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윤이 엄마의 피맺힌 호소의 글을 인터넷에서 접하면서 상윤이 엄마의 심정을 안타까워하는 댓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관심을 가지고 같이 애통해하는 것이 무관심한 것보다는 상윤이 엄마에게 조금의 위로는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식이 죽어가는 것을 직접 경험한 상윤이 엄마에게는 어떤 위로도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이런 사건을 접하면 가족들은 처음에는 어떤 상황파악도 하지 못하는 그저 쇼크만 받은 멍한 상태가 된다. 그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건을 미리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세상 모두가 원망스러운 분노가 닥쳐온다.

특히 세계 장애인의날인 12월 3일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 달이 지나도록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의 탓으로 여겨야 할지 정리도 되지 않는다.

상윤이 엄마는 가해자측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현재 가해자인 18세 청년 발달장애인은 구속되어 2인실에 수감 중이며, 21일 재판을 앞두고 있다.

여기서 가해자란 먼저 가해행위를 한 집안의 부모일 것이고, 다음으로는 복지관 위탁을 준 구청, 가해자가 다니던 학교, 복지관 운영을 맡은 교회, 복지관 관장 등등일 것이다.

그냥 억울한 상태에서 부모가 되어 어떤 조치도 해 주지 못하고 그냥 사건은 세상에서 묻혀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죽은 아이에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지막 책임이라고 느낄 것이다.

상윤이 형은 4살 때에 어린이집 원장이 발달이 지체되고 산만하니 치료를 받으라는 권고를 했다. 그리고 1년 6개월 동안 복지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장애인등록을 한 것이나, 특수학교 유치부에 입학한 것은 아니었다.

사건 당일도 24개월된 동생도 같이 데리고, 미술치료를 위해 복지관을 방문했는데 복지관 3층 복도에서 발달장애인 이군이 갑자기 나타나 동생인 아기를 데리고 철문을 열고 베란다로 가서 아기를 아래로 던졌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현장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상윤이 엄마는 만류하거나 제재하지도 못했다.

먼저 이 사건의 책임을 따져보자. 가해자 이군은 평소에 공격성이나 반사회적 행동을 하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이군은 위험인물인데, 철저한 보호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것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리 생각할 수 있으나, 가해자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이제 장애가 어느 정도 감소되어 혼자서 복지관을 다닐 정도이니 장애아를 가진 부모로서 양육의 부담과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늘 하면서도 그래도 이제 나아지고 있다는 안도감에서 살고 있었다.

이군은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거나, 보복성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아이를 아래로 던진 것은 마치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인형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아이로서는 단순한 행동일 수도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런 사회적 개념과 생명의 위험성에 대한 행동조절을 가르치지 못한 교육이 문제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교육에 안전과 사고방지, 생명보호와 피해를 주지 않는 올바른 태도에 대한 수업이 교육과정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군의 부모로서는 너무나 죄스럽고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미안함과 가해자의 집안이라는 손가락질을 온몸으로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만 법적으로 가해 당사자가 아니므로 민법상 손해배상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로서 도의적 죄책감은 있다.

이 군의 아버지는 상윤이 어머니에게 사과를 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부산지역 장애인 부모들은 상윤이의 장례식장이나 집안을 방문하기도 하고, 위로를 하기도 하였으며,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남을 별도로 주선하기도 하였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같이 안타까워하였다.

그리고 이 군이 수감 중인 교도소를 찾아가 이 군을 걱정하며 면회를 하였는데,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는 질문에 이 군은 ‘아가야 미안해! 집에 빨리 가고 싶어’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1월 5일 사과와 위로를 하며 대책을 논의하는 모임에서 상윤이 부모는 다음에 만날 때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대책을 가지고 만나자고 말하였다. 금전적 보상이 대책인지, 다른 책임질 방법이 있는지 아무리 고민을 하여도 속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실 얼마를 보상한다고 하여 위로가 될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런 이야기는 더욱 상처를 주고, 내가 아이와 돈을 바꾸자는 소리를 했냐며 비난을 받을 수도 있어 너무나 조심스럽기도 하다.

보통 이런 사건이 생기면 재판이 끝나기 전에는 충격 속에 흥분된 가해자 사람들과 사과나 합의를 하지 말고 좀 기다리라고 안내하는 것이 복지사나 경찰들이다.

이 군의 어머니는 죽고 싶은 심정으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어떤 가해자 가족들은 이런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오히려 반대로 “감옥에 있는 아이를 원망해라. 나는 내어놓은 자식이다. 내가 어쩌란 말이냐?”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는 혼자 있는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기도 한다. 이는 자기방어 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책임에 대한 자포자기일 수 있다.

이군의 학교측에 책임을 지라고 하면, 학교측은 방과 후에 학교 외의 장소에서 일어난 일을 학교가 책임질 수는 없다고 말할 것이고, 복지관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면 피해자인 아기가 복지관 이용자도 아니고, 복지관의 과실은 아니니 책임질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말들은 상윤이 엄마 입장에서는 너무나 야속하고 비인간적으로 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업무상의 냉철한 판단은 또 그럴 수 있다.

활동보조인이 이군을 제대로 캐어하지 못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활동보조인은 그야말로 일상생활 보조인이지 책임자가 아니다. 그리고 항상 현장에 같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구청의 입장에서는 복지관을 위탁을 주었을 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이용자나 방문자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도 없다.

그렇지만 상윤이 엄마의 모든 관련자들에 대한 원망과 사건을 막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세상 전체가 원망스럽고 한풀이를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일 것이다.

책임을 묻고 보상을 받으면 위로가 될 것 같지만, 사실 사랑하는 아기의 죽음은 어떤 보상으로도 복구될 수 없으며, 책임자를 하나 찾아 ‘나쁜 놈’이라고 낙인을 찍고 평생 그를 미워하며 그 힘으로 살아간다고 하여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

그런 엄마 입장에서는 수사를 마치고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임에도 수사는 잠잠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청이나 복지관, 학교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니 부도덕하게 느낄 것이다.

상윤이 엄마의 글에서 “모두들 법적인 책임이 없다면서 발달장애인 이군에게만 책임을 미루고 몰운대복지관, 사하구청, 내원정사재단, 한솔학교, 부산시교육청, 호산나교회 장애인복지재단, 장애활동보조인도 모두들 이 사건이 조용히 끝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한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법은 의도된 범죄나 과실적 책임만을 묻고 있으니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도의적 책임마저 의식하지 못한 것 같으니 하늘이 놀랄 것이다. 우리는 사고를 범죄로 만들어 처벌하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면도 있다.

“장애인의 인권과 권리는 중요하지만, 가해자가 장애인이 되었을 때 누구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는 상윤이 엄마의 물음은 우리 장애인 모두의 숙제이자, 이 사회의 숙제이다.

상윤이 엄마의 글은 책임을 묻도록 해달라는 것과 사회가 상윤이를 기억하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 재방방지를 해 달라는 부탁의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럼 앞으로의 과제와 방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첫째, 복지관을 이용하는 발달장애인을 보호하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복지관의 시설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최소한 철문을 아무나 열지 못하도록 관리를 해야 했다. 방화문으로서 비상시 대피를 위해 문을 폐쇄하거나 잠금장치를 해 두는 것이 불법일 수 있다. 그렇다면 법을 고쳐서라도 사각지대를 해결해야 한다. 아파트 옥상이 청소년 탈선장소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방법상 옥상 대피가 필요하지만 문의 출입을 금하는 것처럼 말이다.

복지관이 장애인 1인마다 관리자를 두어 문제행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장에 유일하게 있었던 상윤이 엄마도 청년의 완력에 사건을 막지 못했다면 주로 노인여성인 활동보조인이 있었다 하더라도 사건을 막기는 어려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베란다 등에서 물건을 아래로 던지면 행인이 위험할 수도 있고, 상윤이와 같은 불의의 사고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안전 펜스 정도는 최소한 갖추어야 했다.

그러니 장애인복지관은 장애인편의시설만이 아니라 위험물을 제거하고 안전장치를 하는 것도 종합적으로 보는 베리어프리 인증을 의무화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음으로 이런 사고를 당한 피해자나 졸지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모를 위한 복지사는 없는가이다. 복지사는 모든 사회적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만능해결사처럼 하면서 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업무는 없는 것인가? 정부가 별도로 지원하는 예산을 주지 않아서인가? 아직 복지사가 이 문제에 개입했다거나, 가족들과 같이 있어준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단지 전문영역이라는 학교나 학회에서 배운 치료나 재활은 답습하여 써먹으면서 정말 심각한 상처인 사회적 사고 이후의 문제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창조해 내지 못하는가?

다른 문제는 복지의 문제인데, 왜 이러한 문제는 정신의학적 의료 분야라고 포기하는가? 라는 것이다.

의사는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치료할 뿐, 현장을 찾아가는 의사는 없다. 의료법상도 병원 내에서 의료적 서비스를 하는 것 외에는 불법으로 되어 있다. 스스로 치유가 필요한지 의식되지 않는 상처는 누가 도와줄 것인가?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그 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해줄 이웃들이 필요하다. 혼자 있으면 어떤 극단적인 돌발 행동도 할 수 있고, 과도한 심리적 부담으로 우울증이 생길 수도 있다. 소중함을 잃으면서 가치관도 잃게 되고, 삶의 의미도 붕괴될 수 있다. 아픔을 함께 해 주고 같이 있어 주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 역시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국민 모두가 상윤이의 명복을 빌어주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나아가 단지 사건 발생 당시 눈물이나 충격으로만 반응을 보이다가 시간이 흐르면 완전히 망각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고예방과 사후 대책에 대한 사회적 역할을 찾아보아야 한다.

사고를 입은 사람의 심정이나 애틋한 피해자의 사연, 사고현장에서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충격적이고 감성적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감성으로 사건을 대하지 말고 재발방지와 사건 이후의 심리적 극복을 돕는 실제 존재하는 장치를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문제는 누구의 책임이냐가 아니라 스스로 극복하면 다행이고, 시간이 지나면 치유될 것이고 등등의 안일한 태도에서 벗어나 진정 함께 하고 이겨내도록 돕는 시스템이 사회에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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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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