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어머니 생신날, 모두 모여 노래방에 간적이 있다. 나름 분위기를 맞춰주느라 신나게도 놀고, 약간 느린 템포의 노래도 부르고, 즐겁게 놀았다. 그런데 팔순노모는 장애 자식을 데리고 사는 딸의 모습이 마냥 슬프기만 했는가 보다.

내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든 분위기 맞춰 노래를 부르든 노모의 눈에는 아프게만 보였다. “니가 저 녀석이랑 얽매어 살다보니 많이 힘든가보구나” 노래를 마치고 자리에 앉는 나한테 말씀하셨다.

머리 꼭대기까지 올랐던 흥은 한순간 깨지고 전기에 감전된 듯 온몸이 굳어졌다. “아휴, 엄마 그렇지 않아요. 늘 이렇게 잼있게 살아요.” 내가 아무리 정색을 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노모는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외면하셨다. 그 뒤로 가족행사에서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 않았다.

장애 자식을 데리고 사는 딸은 늘 불행할거라라는 팔순 노모의 고루한 생각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다. 1년에 명절을 포함해 서너 번 어머님을 뵌다. 뵐 때 마다 근심어린 눈빛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닌다.

자주 뵙지도 못하는데 어머님의 그런 모습이 부담스러워 마주앉아 이야기조차 못한다. 어머님이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텔레비전을 보니까 장애인들도 가르치니까 잘 따라하더라. 달리기도 잘하고 수영도 잘하고 빵도 잘 만들더라. 요즘엔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곳도 잘 해 놓았더라. 이제 너도 아이를 시설에 보내고 니 인생을 살아라 등등.

어머님은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장애인만 나오면 집중해서 보신다. 당신의 외손주가 자폐성장애인이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자폐성장애가 뭔지도 모르는 분이시다.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나 쐬고 오려고 어머니께 아이를 맡겨 놓고 대문을 나섰다. 딱히 갈 곳도 없고 그냥 걸었다. 논두렁엔 보란 듯이 한겨울을 이겨낸 냉이가 오목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대견스런 마음에 쭈그리고 앉아 뽑으려고 엄지와 검지를 냉이 밑둥까지 깊게 잡고 당겼다. 웬걸 냉이뿌리는 꽁꽁 언 땅에 박혀 꼼짝 않고, 이겨진 이파리만 손가락사이로 떨어졌다.

언 땅에 뿌리박고도 파란 이파리를 내놓을 수 있는 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직 겨울바람인지, 벌써 봄바람인지, 들판의 바람은 수런거리던 나의 마음을 조용히 잠재웠다.

긴 시간 있을 수가 없어 부리나케 집에 왔다. 마루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루는 완전 초 긴장의 상태였다. 온 몸의 열기가 머리를 확 나꿔챘다. 마루바닥엔 깨진 컵, 숟가락, 주전자까지 뒹굴고 있었다.

아! 또. 어머님이 아이를 데리고 공부를 하셨다. 내려 올 때마다 어머님은 아이한테 하나라도 가르치면 되지 않겠냐며 식탁 위에 이것저것 물건 놓고 가져오게 하셨다. 아무리 해도 부질없는 일이라고 말씀을 드려도 전혀 듣지를 않으셨다.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또 하신 거다. 물건이름도 잘 모르고 시키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녀석이 컵을 집어던지고 다른 물건들도 마구 던진 것이다.

나는 아이를 통제시키고 휴지에 물을 적당히 적셔서 마루 구석구석을 쓸어갔다. 아주 미세한 조각이라도 남아 있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경험에 의하면 휴지에 물을 적셔서 몇 번이고 훓어 내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웅크리고 앉아 마루를 닦는데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매스컴에 나오는 장애인 프로그램은 장애인이나 그 가족한테 희망을 주고자하는 내용이 많다. 그러나 보는 관점에 따라서 희망을 전하고자 했는데 희망은 보이지 않고 외로워질 때가 있다.

한때 마라톤 영화가 나왔을 때 우리 아이를 아는 사람들은 자폐성장애인들은 달리기도 잘하던데 왜 시키지않느냐며 답답해했다. 완전 무능한 엄마로 전락되곤 했다.

그러잖아도 내가 우리 아이한테 무엇을 얼마만큼 해줬을까? 나의 노력부족일까? 하며 비관적일 때가 많다. 특히 자폐성장애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가슴 한켠으로 휭하니 바람하나 지나간다. 주간보호센터만이라도 편하게 다닐 수 있으면 행복할텐데…….

팔순 노모가 텔레비전을 보고 판단하는 고루한 생각이 어쩌면 자폐성장애인들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기도 하다. 장애자식을 데리고 사는 딸이 아무리 웃어도 눈물로 보이는 팔순노모의 모습이 딸은 더 힘들다. 어머님은 말씀하신다. 너보다 더 못한 사람을 보고 살아라. 그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알려주시는 거다. 어머님은 어머니 말씀만 하시고 딸은 딸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부자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보고 행복을 얻는다면 그 행복은 깨질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 되면 부자는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나 장애인 가족은 아주 작은 일에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데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단지 불편함 때문에 행복이 가려져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 불편함을 혼자서 해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이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내가 그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깨진 컵을 치울 때 작은 조각이 손바닥에 박혔는지 닿을 때마다 따갑고 아프다. 아무리 빼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간 빠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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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명 칼럼리스트
발달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인식개선 사업 차원으로 시내 고등학생, 거주시설장애인, 종사자들한테 인권 교육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장애인당사자의 삶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에 근거해 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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