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은 옵션이 아니다’라는 광고카피가 생각이 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안전에 대해서는 모두가 옵션이고 차선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복불복의 인식이 대한민국의 위기관리시스템을 좀먹고 있다. 특히 재난약자인 장애인들은 안전에서조차도 소외되는 이러한 분위기가 변화되려면 수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14년도에 대한민국의 재난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을 낸 세월호 사건은 국민들에게 상실감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함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대한민국이 천지개벽할 듯한 수많은 제도적 정비의 약속과 인적쇄신, 다짐들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간 속에 같이 잊혀져간다.

과연 법이 부족해서일까? 사람의 문제일까? 아니다. 철학의 문제일 것이다. 안전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위에 늘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안전이란 것이 늘 우리와 밀접한 관계임에도 가까이 있다는 느낌보다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안전문화의 부재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2012년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열린 제4회 국제유니버설디자인회의를 참관한 적이 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지역의 쓰나미 발생으로 대규모의 재해가 발생한 후에 생긴 회의여서 주로 재난과 재해에 관련된 세미나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기억에 남는 발표 중에 대피 장소에 대한 것이 있었다. 비상시에만 찾아가는 대피장소가 아니라 평상시에도 함께하는 뒷동산 같은 피난시설이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재난 또는 위기관리는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늘 가까이 하는 생활형이어야 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불조심, 물조심에 대한 교육이 있었고, 계몽활동도 하고 민방위훈련 등 실제적인 훈련도 했었는데, 이제는 과거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제도가 잘되어 있고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도 평상시 훈련이 안되어 있고 우리의 의식 속에 안전에 대한 대비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안전이 생활밀착형이 되기 위한 다음의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평상시에도 재난 훈련은 이루어져야 한다.

이룸센터의 각 층 계단에는 국내최초의 피난대피보조기기인 KE-체어가 비치되어있다. 그러나 이 건물에 근무하는 분들이 그 용도와 사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장애인들과 파트너가 되어 훈련을 해 본 기억도 없다.

진짜 비상시에는 어떻게 이 건물에 근무하는 장애인들을 대피시킬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우리가 아무리 비상시 매뉴얼을 잘 만들었다 해도 평상시에 훈련하지 않으면 우왕좌왕하고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근무하고 생활하는 현장에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충분한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들과 종사자들이 보라매안전체험관 등의 체험시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사전에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라매안전체험관은 자연재해 및 인위재난 등 각종 재해, 재난 상황을 시민들이 직접 체험하면서 재난 안전의 중요성을 현장경험이 풍부한 현직 소방관들의 생생한 경험담으로 들을 수 있는 국내 최고의 재난안전 종합체험관이다.

둘째, 장애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장애인과 관련된 단체의 종사자들이 안전문화를 선도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장애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종사자들의 안전의식 고취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안전과 관련된 과목이 신설되어 사회복지사 시험 필수과목이 되어야 한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자하는 학생 때부터 장애인들의 안전과 위기관리가 몸에 배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특수체육학과 학생들과 직업재활, 물리치료, 작업치료 등 장애인과 관련된 모든 전공자가 이 과목을 필수로 이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복지사협회나 장애인복지시설협회, 복지관협회, 직업재활시설협회 등의 회원 보수교육에도 이와 관련된 교육이 필수로 실시되어야 한다. 안전이 무엇보다 최우선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길은 교육만큼 좋은 것이 없다.

셋째, 재난구조관련 종사자들의 올바른 장애인식이 필요하다.

현장구조요원들이 각 장애인의 특성을 알고 정확한 구조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 종사자들에 대한 정기적인 장애인식 교육이 필요하다.

장애인 등의 재난약자에 대한 접근은 인권차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먼저 손을 뻗어서 구조하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을 해야 한다. 약자를 먼저 돕는 것은 사회정의이다

넷째, 안전과 재난에 대한 계몽이 필요하다.

안전은 문화이다. 문화는 늘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항상 우리의 머릿 속에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

생활밀착형 안전제품의 연구, 공모, 생산, 활용에 장애인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겠다.

일본이 그렇게 재난과 재해가 많아도 인명피해가 적은 것은 늘 훈련하는 것이 생활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치원생 꼬마들이 선생님과 대피훈련을 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애관련 시설들은 상시적인 훈련을 통해 장애인 재난대처를 위한 모범사례가 되어야 한다.

유비무환, 안전은 아무리 지나쳐도 과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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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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