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적혀있는 글귀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여러 종류의 ‘착시’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보인다.

우리는 비단 자동차 사이드 미러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상황들에서 눈 뜨고 코 베이곤 한다.

1960년대 초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2015년 현재 OECD 회원국임과 동시에 GDP 순위 세계 13위에 오른 그야말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이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며, 상전벽해(桑田碧海)이며, 꿈이 현실화된 기적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에 의하면, 한국의 복지비용은 GDP 대비 7.4%로 OECD 34개 회원국들 중 28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최하위권인 것이다. 이런 마당에 장애인 복지에 대한 무관심은 더 말할 나위도 없어 보인다.

이런 현상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판단으론, 우리나라의 총 복지비용 규모는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여전히 세계 29위로, OECD 회원국들 중 최하위권이기 때문이다. 즉 실질적인 경제지표인 1인당 GDP 대비(29위) 매우 적절한 수준(28위)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중국은 GDP 규모가 세계 2위이며, 인도는 10위며, 나이지리아는 21위이다. 하지만, 이 나라들의 1인당 GDP규모는 중국은 80위이며, 인도는 144위이며, 나이지리아는 117위이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수준만큼의 복지를 누리고 있다.

그런가하면, 복지천국 덴마크는 GDP 규모가 세계 33위에 머물고 있지만, 1인당 GDP 규모는 세계 6위다. 이쯤 되면, 그동안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던 착시효과들 중 하나가 벗겨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시, 이 나라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빈부격차 순위’를 알아보자. 우선, 상위 1% 소득점유울 순위의 경우 34개 OECD 회원국들 중 17위로 영국이나 미국보다도 소득분배가 잘 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상위 10%의 소득점유을 순위에선 18위로 일본과 비슷하고 미국보다 낫다. 객관적 지표상 우리나라는 아직 소위 ‘승자독식’의 사회가 아니다.

이에 더해서, 우리나라의 복지형태는 ‘비과세감면’ 부문이 있으며, 소득 하위 40%에 해당하는 국민들에게는 아예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다. 일단 먼저 세금을 걷어서 그 다음에 복지비로 사용하는 나라들과는 그 방식이 다름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가하면, ‘북지비 상승율’ 부문에선 복지선진국들의 그것보다 훨씬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런 면을 다 고려한다면 순위는 더 올라가게 될 것이다. ‘거시적 차원’에서 한국은 복지후진국이 결코 아니다.

그럼 이 나라 ‘복지’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에 대해서 추후에 계속해서 논의할 것이다. 워낙 미시적 측면에서, 그리고 의식의 측면에서 문제들이 심각하기 때문에 짧은 지면에 다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지적해야 할 것은 ‘복지’에 대한 개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이 나라에선 ‘복지’를 ‘시혜(施惠)’나 혹은 그것도 아니면 ‘채권’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는 복지를 누릴 자격이 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복지는 잘난 것들이 못난 것들에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에 비해서 ‘자선이나 기부’에 극도로 인색한 나라다. 미국 같은 나라와는 규모나 질에서 아예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이런 마당에 세금으로 복지를 한다니까 왠지 마치 자기 돈으로 하는 것 같은 우쭐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그마저도 남에게 주기 아까워 고스란히 되받거나, 심지어는 낸 것보다 더 받으려는 탐욕으로 가득하다.

무차별적 '무상복지'니 '보편적 복지'니 하는 것들은 사실 이 나라 국민들의 일반적 무지와 몰염치의 폭로에 불과하다.

‘복지’는 우선 ‘공동체’ 개념과 관련된다. 자연세계도 그렇고 인간사회도 그렇고 잘 나가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부류도 있다. 또한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오늘 제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라 해도, 내일 당장 삶이 무너질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간 사회는 늘 패자나 하위계층에 대한 ‘안전망’을 필요로 한다. 그런 한에서, 승자나 중상위 계층의 삶도 보다 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사람들 중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 조건이나 개인적으로 힘이 부치는 이유로, 열심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형편이 좋지 않은 자들이 있다.

이 경우 사회가 이들을 조금만 도와주면 각자의 ‘벽과 장애’를 극복하고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극대로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사회적 도움이 최소로 주어지기만해도 워낙 하려는 의지로 넘치기에 이들은 비용 대비 훨씬 남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이때 복지는 결코 지출이나 소모가 아닌 ‘투자’가 되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는 위의 두 가지 성격을 가장 극적으로 통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복지'의 정수이자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복지'를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간적 삶과 자아실현은 물론이거니와 공동체 전체의 이윤 증대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와 관련해서 이 나라엔 많은 신기루들이 있다. “보이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혹은 “빛나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우리는 이 경구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여러 종류의 허상에 직면해 있기에 늘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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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 칼럼리스트
뇌병변장애인으로 연세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철학박사)했으며, 연세대, 항공대, 홍익대, 교통대, 경희사이버대 등에서 강의해왔다. (사)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이사다. ‘장애’는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며 한국과 한국인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중요한 코드들 중의 하나라고 판단하며, 주로 인문학적 관점에서 ‘장애’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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