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울음이 복받쳤다.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내 몸에서 터져 나오는 원초적인 감정의 표출이었다. ⓒkbs 방송 화면 캡처

잔돌들이 깔려 있는 지역을 벗어나서 낮은 구릉을 넘었다.

“구릉지대가 한동안 계속될 것 같아.”

창용찬씨가 내게 말하고 있었다. 주로가 바뀔 때마다 ‘송 관장’하고 먼저 부르고 나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마저 생략하는 걸 보면 말 한마디의 체력이라도 아끼려는 것 같았다.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로키 산맥 스쿼미시 치프봉 수직 거벽을 오를 때였다. 240m가 남은 지점에서 110도의 마이너스 턱을 오르기 위해 사력을 다할 때였다.

몸이 조금이라도 가벼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자 살이라도 잘라서 떼어내 버리고 싶었다. 로프에 매달린 몸이 한 바퀴 회전을 했다.

그때 조끼 주머니에서 미세한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조끼 주머니에 1센트짜리 캐나다 동전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이 동전 세 개 무게라도 덜면 내 몸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떨어뜨려 버렸다.

아, 그 동전 세 개가 내 몸에서 떨어지자 3㎏이라도 줄어든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믿기지 않는 일이겠지만 극한 상황을 체험하지 않고는 그 신비, 아니 그 진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

네 개의 구릉을 넘어서자 지면 위로 울퉁불퉁하게 바위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보조를 맞추어 함께 오던 김성관씨와 정혜경씨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각자의 페이스로 마지막 남은 구간을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창용찬씨는 나를 끝까지 에스코트하기 위해 나와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나는 창용찬씨의 배낭에 연결되어 있는 생명줄을 잡고 끌려가다시피 걸음을 옮겼다.

“송경태, 왜 사서 이 고생을 해?”

창용찬씨가 주로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어쩌면 창용찬씨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형님, 나도 모르겠어요.”

그 상황에서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복받쳤다.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내 몸에서 터져 나오는 원초적인 감정의 표출이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표현하는 진실의 언어였다. 창용찬씨도 나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 역시 나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이 극한의 상황에서 표출하는 진실의 언어였으리라.

“딸랑 딸랑”

아, 저승사자의 방울 소리가 들린다. 레이스 행렬의 뒤를 쫓아오는 저승사자, 낙타의 목에 달린 방울 소리였다.

저 놈의 저승사자는 기진해서 레이스를 포기한 사람을 등에 태워주는 선행도 하지만 저 놈의 걸음에 뒤처지면 가차 없이 탈락이었다.

“형님, 일어나세요. 저승사자가 오고 있어요.”

나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총이라도 있으면 쏴 버리고 싶었다.

롱데이 피니시 라인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까지 저 놈의 저승사자에게 쫓기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맹렬한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형님, 총이 있으면 그냥 쏴 버리고 싶어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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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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