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8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입학식이자 고등학생으로서의 첫 등교일이었기에 조회사항 몇 가지를 끝으로 간단히 오전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소나야, 잠깐 선생님 좀 보고 갈래? 교무실로 가자.”

막 교실 문을 나서려던 찰나,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보통의 아이들이었다면 새 학기 첫 날 공연한 담임선생님의 호출에 ‘내가 뭘 잘못했나?’하고 지레 겁을 먹기도 하겠지만 그저 "네."라는 짧은 대답을 남긴 나는 터덜터덜 담임선생님을 따라 교무실로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총 9년간의 학창시절을 지내는 동안 내게 학기 초 담임선생님의 부름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딱히 시키는 이가 없어도, 똑같은 녹음테이프라도 틀어놓은 듯 매 학기 초가 되면 새 학년이 되었다는 기쁨과 설렘을 채 누릴 새도 없이 담임선생님과 독대(獨對)하여 "소나야, 앞으로 1년 동안 선생님이 어떻게 해 주면 좋겠니?”라는 등의 질문이나 “너는 몸이 불편하니까 이런 건 안해도 되고, 이러이러한 건 빠져도 되고.”등의 통보를 받는 것은 마치 비장애 학생들의 틈에 섞여 학교를 다니는 것에 대한 대가라도 되는 양 새 학기를 시작하는 내가 어김없이 통과해야 하는 관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쳇, 어쩐지 조용히 넘어가나 했네.’

자신의 의지로 충분히 사리분별이 가능한 고등학생의 나이쯤이면 한 해 정도는 그냥 넘길 수 있을 법도 한데 마치 정해진 법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해 거르는 법이 없었던 필수 관문. 머리로는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어쩔 수 없는 심통 아닌 심통의 싹이 자랄대로 자란 나는 퉁명스레 담임선생님의 앞에 앉아 선생님께서 하실 말씀을 기다릴 뿐이었다.

“소나, 반가워. 그 동안 학교 생활하면서 힘든 일은 없었니?”

“힘들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괜찮았어요.”

먹구름이 드리워질 대로 드리워진 내 마음을 아시는 지 모르시는 지. 초지일관 맑게 개인 화창한 날씨처럼 환한 미소를 띄우시던 담임선생님.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뒤이어 하신 담임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오늘 소나를 처음 만나고 네 얼굴을 보면서 선생님은 소나가 참 씩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선생님 생각이 틀리진 않은 것 같네?

선생님은 앞으로 소나랑 함께 생활하면서 소나가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특별하게 대해 주지 않을 거고 그냥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해 줄 거야. 그러니까 소나도 앞으로 뭐든지 열심히 하기. 잘 할 수 있지?”

“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뜻밖의 이야기에 놀란 토끼눈이 된 내 모습에도 대수롭잖게 말씀을 이어가시던 담임선생님께서 물으셨다.

“뭘 그렇게 놀라? 아니면 특별히 선생님이 이렇게 해줬으면 하고 생각하는 거 있어?”

“아……, 아니요, 아니요! 없어요. 선생님! 그냥 그거면 돼요!”

그 날 이후, 나에겐 앞서 지내왔던 9년의 시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학교생활이 시작됐다.

청소도, 심부름도, 그리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벌을 받는 것까지. 적어도 하루 중 반나절, 학교에 있는 시간만큼은 ‘장애인’이 아닌 일개 학생일 뿐이었고, 더 나아가 체육대회, 사생대회, 수학여행 등 학교생활 10년 동안 결코 범접해서는 안 될 다른 이들의 이야기로만 여겨졌던 학교의 대외적인 활동들까지 모두 섭렵하며 그야말로 '시간이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즐거운 학교생활을 만끽하던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그 1년은 아무런 꿈도, 목표도 비전도 없이 무기력하기만 했던 사춘기 고등학생이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어엿한 청년이 된 후에도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라고 온 세상에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만큼 큰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만을 습득한 것이 아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더 이상 내 앞에 주어진 세상의 벽에 “못해요, 못해요.” 주저하는 것이 아닌 “할 수 있어요. 해 볼게요!”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자신감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특별함은 당연함으로, 망설임은 결단으로, 상상은 도전으로. 조금씩 조금씩 장애인이 아닌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사회인으로 그렇게 내 직분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세상과 섞여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누군가의 친구로, 누군가의 아들 딸로, 혹은 직장인으로, 선생님으로, 학생으로…….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우리는 각각의 위치에 맞는 수많은 역할들을 수행한다. 무엇인가의 역할을 잃어버리게 되면 위축되며 자연스레 자신의 존재감 또한 상실하게 된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회적 이치일 것이다.

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 장애인들 역시 흔히들 말하는 사회적 약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필요한 역할이란 삐까번쩍 거창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이 되어 보는 것, 혼자 당당히 외출하여 맛있는 밥을 사 먹는 손님이 되어 보는 것,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내가 되어보는 것. 뭐 이런 평범한 것들이다.

“에이 뭐야.” 이상의 역할이 너무나 평범해서 누군가에겐 별 의미가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겐 이 평범한 역할을 지키는 것 조차 무척이나 힘겹다.

한 번의 버스 승객이 되기 위해 대놓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기사들의 승차거부를 몇 차례나 당해야 한다. 한 끼의 외식을 위해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듯 주위사람들의 온갖 수군거림과 주목을 한 몸에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평범한 역할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세상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안경을 쓴 사람, 벗은 사람, 뚱뚱한 사람, 날씬한 사람.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그 누구도 이상하다고 손가락질 하거나 비아냥대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 또한 바로 이런 것이다. 그 다양한 사람들의 틈에서 자연스레 섞여 살 수 있는 것. 우리의 조금 다른 걸음걸이에도, 조금 어눌한 말투에도 때로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 행동에도 틀리다 이상하다가 아닌 그저 그런 다양함이라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 그저 그런 평범한 역할을 위한 평범한 시선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8년 전, 겁 많고 어린 제자가 당당히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그 누구보다도 평범한 시선으로 함께 평범한 삶을 그려주셨던 우리 담임선생님처럼 말이다.

“잘하고 있어. 잘 할 수 있어.”

8년 전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단 한순간도 변치 않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결같은 시선으로 부족한 제자의 삶에 너무나도 큰 지지를 보내주시는 담임선생님. 나의 은사님이 무척이나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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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나 칼럼리스트
한국성서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어 직장생활 중에도 수필, 동화, 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습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동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사회복지학도로써의 다양한 관점, 그 밖에 평소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생각들을 장애인 당사자인 자신의 경험담과 잘 배합하여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여담 형식으로 꾸밈없는 우리네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연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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