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등급이 폐지되는 것과 관련하여 복지부에서는 연구용역을 하여 대안을 마련하고, 장애인단체에 설명과 더불어 동의를 구하려 하였다.

그러나 장애인단체에서는 연구의 결과물에 대한 불만족과 정책결정 과정에서 장애인당사자의 충분한 참여가 보장되지 않았음에 노골적인 저항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자 복지부에서는 장애인단체 지원 예산의 일부를 등급제 폐지 이후의 대안 마련과 국제협력 사업 등 신규사업으로 단체지원 사업에 포함할 의사를 밝히고, 장애인단체들의 의견을 받았다.

장애인단체 지원 예산의 총액이 늘어난 것은 아닌데 신규사업을 한다는 것은 곧 현재의 장애인단체 지원 사업 예산 일부를 삭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복지부는 장애인단체의 건의로 신규사업을 정함으로써 '단체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모색하며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모양새를 보였다.

12월 22일 장애인단체 사업평가 간담회에서 복지부 한 관계자는 등급제 폐지에 대한 신규 사업 이야기가 장애인단체 스스로에서 나오자 ”등급제 폐지 이후의 대안정책을 복지부가 일방적으로 끌고 갈 경우 단체로부터 불만을 듣게 되니 장애인단체가 스스로 참여하여 이 문제에 적극 나서주어야 한다. 신규사업으로 등급제 폐지 이후 관련 사업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경우 단체의 지원사업이 아닌 별도의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할 사업을 단체 지원사업 예산으로 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으니 좋고, 단체 스스로가 종합판정에 대해 나서주니 좋을 것이다.

복지부는 “이제 단체가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의 정책에 대한 책임을 단체로 넘길 수도 있으니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장애인단체들이 신규사업 예산을 경쟁적으로 더 받기 위해 종합판정 관련 사업을 할 경우 복지부와 협력이 좋아지고, 책임도 같이 지게 되므로 종합판정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사항들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

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단체가 예산에 눈이 어두워 정책을 망치고 단체의 역할에 역행했다는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단체들은 국제협력 사업을 신규사업으로 늘려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태장애인 10년 참여 단체가 늘어난다는 장점이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별도로 마련하지 못한 국제협력 사업을 단체지원 사업을 쪼개어 실제적으로 국내 장애인에게 돌아가야 할 사업이 축소된다는 우려도 안고 있다.

사실 종합판정은 너무나 간단할 수도 있다. 등급이 없으니 장애인등록이 가능한 최하선을 정하여 장애인인지 판정을 하면 된다. 그리고 각종 할인제도에서 추가적 서비스를 결정하기 위해서 할인제도를 단순화한 다음, 장애정도와 타인의 도움 필요성 정도, 경제적 능력 등을 고려한 추가 서비스 기준을 마련하면 된다.

여기서 중증과 경증이라는 의학적 기준을 장애인 복지카드에 표시하지 않음은 물론 행정이나 서비스 서류에도 중증의 숫자나 등급이 표시되어서는 안 된다. 단지 장애정도가 서비스 대상인지만 판정해야 한다.

여기서 외국에서처럼 중증과 경증이 아니라 서비스 적격 또는 유자격 대상판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종합판정이라고 하여 교육이나 근로에 대한 판정까지 종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시각장애 2급이면 점자를 가르치고, 3급이면 확대경을 주어 교육을 할 것이라 판정할 수 있는가? 이는 교육적 판정을 위한 시기능 판정이 있어야 하고, 개별화된 교육 전문가의 판정에 맡겨야 한다. 지적 장애인이나 청각 장애인 등도 마찬가지이다.

직업적 판정 역시 직업재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어느 정도의 중증이면 직업 없이 서비스로 살게 하고, 어떤 정도의 장애이면 직업재활시설인 작업장에서 일하고, 어느 정도의 장애이면 일반 노동시장에서 살게 할 것인가를 종합판정에서 절대 판정할 수 없다.

그리고 건강이나 치료와 같은 서비스 역시 해당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어느 정도의 장애이면 언어치료를 하고, 어느 정도의 장애이면 구화를 가르친다는 것을 종합판정에서 정할 수 없다. 단지 서비스 대상인지 판정을 받아볼 자격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서비스의 양과 수준은 개별화해야 하고,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그러니 장애인인가와 추가적 할인 서비스나 연금의 대상이 되는지만 판정하면 현재의 등급제 폐지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현재의 장애인 등급제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판정이 아니었다. 서비스는 다양하여 선택할 평가가 복잡한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든가 아니든가 두 가지인데, 장애등급은 6등급에 5호까지 따지면 수십 등급으로 판정을 해 왔다. 의학적 분류체계에 의한 분류만 한 것이지 그것이 갖는 의미도 그것의 활용도도 없었다. 그냥 기계적 행위로 등급판정을 해 왔다.

이제 또 서비스 적격 자격자인가를 판정하는 것이 종합판정이라는 것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장애를 판정하는 것에 의학적인 것만이 아니라 환경적, 사회적인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종합적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종합이란 모든 것을 다 포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종합판정은 서비스 전달체계나 서비스의 중복과 누락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등급제 폐지의 대안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등급제에서는 종합판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등급제가 없어지면 종합판정을 해야 한다는식으로 등급제와 종합판정이 서로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종합판정을 하기 위해서는 종합판정의 범위와 전달체계와 서비스 제공의 시스템 등 종합적인 것이 가능해야 하고, 각 전문가의 참여로 팀접근이 있어야 하며, 등급별 서비스가 아닌 개별화된 서비스 체제가 구축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종합판정이란 용어보다 기초판정이라거나 예비판정, 초기판정 등 다른 용어를 사용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리고 판정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제공과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과 자기결정권의 존중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복지부 위탁사업 성격의 사업 일원화를 추진하여 내년에는 거주시설 인권실태조사사업, 그 다음해에는 다른 사업들을 모두 공공기관인 개발원에 맡기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에 대하여도 장애인단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왜냐하면 그 동안 장애인단체들의 사업비 증액 요구에 대하여 별도 사업을 주는 것으로 억제시키는 핑계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