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활동보조인 교육장에서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가 주최하는 활동보조인 양성과정에서 ‘활동보조인의 자세’에 대한 강의를 하러 이룸센터에 갔었을 때다.

교육장은 늘 70명 정원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를 기억하는 것은 그녀가 내게 특별히 친절하였고, 그녀의 갸냘픈 목소리가 특별히 인상적이었기도 하지만, 쉬는 시간에 목이 마를 것이라며 내게 귤을 주고, 여섯 살 아래 남동생이 있는데, 시각장애인이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시각장애인이라고 소개를 하였고, 장애인을 대할 때의 태도나 에티켓을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설명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녀도 남동생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말했을 것이다.

나는 활동보조인은 30계명을 지켜야 한다며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그리고 ‘서비스의 품격을 높여라’라는 계명에서 본인은 어느 쪽인지를 물었다.

예를 들어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이 하루 종일 더운 여름에 길을 가야 할 경우, 이렇게 더운 날 장애인은 전동휠체어에 앉아 스위치만 누르면 되지만 따라가는 활동보조인은 너무 힘든데, 구두쇠 스크루지 장애인은 아이스크림 하나 안 사준다고 투덜거릴 것인가, 아니면 하루 전날 내일은 어떤 일이 있는지 미리 확인하여 보리차를 얼려 가지고 와서 같이 한 잔 마시고 가자고 할 것인가?

시간당 수가는 동일하지만 서비스의 품질은 다르다며 고객이 감탄할 정겨운 서비스를 하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귤을 주는 분은 좋은 활동보조인일 것이고 바람직한 활동보조인의 자세인 것 같다고 농담을 하였다.

그녀와의 만남은 이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서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평소 교육을 받는 분들에게서 활동보조인 일을 하다가 언제든지 의문이 있으면 전화를 하라며 번호를 남긴다.

그녀는 남동생을 소개했다. 현재 나이는 40세이고, 22살 때에 시신경 위축으로 실명을 하였다고 했다. 실명원인이 안약의 부작용이라고 했다. 나에게 대부분 상담전화를 하는 분들은 법률적 도움을 요청하는 분이 많아서 나는 직감으로 약물부작용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를 묻는 전화라고 생각했다.

그 약물명이 무엇인지 아느냐? 18년 전에 제약회사에 부작용에 대해 시비를 걸어보았느냐고 물었다. 확실한 증거나 증명이 없이는 단정하기란 어렵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녀의 나이 46세, 4형제인데 바로 아래의 남동생이 약사라고 했다. 그렇다면 약의 부작용에 대해 더 잘 알 것인데, 확실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런 증거는 없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그렇다면 약물중독에 대한 법률 상담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제약회사에서 인정을 하지 않겠지만 그 당시 부작용에 대해 항의라도 했다면 다른 사람이 부작용을 알고, 제약회사에서도 오남용에 대한 주의를 설명서에 포함이라도 시킬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쉽다고 말했다.

스테로이드 성분은 자극성이 있어 남용한다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고, 시신경은 중추신경이라 손상된 것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병원에서 수술을 하여 원인을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진전은 방지할 수 있을지언정 회복은 불가능한 것이 시신경위축이다.

남동생은 18년 동안 집안에만 있었단다. 갑자기 찾아온 암흑 속에서 실어증이 걸린 사람처럼 말을 잃어 버렸단다. 그러다가 지루하니까 술을 달라고 하여 마시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담배도 많이 피운다고 하였다.

거식증에 걸려 음식을 폭식하고 그것을 다시 토해 내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면 6시간을 변기에 앉아 있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혼자 중얼거리며 벽과 대화를 한단다.

그러더니 그녀의 목소리가 딱 끊어졌다. 한참 후 그녀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남동생이 환청과 환시현상을 경험하며 괴로워한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발작을 하고, 괴성을 지르고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했다. 몸부림치고 발악을 하여 서울에 있는 그녀가 급히 용인으로 갔단다. 119를 불렀으나 그래도 통제가 되지 않아 경찰이 와서 수갑을 채워서 병원으로 갔단다.

나는 강제입원에 대해 상담을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며칠을 입원한 상태에서 약물투여가 되었고, 동생은 진정을 하게 되었으며, 정말 실명 후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오늘은 가족회의를 하여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논의를 할 것이라고 했다. 술과 담배가 문제이니 이를 모두 근절시켜야겠다고 했다. 수갑을 차고 잡혀가는 동생의 모습이 너무나 무섭고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리고 자해행위를 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과거 여러 번 그런 일이 있었단다.

나는 현재 기대고 있는 것이 술과 담배뿐인데, 그것을 모두 빼앗으면 무슨 낙으로 살겠느냐며 모두 한꺼번에 빼앗지 말고 술은 끊더라도 담배는 서서히 줄이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가족 중에서 강제입원에 대해 의견을 낼 지 몰라서 나는 단 한 번 발작을 한 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기도원에 귀신이 들어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그런 일은 허다하며, 약물치료로 조절이 가능하다고 말해 주었다.

장애인 중 어린 시절 늦도록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경우 욕구불만이나 불안증세, 우울증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소금을 꾸러 보낼 것이 아니라 우울증 치료제 단 몇 알이면 해결된다.

그리고 발악을 하고 환각증세를 보인다고 하여 정신장애 2, 3급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위험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우울증은 약을 거부하는 증세도 포함하고 있다. 약을 보면 '약에 의존하여 살면 무엇 하나'하는 생각이 들어 더 우울해지기도 하며, 약물은 식욕을 떨어뜨리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개 우울증으로 오랜 기간 시달린 사람이 자살한 집에 가 보면 몇 년 동안 먹지 않고 숨겨 놓은 약이 발견된다. 그러므로 약을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먹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순간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새소식’ 편집부장으로 일하던 소설가 시각장애 여성이 우울증으로 자살한 일이 떠올라 목이 메었다.

장애인이 되는 것은 모든 것을 상실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처지를 가족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말문을 닫아버리고 자신만의 세계 속에 침잠하며 방안에서만 18년을 살았으면 한번쯤 발악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화가 나면 큰 소리를 내고 곧바로 큰소리를 낼 일이 아닌데 하고 생각하지만 큰소리를 낸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상대방의 잘못을 비난하며 더 큰소리를 치듯이, 일단 발악을 하면 통제 불능이 되도록 끝까지 자신의 처지에 대해 저항하는 마음으로 발악해 보는 것이니 수갑을 채울 지경이라고 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동생은 말세를 이야기하며 666이라는 숫자와 악마를 본 이야기도 한단다. 그것은 하루 종일 혼자 있고 암흑 속에서 한 가지 생각에 집착한 것이며, 다른 것을 보게 되면 사람은 보고 있던 것을 버리게 된다고 말해 주었다.

음악을 듣는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장애인이지만 무엇인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거나, 같은 시각장애인을 만나고 장애인단체와 교류를 한다거나, 소일거리를 만들었다면 그렇게 오랜 기간 터널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한 세상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전문가에 의한 상담도 중요하지만 같은 장애인과의 대화 속에서 많은 정보와 해답을 찾으며 라포를 형성할 수 있으니 형식적 상담보다는 자연스러운 만남과 외출을 권했다.

그녀의 남편은 방송국 보도국에서 카메라맨이란다. 그래서 연예인과 만나게 해 맨토가 되어 꿈을 가지게 하면 어떨까? 방송에 출연하게 하여 말을 하게 하면 좀 후련해하지는 않을까 등등도 생각했었단다.

나는 방송에 나갔다가 마이크 울렁증으로 출연을 하지 못하거나, 연예인을 만나서 자신의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고 느끼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먼저 동료 장애인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해서 외출의 용기를 가지는 것부터 해 보라고 했다.

사석에서 최종균 장애인정책국장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국장님은 장애인단체들이 새로운 외국 제도를 도입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가 있는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아무런 정보도 없고 혜택도 받지 못하는 무수한 장애인들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지방에 많이 분포하는 그런 장애인들의 눈높이에서 정책을 개발해야 하며, 장애인단체들이 그런 분들을 사회로 이끌어내는 손을 내미는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동료상담의 효과이니 그런 역할을 인정한다면 동료상담 서비스를 제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염전노예, 인신매매로 팔려가 강제노역을 당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미아가 되어 집을 찾아오지 못하고 어딘가에 있는 5만명의 발달장애인을 생각하면 아직도 사각지대가 너무나 많다.

나는 기다린다. 그녀의 가족회의 결과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그리고 지역의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지도 궁금하다.

그녀는 장애인복지관도 알고, 시각장애인연합회도 안다. 그런 단체를 찾아가고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공공기관처럼 알아서 오는 자에게는 사무적 혜택을 주는지 모르겠으나 찾아가는 서비스나 동료찾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문은 열려 있으나 마음은 닫혀 있는 관료적 장애인단체의 행정적 업무처리가 반성되어야 한다.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며 오늘도 그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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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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