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이자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한국뇌병병장애인인권협회 부회장 등 장애인의 권익옹호를 위한 치열한 투쟁을 해 오던 박홍구 씨가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오후 7시 경 지인의 맥주집에 몸을 의탁하여 혼자 기거하다가 화마에 희생되었다고 한다.

최근 연이은 장애인의 사고로 인한 사망사건은 우리들을 여러 차례 공황상태로 몰고 있는데, 내년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연말을 정리해보고자 하는 시점에 다시 그 공황상태는 우리를 찾아와 아물지 못한 상처를 파고들었다.

장애인들이 화재사고가 나면 스스로 화재를 진압하거나 몸을 피하지 못하고 희생되는 경우가 많고, 구조대가 도착하여 화재를 진압하여도 이미 목숨을 잃은 후가 되는 것이 허다하지만 늘 장애인의 이슈를 목소리 높이 외치며 집회와 농성 현장을 누비던 장애인이면 누구나 알만한 장애인 활동가가 그런 희생을 당했다고 하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고는 신문이나 방송에 자주 나오지만 희생자들이 내 이웃은 아니었는데, 이제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분이 그런 희생을 당했다고 하니 언제든지 그러한 불행이 우리의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충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장애인들의 복지증진과 인권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나 가리지 않았던 분이고, 장애인의 인권운동을 천명으로 여기고 최소한 남을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투쟁하면서 살아오신 분이라 최소한 성과를 보고 만족해하거나, 어느 정도의 안정된 삶이라도 살아야 사회가 정의로운 것인데 우리를 위해 고생만 죽도록 한 사람이 너무나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망자에 대한 명복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에게 남겨두고 못다 이루고 간 그의 길을 우리가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약속으로 그의 죽음을 헛되어 하지 말자는 위로는 그분을 위한 위로가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에게 하는 위로는 아닐까?

그의 희생 앞에 어떤 말도 감히 하지 못하겠다. 너무나 무겁고 아무런 도움도 되어 주지 못한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고, 그분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슬픔에 그저 울음소리로 그 당황함을 대신한 뿐이다.

박 대표는 복지부와의 정책간담회나 서울시의 정책간담회에 참여하여 중증과 소수 장애인의 삶의 어려움과 사회적 차별적 환경을 이야기하고, 적극적 조치를 요구해왔다. 그리고 장애인단체를 직접 이끌면서 보다 나은 내일을 장애인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피로를 마다하지 않았다. 토론회나 세미나, 각종 행사장에서 그를 만나면 늘 미소를 띤 친절하고 다정한 동지였다.

박 대표는 일주일 전쯤 손님으로 찾아가던 맥주집 구석방에 잠시 머무르도록 요청하여 그곳에 있게 되었다 한다. 그분이 일하는 자립생활센터가 광진구에 소재하고 있고, 전장연이 활동 무대를 마로니공원으로 옮기기 전에는 정립회관이 주요 무대였음을 감안하면 혼자 술을 마시러 가기보다는 단체로 가벼운 단합자리로 술을 즐겼을 수 있을 것이다.

동생도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고 어머니를 모시는 가장으로서 박 대표는 고작 최저 임금 수준의 활동비로 생활했을 것이라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장애인의 인권을 주장하는 입장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생활부터가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었을지 모른다.

그 외에도 장애인 리더로서, 활동가로서 그는 많은 번뇌와 고민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마음을 정리하고자 맥주집에 잠시 칩거를 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흔한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사고가 발생한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특히 술집이라면 손님을 받아 매상을 올리는 적기의 날인데, 7시가 되도록 사장은 출근도 하지 않았고 박 대표가 혼자 맥주집에 있었다고 하니 이 또한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부검은 다른 가해나 사망 원인이 있었는가를 판단할 수는 있으나 연기를 마셔서 사망하였다면 왜 화재가 났는지 주검은 말해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발화지점이 어디이고 왜 발화가 되었는지 과학적인 수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박 대표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문 입구까지 왔다면 문이 잠겨서 나가지 못한 것인지, 불길이 앞을 가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전동으로 밀고 나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잠이 들어 화재를 늦게 발견하였다면 입구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타는 냄새 등으로 사전에 알았다면 불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 한 피신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 의구심은 남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 분이 살아 있었으면 하는 미련에서 생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실은 규명되어 우리에게 설명되어야 한다. 결코 알 수 없는 의문사로 그 분을 보낼 수는 없다.

다음으로 그 분의 남겨진 가족은 이제 누구를 바라고 어떻게 소득을 보전하고,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상실감과 한을 어떻게 치료받아야 하는가가 문제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가에서 전문가를 통한 치료와 상담을 한 것처럼 전문 서비스가 병행되고, 그들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그가 무엇을 우리에게 남겼는가를 생각하며 애도하고 추모하는 일이다.

그의 희생이 정확이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3급 장애인이라 활동보조인이 있었다면 희생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좀 성급하다. 다만 그러한 어려운 생활을 했음을 우리는 인식하고 그러한 현실을 안타까워 해야 한다.

다만 한 사람의 희생이 정책적 요구의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생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찾아 그러한 원인을 방치한 우리의 반성과 더불어 재발방지를 철저히 할 치밀하고 실천적인 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죽음은 남은 자들에게 공포와 슬픔과 상처를 남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이 사회가 지켜내지 못하고 사고에 희생되었음이 안타깝고 비통하다.

그러한 사고가 장애인에게 더 치명적으로 다가오고, 사고에서 장애인을 방치하고 있음이 서럽고 한스럽다. 이는 바로 소수자로서 약자로서의 울부짖음과 같을 것이다. 그분을 보내며 희망의 지팡이를 하나 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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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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