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발걸음이 자꾸만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 바위투성이 주로, 지열과 함께 비릿한 냄새가 나던 석회암 지대, 냉혹한 아름다움 속에 잔인함을 감추고 있던 모래 구릉, 표피가 벗겨진 발바닥을 공격하는 잔돌들이 깔려 있던 평원, 저승사자 낙타의 방울 소리, 지금 내게서 멀어지고 있는 사막이 알지 못할 그리움으로 부피를 더해 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사막이 그리워서 다시 사막을 찾아 오게 될까? 내 기억에서 고통은 소멸되고 고통을 이겨낸 희열이 되살아나서 사막을 찾아오게 될까?

나는 생각마저 하얗게 표백되어 버리던 사막에서와는 달리 이 짧은 구간을 달리며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 모두는 치열한 격전에서 승리한 용사와 같은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 이 길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풀어버리지 못한 응어리 같은 게 남아 있다.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나는 이 레이스에서 출발할 때부터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송구스러울 정도로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내 마음 속에 풀어버리지 못한 응어리 같은 게 남아 있다니. 아들 민이 한 말 때문일까?

"이번 일에 자신이 생겨서 다음엔 더 험한 일에 도전하실 거잖아요."

아들 민이 한 말 속에는 은근한 힐난이 담겨 있었다. 민 혼자의 마음이 아닌 가족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로키산맥 스쿼미시 수직 암벽을 오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송을 보고 아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당신, 지금 혼자 살고 있어요?”

내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자 아내가 신랄하게 말했다.

“당신은 자신이 자랑스러울지 몰라도 무책임한 사람이에요. 가장으로서 어떻게 저런 무모한 짓을 하세요?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는 산길 600m도 가기 힘든 길이에요. 그런데 607m나 되는 수직암벽을 오르려고 작정한 것 자체가 가장이기를 포기한 거나 다름없어요.”

나는 아내의 말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는 당신을 자랑스러운 남편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신은 지독한 이기주의자예요. 당신은 찬사에 굶주린 사람 같아요. 앞으로도 당신은 찬사에 허기가 들 때쯤이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라도 오르려고 할 거에요.”

아들 민의 말 속에는 아내가 했던 말, 아내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번 레이스를 KBS에서 ‘KBS 스페셜’로 한 시간 동안 방영한다고 하니 그걸 보게 될 아내의 반응이 벌써부터 두려운 생각까지 든다.

아내의 말은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무책임한 가장에다 이기주의자에다 찬사에 굶주린 인간, 맞는 말이다. 내가 암흑에서 세상으로 나선 후 암흑이라는 장애가 한계가 없는 가능성으로 바뀌어 갔다. 1m 앞에 무엇이 있는 줄도 모르는 장애로 인해 모른다는 것 자체가 가능성으로 환치되기 시작했다. 가시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는 정상인에게는 가시거리 자체가 은연중에 한계가 될 수도 있으리라.

물론 시각과 정신의 한계는 엄연히 다른 영역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가시거리가 제로인 내게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엄청난 정신의 노력이 필요했다.

행동에 수반된 정신의 노력이 어떤 것인지를 정상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밝은 세상을 체험해 보았기에 그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실명한 지 23년, 내게는 한계가 없는 어둠처럼 모든 일에 한계가 없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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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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