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할로우(Harry Harlow)의 애착형성 실험. 사진 출처 : http://psychclassics.yorku.ca/Harlow/love

"접촉, 접촉, 접촉……."하고 소리 내 읽어봅니다. 입술이 살짝 붙어 ‘접’이 안에서 살짝 머물렀다가 수줍게 ‘초오옥’ 하고 밖으로 톡하고 내뱉어집니다. 두 손바닥을 ‘접’하고 붙였다가 ‘초오옥’하고 띄어 봅니다. 접촉은 명사인데도 의태어처럼 느껴집니다. 접촉이 피부 촉감을 지나 체화되는 행위에서 오는 연상일지 모르지만 ‘초오옥’이라는 어감에는 왠지 촉촉한 인간미가 베어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 사이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Harry Harlow)는 1958년에 ‘사랑의 본질(The Nature of Love)’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한 실험을 합니다. 그 실험의 발단은 이러 합니다.

그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붉은털 원숭이를 엄마와 분리시켜 우리에서 혼자 키웠습니다. 깨끗한 환경에서 좋은 먹이를 먹고 자란 이 원숭이가 자연적인 환경에서 자란 원숭이보다 더 튼튼하게 자라자 할로우 박사는 스스로가 더 좋은 엄마라는 것을 확신 했습니다.

하지만 신체는 더 튼튼한데 할로우 원숭이들은 웅크리고 앉아 손가락만 빨며 먼 산만 바라보는 이상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할로우 박사는 다른 실험을 합니다. 접촉이 애착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한 유명한 실험입니다.

상자 안에 ‘먹이를 주는 철사 엄마’와 ‘먹이는 주지 않지만 촉감이 부드럽고 폭신한 헝겊 엄마’를 설치하고 원숭이를 상자 안에 풀어 놓습니다.

먹이는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것이지요. 박사는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 더 애착을 느낄 것이다 라는 가설을 합니다.

하지만 원숭이는 철사 엄마에게서는 먹이만 먹고 그 외 모든 시간은 헝겊 엄마 곁을 떠나지 않는 행동을 보입니다. 좀 더 자라면서는 헝겊엄마한테 매달려 철사엄마의 우유만 먹기도 합니다. 공포를 유발하기 위해 혐오 자극을 주어도 원숭이는 쏜살같이 헝겊엄마에게 달려가 안깁니다.

해리 할로우(Harry Harlow)의 애착형성 실험. 사진 출처 : http://psychclassics.yorku.ca/Harlow/love

즉 아기가 엄마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것은 엄마가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접촉을 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 결과에 충격을 받은 할로우 박사는 더 자극적인 방법으로 3가지의 괴물 헝겊 엄마를 만듭니다. 엄마1은 원숭이를 계속 떨어뜨리고 엄마2는 압축공기를 쏘아 새끼를 놀라게 했으며, 엄마3은 갑자기 쇠못이 튀어나오게 해서 새끼를 찌르게 했습니다.

새끼 원숭이가 어떻게 했을 까요?

새끼들은 아프고, 놀래고, 피가 나도 따뜻함을 주는 엄마에게 매번 돌아갔습니다. 할로우 박사는 접촉이 주는 따뜻함을 사랑의 본질로 결론 내렸습니다.

■소중한 것

2015년 1학기 FUN & KICK(서울대학교 특수체육교실)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학기엔 담당 학생이 바뀌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소녀입니다. 첫 수업이라 서로 낮설고 서먹 서먹 합니다. 이름을 불러도 쉽사리 오지 않습니다. 접촉 접근!

소녀에게 다가가 내 손바닥을 지그시 소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소녀의 이름을 부릅니다. 잠시 있더니 소녀는 저쪽으로 뛰어 갑니다. 나는 다시 다가가 손바닥을 올려놓고 내 소개를 먼저 합니다. 손을 쑥 빼버립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일단 손잡는데 성공 했으니까요.

체조시간입니다. 손바닥 마주치기 동작에서 소녀는 싱긋 웃으며 내 손바닥과 오른손, 왼손 번갈아 손뼉치기를 합니다. 손바닥 밀기 동작에서도 같이 손바닥을 마주대고 으랏차차 밀기를 합니다. 체조에 있는 동작이지만 그래도 접촉을 할 수 있어 뿌듯해집니다.

체력 측정을 하기 위해 윗몸일으키기기를 했습니다. 윗몸일으키기를 할 때는 잡아주는 사람이 살짝 힘을 줘서 앞으로 당겨줘야 합니다. 우리는 번갈아 윗몸일으키기를 했습니다. 나는 소녀의 종아리를 잡고 살짝 당겨줍니다. 소녀도 그렇게 합니다. 힘의 상호작용을 접촉을 통해 체험하는 것입니다. 1분간 12개씩 했는데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끈이 생긴 것 같습니다.

‘비밀 인사’를 만들기로 합니다. 소녀가 살짝 소심한 성격이라 허리춤에 손으로 소심한 하트를 만드는 것이 둘만의 비밀 인사입니다. 우리는 수업 시간 틈틈이 살짝 살짝 소심한 하트를 주고 받습니다. 처음엔 내가 먼저 하트를 계속 날렸습니다. 수업 마치고 돌아갈 때는 소녀가 먼저 뒤돌아보더니 소중한 하트, 하트를 날립니다.

연애 하는 것 같습니다. 사내 연애커플이 남들 눈치 채지 않게 자기들만의 수신호를 주고받는 그런 설레임이 스물 스물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한 한기 동안 접촉이 사랑으로 변하기를 바랍니다. 영화 ‘자유의 언덕’에서 모리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착하고, 예의 있고, 깨끗하다고. 그것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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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건강운동과학연구실 특수체육전공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재학 중 이며, 서울대학교 'FUN&KICK'에서 발달장애학생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체 표현에서 장애인의 움직이는 몸은 새로운 움직임이며 자기만의 고유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다. 칼럼을 통해 발달장애학생들의 움직임과 영화 및 예술을 통해 표현되는 장애인 움직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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