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로 두 차례 더 배설을 하고 나서 더 이상 서 있을 기력조차 없어 무너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kbs 방송 화면 캡처

나는 호기롭게 대답을 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나 때문에 다른 분들의 레이스에 지장이라도 생기면 그 폐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기에.

“괜찮을 거야. 속을 비워내면 그만큼 몸이 가벼워지잖아.”

김성관 씨가 농담처럼 하는 말 속에는 상황을 낙관하는 긍정이 있었다.

몸을 추슬러서 출발한 지 20분 남짓 되었을 때, 또 아랫배가 쏴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일행에게 미안함이 바위처럼 무거웠지만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내 의지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얼마 못 가서 두 차례 더 배설을 하고 나자 체력이 바닥나 버렸다. 더 이상 서 있을 기력조차 없어서 무너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송 관장님, 이거 좀 드세요. 우황청심환인데 기력이 좀 회복될 거예요.”

“정혜경 씨가 건네주는 우황청심환을 고맙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받아먹었다.

“알루미늄시트를 깔아놨으니 잠시 누워서 기운을 차려요.”

김성관 씨가 깔아놓은 시트 위에서 슬리핑백 속에 들어가 다리 를 뻗고 누웠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체온까지 떨어져 턱이 덜덜 떨렸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침낭 속에 누워 있는데도 알루미늄시트 자락이 펄럭이는 소리가 거세게 들렸다. 침낭 속에서 수지침을 꺼내어 양 손 손가락 끝을 모두 땄다. 가깝게 지내는 한의사가 가르쳐 준 요법이었다. 10여 분이 지나자 기운이 좀 회복되었다. 일행이 내게 베풀어준 따뜻한 마음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체크 포인트에 도착했다. 바람이 여전히 세차게 불고 있었다. 기온도 온몸이 떨릴 정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많은 레이서들이 텐트 밖 노지에서 슬리핑 백 속에 들어가 휴식을 하고 있었다.

이제 롱데이의 남은 구간은 19㎞,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남은 구간을 주파하기 위해 한 방울의 체력이라도 모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짧은 시간이나마 숨 쉬는 것 말고는 미세한 움직임도 없이 깊은 휴식에 잠겨 있었다.

다행히도 나를 괴롭히던 설사가 멎었다. 일행 모두가 슬리핑 백 속에 들어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며 잠시 눈을 붙였다.

자원봉사자가 잠을 깨웠다. 정신이 혼미했다. 슬리핑백 밖으로 나오기 위해 움직이는 몸이 천근이라도 되는 양 무거웠다. 슬리핑백의 지퍼를 열기 위해 팔을 움직이는 데도 극에 달한 인내와 의지가 필요했다.

바람 속을 걸어가고 있는 모두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깊은 밤, 사막의 바람 소리는 추위와 함께 공포를 동반하고 있었다. 음산하면서도 막강한 힘을 지닌 바람 소리가 귓전을 울릴 때마다 온몸이 수축되는 것 같았다.

주로의 앞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내딛는 걸음을 강력하게 저지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체력보다 의지가 필요했다. 남아 있는 거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발바닥의 통증을 참고 가는 것만 해도 체력과 의지를 넘어선 초인적인 인내가 필요한데 보이지 않는 장벽 같은 바람까지 앞을 막고 있었다. 낮에 오아시스에서 누렸던 그 안온한 휴식과 함께 느꼈던 행복이 신기루처럼 기억되었다.

발바닥의 통증에 더께가 낀 것 같았다. 신경세포를 찌르는 고통이 무디어지고 있었다. 통증마저 무디어진 몸이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은 체력과 의지의 힘이 아니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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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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