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강의안 프리젠테이션 화면. ⓒ박정혁

‘인권’이란 무엇일까?

사실 이 물음에 쉽게 대답할 사람은 드물다. 풀어서 ‘인간의 권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 ‘인간의 권리’냐고 다시 되묻는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인권강사 양성교육 수업을 들었다. 인권강사를 하게 되면 강사비가 좀 나온다는 인권강사 활동을 하고 있는 아는 형의 말에 귀가 살짝 솔깃했던, 약간의 사심도 있었지만,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들과 어떤 형태든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간에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이러한 기대를 품고 양성교육의 첫 강의를 들었다. 지금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인권강사의 자세에 대한 강의였던 것 같다. 생각보다 쉽게 볼 일은 아니었다.

보통의 경우 초등 또는 중, 고등학교를 찾아가 학생들 앞에서 인권강의를 해야 하는 직업이 인권강사다. 물론 대상이 학생이 아닌 사회인일 수도 있고 장애인일 수도 있다. 또 지역사회 속에 장애인일 수도 있고 시설에 사는 장애인일 수도 있다. 대상마다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의 권리’는 무엇인가다.

인권교육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강사와 인권교육대상자들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인권강사는 ‘인권이란 이것이다!’라고 콕 집어서 말해주기보다 여러 가지 자료와 내용들을 교육대상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소통을 통해 정답에 접근하며 이해해가는 작업이다. 특히 장애인권에 관해 누구보다 전문가는 바로 장애인당사자들이다.

나는 여러 단체들을 통해서 인권강의를 들었다. 들은 내용들은 사실 지금 1/10도 기억이 안 난다. 약 4개월 동안 10회가 넘는 인권강의를 들으며 고민의 지점들이 하나씩 하나씩 생겨났다.

‘인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이런 난해한 질문을 초등학생들에게 한다면 무슨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노들야학과 동문장애인복지관,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 이렇게 3곳에서 인권강사 양성과정을 수료했고 강사 파견은 주로 노들과 동문을 통해 나갔다.

나가기 전 짝꿍을 선택했고 서로 선택한 짝꿍과 함께 인권강의안을 만들었다. 지금껏 배운 것들을 토대로 강의안을 짰다. 파워포인트로 강의안을 만들었다. 다행히 난 ppt짜는 기술이 있다. 짝꿍들과 협의 끝에 달팽이 캐릭터가 탄생했다.

달팽이는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볼품없는 동물이다. 그리고 나의 별명이기도 했다. 시설에서 살던 시절, 수동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손을 쓸 수 없는 나는 발로 휠체어를 밀고 다녔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운동장을 다니는 모습을 어떤 친구가 보고 달팽이란 별명을 지어줬다.

달팽이는 느리지만 꾸준하게 전진한다. 달팽이의 그런 특징들을 인권강의안에 담아내 보았다. 강의안의 전체적인 구성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계단과 턱 등 교통약자들에게 다가가기 힘든 물리적인 접근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달팽이가 길을 가다가 발이 아파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길을 가다가 계단을 만나고 저상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것이 강의안 구성의 일부다.

달팽이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특히 유치원생부터 초등 6학년까지 잘 먹히는 캐릭터다. 달팽이를 나와 동일시하는 효과가 있었으며 덕분에 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달팽이 선생님으로 통하게 되었다.

인권강의를 하게 되면서 또 한 가지 알게 된 재밌는 사실은 나와 같이 언어장애가 있는 인권강사들의 말을 초등학교 저학년일수록 더 잘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사실 인권강사로 파견되기 전까지 내가 가진 언어장애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노들야학 인권강사들 중엔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주 잘한다. 아무런 도구도 없이 말로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강사들 중에는 커다란 말판(한글 자음, 모음을 모아놓은)을 이용해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아이들의 나이가 어릴수록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이 말을 했을 때 그 말에 이어지는 말을 추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란 심리학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후자의 경우는 강사가 말을 하려고 자음을 찍고 모음을 찍는 과정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놀이를 하는 기분이라 배운다는 느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강사들 보다 더욱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첫 강의를 동문에서 의뢰받았다. 유치원 강의였다. 달팽이가 처음 데뷔하는 날이기도 했다. 달팽이가 커다란 화면 오른쪽에서 머리를 내밀며 기어가기 시작한다.

인권강사 달팽이 샘은 과연 잘 기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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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혁 칼럼리스트
현재 하고 있는 인권강사 활동을 위주로 글을 쓰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며 느꼈던 점, 소통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자립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들과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융화되기 위한 환경을 바꾸는데 필요한 고민들을 함께 글을 통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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