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취직을 준비하던 와중에 개발원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회계팀에서 연락이 온 것인데, 급여를 보내주는 계좌가 아닌 별도의 개인연금인가의 계좌를 만들어오라는 연락이었습니다. 퇴직금을 지급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지정된 은행에 가서 계좌 신청서를 작성하기로 하고 은행에 갔습니다. 요즘은 정부에서도 경고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같은 금융사기를 방지하기 위한 특별한 서류를 쓰기도 했고, 복잡한 금융상품이라서 그런지 특별한 서류도 여러 장 써야 했습니다.

실제로 어렵게 느껴졌던 문서 ⓒ장지용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무슨 약관 같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서류에는 깨알같이 조문이 쓰여 있었고, 거기다 양면인쇄를 해서 양면에 조문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안내도 조금 부족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은행 책임자가 한 일은 주요 조항과 금리, 금융상품의 특성 등에 대한 부족한 설명과 함께 그저 “여기, 여기, 여기에 사인하세요!” 라는 말 밖에 없었습니다.

깨알같은 조문이 뭔지 묻기도 전에 결국 사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제 감정은 “이건 내가 봐도 알기 어려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달장애인식으로 말하면 ‘쉬운 안내서’가 제공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웬만한 비장애인들도 읽기 어려운 논문(물론 분량이 많거나 영어 논문은 읽기가 어렵지만)도 읽고 쓸 수 있고 법령도 읽어낼 수 있는 저지만, 개발원 시절에 썼던 근로계약서보다 매우 어려운 조문으로 구성된 약관 조항이라 교육을 많이 받은 발달장애인이라는 저조차도 난감했던 것입니다.

사실, SNS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재미난 글이나 곱씹어봐야 할 글 등도 가끔 올라옵니다. 그 중에 기억나는 것은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한 행정 문서의 디자인을 자신의 생각으로 재구성했는데, 막상 이 재구성한 결과가 오히려 보기에도 좋고 쓰기가 더 편했다는 점을 발견했을 때 발상의 전환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요즘은 성년후견인 제도의 보급이 진행되면서 성년후견인들이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의 의사판단 능력이 있어서 가정법원에서 성년후견이 승인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보니 발달장애인들에게 금융이나 행정관련 문서에서의 ‘쉬운 안내서/서식’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관청이나 은행 등에 가면 써야 할 서식은 매우 많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자동화기기가 아닌 은행 창구에서 돈을 찾으려고 해도 정해진 서식에 찾아야 할 금액을 써서 은행 창구 직원에게 주기 전에, 서류가 있는 통에는 언제나 사용 예시가 본보기로 하나씩 걸려있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 이 것은 매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미리 쓰는 방법이나 써야 할 부분을 알려주는 것은 발달장애인들을 돕는 방법인 '사전 설명'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런 방법 덕분에 쉽게 금융거래를 하거나 행정 업무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발달장애인들도 편하게 쓸 수 있는 문서 양식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발원 시절, 배리어 프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가보고 싶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광주 야구장)가 배리어 프리 건물로 인증 받았다는 사실도 알 정도입니다.

이렇게 건축과 미디어 분야에 배리어 프리에 대한 개념이 도입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이 지체/뇌병변장애인이거나 시청각장애인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것은 발달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섭섭한 느낌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은 나름대로 힘든 것이 많고,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았다는 저조차 알아듣기 어려운 문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그 출발점을 찍을 수 있을 듯합니다.

발달장애인들은 일부 지적장애인들이 뇌병변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고(저는 직접 그 실제 당사자를 고등학생 때 본 적이 있습니다.), 개인에 따라서 지체장애를 동반하는 경우를 뺀다면 발달장애인들에게는 문턱이 골치 아픈 게 아니라 알아듣기 어려움, 그 자체가 골치 아픈 것입니다. 게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 전달이 골치 아프다면 더 복잡한 문제가 되고 맙니다.

이제 발달장애인에게도 배리어 프리를 선물해 줄 때가 된 것입니다. 물론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방송물의 프로토 타입이 공개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나아가 행정이나 금융 등에서 써야 할 서류에서도 배리어 프리를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일단 발달장애인도 반드시 알아야 할 사안을 쉬운 단어와 알아듣기 쉬운 표현, 그림 등을 통해서 새로운 문서로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발달장애인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서를 만든다면, 작성하기가 매우 편해질 것입니다.

비용 문제 때문에 별도의 문서를 만들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바로 작성 방법이나 내용을 자세히 제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방법들은 비장애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다릅니다. 똑같이 다르다보니 불편한 것도 똑같이 다릅니다. 지체장애인들에게는 문턱이 골치 아프고, 시청각장애인들은 영상이나 소리를 못 보고 들어서 골치 아프고, 발달장애인들은 알아듣기 어려워서 골치 아픕니다.

그 ‘골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배리어 프리가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에게도 배리어프리가 있다는 것을 저는 증언합니다. 이제, 발달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에 대해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봅시다.

끝으로 배리어 프리에 대한 제 철학을 이야기하고 오늘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들을 위한 것이, 결국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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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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