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속 암호

2차 대전에서 독일은 ‘에니그마’라는 암호로 전 유럽을 기습하여 매초에 3명씩, 많은 사람을 죽였다. 이에 연합군은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암호 해독 비밀특수조직을 만든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이 조직에서 ‘크리스토퍼’라는 암호 해독기를 만들어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천재 수학자 앨런의 생을 그린 영화다.

학교에서 다수의 학생들과 달랐던 앨런은 심한 왕따를 당한다. 그런 앨런에게 유일한 친구는 크리스토퍼였다. 그는 앨런의 다름은 특별함으로 해독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남들과 다르다는건,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거야.

때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어.

크리스토퍼는 앨런을 살렸고, 앨런은 전쟁에서 크리스토퍼로 1,400만명의 생명을 살렸다.

이 암호 해독기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연결하는 특별하고 소중한 ‘컴퓨터’가 되었다. 놀랍게도 이 컴퓨터의 언어는 오직 0과 1, 이진법이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앨런의 능력과 다름을 특별함으로 만든 크리스토퍼의 수용으로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다른 세상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건, 다른 세상을 만들수 있다고. 다르기 때문에 특별해질 수 있다. 특별해서 소중하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중, 크리스토퍼 앞의 앨런. ⓒ정희정

암호 해독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욱이는 오늘도 도통 알 수 없는 몸짓과 말을 한다. 신나게 몸풀이 체조를 하다가 털썩 주저 앉아 버린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나 했더니, 해맑은 얼굴로 나를 보고 방긋 방긋 웃고 있다. 일어나자고 꼬드겨 봐도 도통 일어나지 않고 손가락으로 바닥을 휘휘 젖고 있다. 하기 싫다는 건지, 다른걸 하고 싶다는 건지 알수가 없다.

자폐학생들의 몸짓과 말은 마치 암호 같다. 암호 해독기 크리스토퍼처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이런 욱이의 행동에 대해 정확한 의미를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암호작성술에 관련된 거야. 누구나 볼 수 있는 메시지지만, 누구도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 "그게 대화하는 거랑 뭐가 다른데? 사람들이 서로 대화할 때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절대 말하지 않아. 말하는 사람은 원래 뜻과는 다른 걸 말하고, 듣는 사람은 무슨 뜻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알아내야 하잖아."

계속 하고 싶다고? 좋다고? 싫다고? 어렵니? 다른걸 하고 싶어?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 다리가 아픈거야? 힘들어서 못하겠어? 배가 고픈거야? 다른 아이디어가 생각난거야?

욱이의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체화(embodied)된 기억들이 몸을 통해 발현되는 암호를 차근히 해독해 본다.

그렇게 계속 해독하다 보면 error, error, error가 뜨다가 ok하고 반응을 할 때가 있다. 그 때가 암호가 해독되는 멋진 시점이다. 누구나 보고 들을 수는 있는 욱이의 메시지이지만, 무슨 뜻인지는 그 것을 해독하려는 사람만 알 수 있다.

앨런의 암호 해독법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 가장 기본은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오늘도 난 너의 0과 1을 해독하려고 마음을 다해본다. 너를 해독하는 것은 좁아지고 눌려진 내 마음 속 편견의 주름을 펴준다. 그리고 나는 그만큼 넓어진 내 안의 소중한 세상을 보게 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정희정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건강운동과학연구실 특수체육전공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재학 중 이며, 서울대학교 'FUN&KICK'에서 발달장애학생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체 표현에서 장애인의 움직이는 몸은 새로운 움직임이며 자기만의 고유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다. 칼럼을 통해 발달장애학생들의 움직임과 영화 및 예술을 통해 표현되는 장애인 움직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