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안 좋다며 입원을 한지 이틀 만인 지난달 30일에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였고 2월 1일에 발인을 하였다는 소식에 한동안 넋을 놓았다.

65세의 나이지만 청년처럼 건강하셨는데 욕창으로 오랜 기간 고생하신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었다. 퇴원 후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다시 입원하신지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는 비보에 척수장애인의 한사람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최근 들어 자주 접하는 한국과 일본의 활동가들의 비보를 들을 때 가슴이 아프고 서운함은 다를 바 없다.

일본에 있는 전국척수손상자연합회 부이사장이신 오하마씨는 작년 강연에서 과거 50년간의 일본 내 척수장애인의 건강문제를 조사하였는데 첫째 위험요인이 신장문제, 두 번째 피부문제, 세 번째가 관절문제라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척수장애 특유의 건강문제는 세계 어디나 동일한 것 같다. 욕창의 경우, 아마 피부의 노화로 재생력이 젊을 때와는 다르므로 고생이 더 심하셨을 것이다.

2012년 직원연수 때 일본오사카타워에서 마코토씨와 기념촬영. ⓒ이찬우

마코토씨를 처음 만났을 때가 2009년에 일본 오사카의 빅아이에서 개최된 전국척수장애자연협회 창립50주년 행사인 국제심포지움에 초청을 받아 갔었는데, 한국, 필리핀, 대만, 뉴질랜드. 일본 등 5개국이 모여 각 나라의 척수장애에 관련된 토론을 하는 그런 행사였다.

당시 일본오사카척수손상자협회 회장으로 능숙한 영어로 행사를 총괄했었고 소탈하고 정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밤낮없이 참가자들의 세심한 부분까지 챙겨주던 분이어서 많은 부분을 배우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는 만남은 다음 해인 2010년, 우리 협회가 매년 주최하는 국제세미나에 한일척수장애인정책교류의 연사로 초청하여 뵙기도 했다.

비보를 접한 후에 마코토씨가 이날 강연했던 자료들을 다시 펼쳐 모았다. 상당히 시대를 앞섰고 전향적이며 우리 협회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많은 부분들이 있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론가로서 활동가로서 열심히 사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개념이라며 ‘토탈・리하빌리테이션(Total-Rehabilitation)’을 소개했는데 중도・중증・중복장애의 척수손상자의 지향점으로, 제도와 사회환경이 정비되어서 장애가 있는 사람도 인생을 당연하게 보다 잘 살게 하기위해 실시하는 종합적 훈련방법 또는 지원방법을 말한다고 했다. 직업, 보장구, 활동보조 등 장애인의 사회생활을 촉진하기 위해 당연히 지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협회가 주장하는 재활치료가 전부가 아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사회복귀훈련의 당연성을 이야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개인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1975년 사고로 장애를 입은 이후에 삶의 방식을 스스로 터득하고 배웠고, 장애인의 주도적 역할에 대하여 JICA(JIMTEF)업무로 6년간 20개국 이상의 개발도상국 연수생 대상으로 강연하기도 했다고 했다 .

당시에 척수손상자협회, 휠체어테니스협회 일과, 피어서포트(동료상담), 강연자, 각종 위원(좌장)의 역할도 하고 일본 46개 광역지자체 및 해외 20개국 이상에서 활동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분이 나의 롤모델이 되었고 필자도 이런 모습을 본 받려고 노력을 많이 하였다.

세 번째 인연은 2011년 3월에 발생한 후쿠시마원전사고로 불안감이 고조되었을 때, 마침 필자의 큰딸이 일본 교토에 있는 대학교로 입학예정이었는데,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때 마코토씨에게 일본의 근황을 물어봤었다.

이분이 며칠 후 장문의 글로 쿄토는 후쿠시마와 거리도 멀고 바람의 방향이 쿄토방향으로 불지도 않아서 영향권 밖이니 안심하고 딸을 보내도 된다는 이야기에 안심하고 보냈다.

딸이 일본에서 공부를 할 때에도 간간히 아르바이트로 통역업무를 맡겨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주셨다. 딸을 보낸 입장에서 그래도 지인이 일본에 있다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감사한 일 이었다.

이후에 마지막으로 마코토씨를 본 것이 2012년 3월에 중앙회 직원들의 해외연수로 오사카의 빅아이(Big-i, 국제장애인교류센터)를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에 빅아이 센터장으로 부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연수를 기획했지만 너무 뿌듯했었다.

한국의 장애인단체나 관계자들이 꼭 들러보고 싶어 하는 완벽한 베리어-프리의 건물에 지인이 센터장이라는 것이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분의 따스한 미소도 볼 수 없고, 긴박했던 재활의 역사이야기도 그리고 역동적이었던 삶의 이야기도 열정적인 연설도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가 몸소 느끼면서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그의 동료, 후배들과 그와 만났던 전 세계의 많은 장애인들의 마음을 통해서 다시 꽃을 피울 것이다.

다시 한번 고인이 되신 마코토씨의 명복을 빕니다.

마코토씨(왼쪽 하단 두 번째)는 2012년 직원연수 차 방문 당시 일본 오사카의 빅아이 센터장이셨다. ⓒ이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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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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