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방문한 광화문역 농성장. 벌써 1,000일이 가까워져 온다. ⓒ박정혁

지난 2일,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체험홈에 거주하는 석찬 씨와 광화문역 농성장을 방문했다. 농성장 천막에 붙은 날짜 수는 어느새 896일, 1,000일을 앞두고 있었다.(이글을 쓰는 순간 900일이 넘었다.)

"와~! 벌써 100일이 빠진 1,000일!"

3년 전 여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국가에 요구하기 위해 광화문역 대합실 한 켠에 농성장을 세웠다.

당시에 장애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평소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던 나조차도 ‘그걸 폐지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생기게 할 정도로 파격적인 문제제기였다.

그런데 왜 전장연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들고 나왔을까?

그 당시 mb정부는 모든 장애인들에게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으라고 압력을 넣었다. 가짜 장애인을 가려낸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장애인복지에 투여되는 예산을 한 푼이라도 줄여보자는 속셈이었다.

뭣 모르고 정부가 시키는 대로 등급재심사를 받았더니 1급 장애인의 급수가 2급이나 3급 장애인이 되는 기적(?)이 전국 각 지에서 일어난 것이다. 장애등급의 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장애인 활동보조를 받으며 즐겁게 살던 장애인들이 등급재 심사를 받은 뒤엔 등급이 떨어져서 더 이상 활동보조를 못 받게 되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이런 일들이 생기니 장애인들은 중증과 경증을 막론하고 장애등급재심사를 회피하게 되었다. 결국 이런 불만과 부작용들이 쌓이고 쌓여 광화문역 농성장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곧 있으면 1,000일이 되는 광화문 농성장을 지켜보며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지금 당장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사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모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폐지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폐지가 된다면?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겠다. 첫 번째는 이상론적인 상상이다. 일단 광화문농성장의 요구 조건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요구가 사라지겠지. 장애인복지 예산이 대폭 늘어서 누구나 필요한 장애인복지서비스 신청만 하면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겠지. 이렇게 될 수 있을까? 글쎄?

두 번째는 현실적인 상상이다. 전제 조건은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해마다 장애인복지 예산을 10%씩 늘려가겠다고 약속했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고 장애인이면 누구나 장애연금과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장애인들이 너도나도 장애연금을 신청하고 활보서비스를 신청할 것이다. 하지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어서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가 고민지점으로 남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장애등급으로 결정되는 장애인복지서비스가 꽤 된다. 장애연금, 활보서비스, 장애인콜택시도 1급과 2급만 탈 수 있다. ktx등 기차표도 등급에 따라 차등지원 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나는 위의 4가지 모두 이용자격을 갖고 있으며 이용하고 있다. 예산이 한정된 상태에서 등급제가 폐지되면 몇 가지 부분에서 어떤 방식이든 1급이었던 장애인들의 양보가 필요할 것이다.

위의 언급이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일지 모른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장애등급제가 폐지될 것이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지금의 의학적으로만 치중한 장애판정체계를 대신하는 장애종합판정체계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장애등급제 폐지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되지만 광화문역 농성을 계기로 수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장애 1급이며 현재 장애인복지의 모든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는 나는 장애등급제 폐지가 가져올 독점의 권한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 반문한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고 한정된 예산을 나누는 과정에서 장애 1급이었던 장애인들의 양보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

장애등급 1급이던 자들이여!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쳤다.

우리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해 우리의 독점적 권한을 양보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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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혁 칼럼리스트
현재 하고 있는 인권강사 활동을 위주로 글을 쓰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며 느꼈던 점, 소통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자립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들과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융화되기 위한 환경을 바꾸는데 필요한 고민들을 함께 글을 통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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