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장애학연구회에서 강의를 마치고 질문을 받고 있는 손홍일 교수. ⓒ서인환

영화나 문학에서 장애학에 의한 연구를 하는 것을 영화감독이나 문학 작가들은 비평의 한 방법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장애학이 문화비평의 한 방법이 될 수는 있으나 문화비평의 한 방법이 장애학인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주체자로 참여한다는 것, 장애운동적 성격을 띠고 문화를 바라보며 장애가 사용된 의도와 사회적 태도 등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 그래서 문화비평적 연구처럼 인식되지만 장애학은 다양한 학문과 결합하고 응용되면서 장애인의 당사자주권주의를 강조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문화비평의 영역에 한정되기를 거부한다고 할 수 있다.

손홍일 교수는 대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미국 아이오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위 논문이 ‘문학과 사회’라는 점을 보더라도 손 교수는 사회적 문제의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손홍일 교수는 저신장장애인이다.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소수계층으로 살아가고 있는 흑인들의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다. 결국 사회통합이 완전히 이루어진다면 흑인문학은 통합되어 없어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완전통합이 되기 전에는 흑인문학이 존재하여 흑인들의 통합에 기여하여야 한다고 손 교수는 말한다. 그래서 흑인문학을 한시적 문학이라고 한다.

이것을 장애문제와 결부시켜 보면, 장애문학은 장애학을 위해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손 교수는 현재 ‘예술적 불안감-장애와 문학적 재현의 위기’라는 책과 ‘보통이 아닌 몸-미국 문화와 문학에서의 장애 재현’이라는 서적의 번역 출판을 준비 중이다.

12월 6일 대구대학교 사회과학대 종합강의실에서 개최된 제4회 장애학연구회에서 ‘장애와 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손홍일 교수는 IL대학 전정식 학장처럼 나지막한 키에 친근감이 있고 너그러우면서 유머도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데이비드 미첼(David T. Mitchell)과 세론 스나이더(Sharon L. Snyder)가 쓴 ‘서술 보정 장치’(Narrative Prosthesis)에서 “이미지와 개념으로서의 장애”가 문학 세계를 가득 채워 왔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장애가 하나의 이미지나 트릭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피터 팬’에서의 후크 선장이라는 장애 인물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는 왼쪽 눈을 상실한 마법 방어술 교수 매드아이가 등장하고 있고, ‘백경’은 고래에게 다리 한 쪽을 잃은 장애인 선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국문학의 경우를 보면,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김동리의 ‘무녀도’, 채만식의 ‘탁류’, 이청준의 ‘서편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는 청각, 시각, 언어, 성장 장애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가 등장한다.

일제 강점 시대에 37편에 이르는 소설에 장애 인물이 등장하였고(김미영 2006), 1990년부터 2001년 사이에 출간된 아동문학 작품 가운데 무려 53편의 작품에 장애 인물이 등장한다고 한다(박향숙 2002).

미첼과 스나이더는 ‘서술 보정 장치’에서 장애학을 “신체적 또는 인식적 다름을 지닌 사람들에게 열등한 삶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도전”으로 설명하였다.

장애를 다름으로 인식하는 운동으로 문학을 바라보는 것을 손홍일 교수는 '장애학에 기댄 문학'이라 명명하였다.

장애학에 기댄 문학연구로 장애학 전반에 걸친 이론, 방법, 분석을 다루는 연구를 출판하는 Disability Studies Quarterly, 장애학에 기댄 문학/문화 비평적 담론에 특히 집중하는 Journal of Literary & Cultural Disability Studies, 셰런 스나이더, 브렌다 브뤼기먼과 로즈머리 갈랜드-탐슨이 공동으로 편집한 ‘장애학’, 갈랜드-탐슨이 쓴 ‘보통이 아닌 몸’을 소개하는 것으로 손홍일 교수는 미국의 장애학을 소개하였다.

‘보통이 나닌 몸’ 저서에는 해리엇 비쳐 스토우의 ‘탐 아저씨의 오두막’, 리베카 하딩 데이비스의 ‘제철소에서의 삶’과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펠프스의 ‘침묵의 동반자’, 앤 페트리의 ‘거리’, 토니 모리슨의 첫 다섯 편의 소설과 오드리 로드의 ‘자미’를 장애학에 기대어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육적 힘을 가진 아동문학을 중심으로 장애학에 기댄 문학담론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 때 조언 블라스카나 주디스 랜드럼는 교육적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장애인이 등장하는 아동 문학을 선별하는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 기준은 1. 동정이 아니라 감정 이입을 촉진할 것 2. 조롱이 아니라 수용을 묘사할 것 3. 실패보다는 (실패와 함께)성공을 묘사할 것 4. 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촉진할 것 5. 장애에 대하여 아동들이 정확한 이해를 얻는 데 도움을 줄 것 6.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보일 것 7. “저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의 태도를 장려할 것 8. 사람이 먼저고 장애가 그 다음이라는 철학을 담은 언어를 사용할 것 9. 장애(인)를 (인간이기는 하나 초인간적으로가 아닌) 사실적으로 묘사할 것 10. 성격을 현실적인 방법을 설명할 것 등이다.

문학에서 장애를 설명하는 모형으로 네 가지가 있다. 장애를 신비한 능력이나 악에 연결하여 생각하는 전통적인 접근 모형, 장애를 구호 단체나 자선 사업의 동정이나 호의를 통하여 보상되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보상 모형, 장애를 치료하거나 보완하거나 심지어 제거해버려야 할 대상으로 파악하는 의학적 모형, 문화적 접근 모형 등이 있다.

갈랜드-탐슨의 설명에 따르면, 문화적 접근 모형은 “장애를 인종, 성, 사회계급, 민족, 그리고 성적 취향과 함께 숙고되어야 하는 또 하나의 문화적으로 구속된, 육체적으로 정당화된 다름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몸과 정체성의 문화적 구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려는” 접근법이다.

장애학적 시각에서 보면, 비장애인들이 생산해내는 장애인의 이미지가 대체로 부정적이거나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유사한 사례로 미국 흑인이 예술이나 대중 매체에 의하여 부정적으로 제시되는데, 이는 대부분 백인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피지배자에 대한 미적 표현의 거부는 실제적인 경제적, 법적, 정치적 표현의 거부에 대한 추론을 형성해온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로는 “다른 모든 사회적 소수 집단처럼 장애인도 예술의 주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술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 흑인 극작가 어거스트 윌슨의 작품에는 여러 명의 장애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의 첫 브로드웨이 공연작 ‘마 레이니의 검은 엉덩이’에는 심하게 말을 더듬는 실베스터가, 두 번째 브로드웨이 공연작 ‘울타리’에는 이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뇌를 크게 다친 게이브리얼이, 네 번째 브로드웨이 공연작 ‘두 편의 열차’에는 유아적 지적 능력을 가진 햄본이 등장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문학에 나타난 장애인이 사회적 암울함 속에 답답하면서도 무능함을 나타내기 위해 장애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였듯이 흑인의 주제적 문학 구사에서도 장애는 도구화되고 있다는 것이 손 교수의 지적이다.

‘울타리’에서 게이브리얼은 이차 세계 대전에서 머리의 반쪽을 잃은 후유증으로 정신적 장애인이 된 인물로 제시된다.

흑인이 전쟁에 참전한 것은 목숨을 건 국가에 대한 기여를 통하여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전쟁의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게이브리얼은 정부로부터 3,000 달러를 받았고, 매달 일정한 금액의 연금을 받고 있다. 게이브리얼이 받은 보상금으로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겨우 마련할 수 있었고, 그의 연금을 생활비에 보탤 수밖에 없는 형 트로이는 항상 죄의식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곧이어 윌슨은 게이브리얼이 하숙생활이란 형식으로 누리는 의존적이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끝내고 정신 병원으로 보내지도록 만들었다. 정신적 장애인 게이브리얼을 사회적으로 말소시킨 윌슨은 극의 끝에서 또 다른 은유적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게이브리얼을 정신 병원으로부터 다시 끌어내왔다.

윌슨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 흑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과거의 직시와 수용을 통한 정체성 확립이고, 정체성 확립은 미국 흑인이 아프리카의 후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아프리카와의 재연결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윌슨은 극의 끝에서 게이브리얼이 병원에서 나와 그의 형 트로이의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했다.

윌슨은 기존의 의학적 모델을 수용한 시각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면서 부정적인 장애인의 이미지를 제시하였다.

한국문학에서는 많은 비평가들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인간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며,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제적 분배 제도를 비판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비주류의 상징으로 장애인을 등장시켰고, 그저 고통 받는 아주 무기력한 인물들로 그려내었다. 그 결과 이 장애인물과 그의 가족은 거의 구경거리로 전락하게 되었고, 때문에 이 연작 단편 소설을 접하는 사람들은 사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작가의 주장에 공감하는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장애 인물들에 대한 동정심과 혐오감이 뒤범벅된 결코 즐겁지 않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손 교수는 강의 끝에 “그동안 우리가 인종적, 성적 다름과 관련된 문학적 재현과 이미지 생산에 보여 온 엄청난 관심과 비슷한 관심을 장애(인)의 문학적 재현과 이미지 생산에도 보이면서, 장애를 그저 또 하나의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문학과 그런 문학을 생산해낼 수 있는 작가의 시각과 자세를 요구해야 할 때인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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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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