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소년 이야기

이미 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다이얼을 돌리는 마음은 얇고 날카로운 꼬챙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스윽 나의 명치를 통과해버린 느낌이다. 익숙해지기 어려운 거절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의 시릴은 부모의 이혼으로 양육원에 보내진 소년이다. 시릴의 아빠는 금전 문제로 아들의 자전거마저 팔아버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이사를 갔다. 자전거를 되찾기 위해 예전 집으로 도망친 시릴은 되쫓아온 보육원 선생님과 실갱이를 벌이다 넘어지면서 우연히 사만다를 붙잡는다.

“잡아도 되는데 너무 세게 잡지마”

흘리듯 말한 사만다의 이 대사가 잊혀지질 않는다. 정전이 된 어두운 곳에서 손을 휘휘 저으며 불안하게 한 발자국씩 떼어 놓다가 안정된 무언가를 잡았을 때의 안도감. ‘다행이다.’

시릴의 위탁모를 자청한 사만다는 수소문해 부자가 만날 약속을 잡아주지만 아빠는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는다. 그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지만 매몰차게 거절 당한다. 어린 소년은 아빠가 자기 존재를 거부한다는 것을 눈과 귀로 확인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손톱으로 양뺨을 긁고, 창문에 머리를 찧는다. 내 심장이 짖이겨지는 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에 대한 자책이 아닐까.

사만다는 그런 시릴의 손을 잡아주는 단 한사람이다. 반항하는 시릴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호되게 꾸짖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 앞에서도 사만다는 시릴에 대한 책임을 회피를 하지 않는다. 꽉 죄어 묶여진 시릴의 마음 속 매듭은 그런 사만다의 수용으로 조금씩 느슨해진다.

지적장애소녀 이야기

거의 집에만 있었던 민희(가명)는 동반자 선생님을 만나면서 처음 춤 수업에 참가했다. 155cm 정도에 마른 몸과 투명한 피부를 가진 22살 지적장애소녀다. 외부와의 만남이 잦지 않아서인지 첫 수업에는 오른쪽 창문가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양손을 꼼지락거리면서 눈을 위로 뜨며 불안한 듯 주변을 탐색한다. 이렇게 움직여볼까, 저렇게 움직여 볼까 해도 요지부동 움직이질 않는다. 그렇게 약 한 달이 지났다.

어느 날인가 부터 민희가 발을 떼어 놓기 시작한다.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두 번 그리고 손뼉도 친다. 긴장으로 올라갔던 어깨가 내려오고 양팔을 좌우로 쫘-악 벌리기 시작한다.

마음을 여는 것과 몸의 움직임은 같은 벡터를 갖는다. 마음이 움직이는 양과 방향만큼 몸도 함께 한다. 움직이는 민희에게 친구들은 이전 수업 동작들을 가르쳐 준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맑은 햇살이 비추던 6월. 우리는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노래에 맞춰 무용실을 마구 뛰어 다닌다.

그대의 뜨거운 목소리, 그게 나의 구원이었어./ 마른 하늘을 달려가 그대에게 안길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 대도 좋아./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 해도./ 내 맘 그대 마음 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꺼야.

우하하하!! 이히히히! 소리 내 웃기도 하고, 아! 야! 하면 소리도 친다.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 위로 홉홉! 뛰기도 한다. 어떤 움직임이건 그건 소녀의 마음이다. 홉! 마음1, 아! 마음2, 이히히! 마음3. 우리는 소녀의 마음과 함께 활기차다.

3개월이 지나자 민희는 무용실 문을 터프하게 열면서 들어와 인사를 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선생님 춤춰요'하면서 양팔을 들고 위로 찌르기를 하면서 폴짝 폴짝 뛰기도 하다. 투명한 레몬향이 난다.

말도 많아졌다. 어제 한 일, 먹었던 것, 주말에 한 것……, 재잘 재잘 풀어 놓는다. 늘 혼자만 있었던 민희에게 수용과 기다림의 시간은 움추려 있던 소녀의 고운 품을 열게 한 모양이다.

세련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거절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거절이 아프고 시리다는 것을 안다. 그런 내 마음으로 너를 돌아보면 한 뼘 정도 수용의 폭이 넓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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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건강운동과학연구실 특수체육전공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재학 중 이며, 서울대학교 'FUN&KICK'에서 발달장애학생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체 표현에서 장애인의 움직이는 몸은 새로운 움직임이며 자기만의 고유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다. 칼럼을 통해 발달장애학생들의 움직임과 영화 및 예술을 통해 표현되는 장애인 움직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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