로 이동해서 또 버스를 타는 등 몇 번의 이동이 번거로워서 포기를 했다.

일행과 짐들도 있어서 공항 바로 앞에서 고베로 직행하는 리무진 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저상버스도 아닌 고속리무진버스에 탈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생겼다. 안내소로 가서 이야기하니 당연히 갈 수 있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후쿠오카에서 타 보았던 리프트가 달린 리무진 버스를 생각했다. 하지만 일하시는 분들이 도와준다는 것이고 당연히 들어서 올려준다는 것이었다. 고민도 없이 도움을 받기로 하고 어르신 두 분이 몸만 들어 올려주어 앞자리에 마련된 우선석에 앉아서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리프트가 있거나 저상버스였다면 폼(?)나게 올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도움을 요청하면 어떻게든 도우려고 하는 그런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합리적인 편의제공’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물론 그런 도움에 응하는 당사자의 자세도 중요하겠지만....

고베에 도착하여 숙소인 호텔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지만 초행길이라 녹록치가 않았다. 산노미야역에서 몇 번이나 길을 물어 본 후에야 방향을 정하고 가는데 다시 방향이 헛갈려서 지나가는 길에 건물을 관리하시는 분에게 길을 다시 확인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사거리의 육교아래에서 육교를 올라 건너갈 방법을 찾아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아까 그 건물관리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나에게 육교를 건너지 않고 행단보도로 건너는 방법을 소상히 알려주고 가셨다.

일본사람들의 친절함이야 익히 알고 있지만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길을 묻고 가는 장애인이 못 미더우셨는지 따라 오셔서 가르쳐주고 가니 이 어찌 감동적이지 않겠는가?

언덕 중간에 있는 호텔을 찾아 열심히 휠체어를 굴리고 있는데 이런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한 아이를 업고 한 손에는 아이를 잡고 가던 아주머님이 도와주고 싶다는 말을 하셔서 극구 사양을 했다.

대체 이 나라는 무엇 때문에 이런 배려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어린 아이부터 아주머니, 할아버지까지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긴 것은 교육의 힘이 아닐까 한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보고 배우는 것이 문화가 된 것일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삼대를 거쳐 교육을 통해야 문화가 되는데 한국도 약자를 배려하고 도우려는 것이 문화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일본의 첫 밤을 보냈다.

둘째 날은 고베의 전경을 보기 위해 케이블카(로프웨이)를 탔다. 1995년 고배대지진이 발생하였으나 흔적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대지진 이후 생겼다는 케이블카를 타고 록코산(六甲山)위에 있는 누노비키 허브공원까지 가기로 했다.

일전에 중국에서 탄 케이블카는 휠체어를 탄 채로 들어가지 않아 사람은 안고 타고 휠체어는 별도로 들고 탔던 기억이 있어서 승차가 가능하나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한다.

케이블카안의 좌석을 위로 제치고 고정하니 휠체어를 탄 채로 거뜬히 들어가는 공간이 생겼다. 안내원들이 세심하게 도와주고 외부에는 빨간색의 안전바까지 걸어주어 안전도 같이 도모하였다.

위에서는 연락을 받았는지 안내원들이 대기하여 하차를 도와주었다. 정상의 공원에서 중간으로 내려가는 경사로는 케이블카건물 뒤쪽에 있다는 친절한 안내를 빼놓지 않았다. 하산하는 방향에 있는 글래스하우스까지 가는 길들도 조금은 가파르기는 했지만 다양한 종류의 꽃과 식물들을 만끽하면서 안전하게 다닐 수가 있었다.

장애인화장실과 욕실이 있는 장애인객실(베리어프리룸)은 휠체어를 타고 여행하는 나에게는 안식처 같은 곳이다. 고베에서 묵은 로코소(Rokkoso)호텔은 특이하게 장애인객실에 전동침대가 있었다. 높이가 조절되고 머리부분과 다리부분의 각도가 조절되는 침대가 객실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것도 배려차원이 아닐까 한다.

이틀을 묵고 교토로 이동을 했다. 전철에서의 이동도 큰 문제가 없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전철을 타면 승무원들이 와서 경사로를 놓아주고 했는데 그런 서비스는 받지를 못했다.

교토에서의 이동은 주로 택시를 이용했는데 기사 분들이 세심하게 휠체어를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웃돈을 요구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지도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편의시설들의 구비와 장애인을 존중하며 대하는 태도가 법률적인 강제에 의해서만 되었을까?

아니면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소비의 주체로 보고 시설을 갖추고 대우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령사회인 일본에서는 장애인과 노인들을 시혜의 대상만이 아니라 소비자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는 돈을 쓰는 주체이고 그들을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서비스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경제 질서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나라도 장애인과 노인을 소비자로 본다면 지금보다 대하는 태도가 훨씬 더 달라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들도 경제활동을 하고 소비주체가 되어야 하고 당당한 위치가 되어야 한다.

오랜만에 간 일본여행에서 장애인들이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