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은 타인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치이다. ⓒkbs 방송 화면 캡처

고행의 내리막이 끝나고 모래와 잔돌이 깔린 지역이 시작되었다. 안도의 숨이 저절로 나왔다. 바위투성이 지역이거나 주먹보다 큰 돌들이 깔린 지역이라면 고통이 연장될 수밖에 없었기에.

“세상을 살다보면 가로막고 있는 난관을 도저히 헤쳐 나갈 수가 없는 지경에 다다른 것 같은데도 묘하게 길이 생기더라구. 아까 내리막을 내려오면서 생각했어. 만약 내리막이 끝나서 큰 돌들이 있는 지역이라면 한 걸음도 못 갈 거라고.”

김성관 씨도 나 못지않게 발바닥 상처 때문에 고통을 겪은 모양이었다. 정혜경 씨 말처럼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은 타인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치이니까.

모래와 잔돌이 깔린 평탄한 지역을 한 시간 남짓 달렸다. 점점 떨어지고 있는 기온이 고맙게도 달리느라고 오르는 체온을 식혀 주었다.

“송 관장님, 저 앞에 있는 언덕 위에 불빛이 보여요. 체크 포인트인가 봐요.”

정혜경씨 목소리에 생기가 넘쳤다. 50㎞를 주파했다는 뿌듯함이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뿌듯한 마음과는 달리 갑자기 허기가 심하게 느껴졌다.

체크 포인트에 도착해서 잠시 쉬는 동안에 한기가 느껴졌다. 배낭에서 방풍 재킷을 꺼내 입었다. 이제 사하라의 밤 기온은 빠르게 내려갈 것이다. 낮과 밤의 태양과 어둠, 염열과 한기, 사하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상반된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송 관장, 칼국수 좀 먹을래?”

“고맙습니다.”

둘째 날 배낭이 무거워서 식량을 많이 버린 탓에 식량이 바닥나 있었다.

창용찬 씨가 물을 부어서 먹는 칼국수를 건네주었다. 앞 못 보는 나를 에스코트하느라 레이스를 하면서 내가 모르게 신경을 많이 써주었을 텐데 먹을 것까지 챙겨주는 마음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송 관장님, 컵라면도 좀 드세요.”

정혜경 씨가 내미는 컵라면 국물 냄새가 입맛을 돋우었다. 그러나 조금 전 창용찬 씨가 준 칼국수를 먹은 속이 편치가 않았다.

“혜경 씨, 좀 전에 형님이 준 칼국수를 먹어서 배가 불러요.”

“그럼 국물이라도 좀 드세요. 속이 개운할 거예요.”

정헤경 씨가 건네 준 따끈하고 얼큰한 국물을 조금 마시고 나자 속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혜경 씨, 다른 나라 레이서들은 무얼 먹어요?”

“미국과 영국 선수들은 물에 타 먹는 건조 고기 가루를 먹고 있네요. 일본 선수들은 누룽지 같은 건조 쌀과 녹두 가루를 물에 타서 먹고 홍콩과 대만 선수들은 건조 밀가루를 물에 타서 먹고 있어요.”

똑같은 환경에서도 먹는 음식이 저마다 다른 것은 살아 온 생활 방식이 다름을 반영하고 있었다. 하긴 각 나라의 음식은 고유한 기후와 산물, 그리고 종교적인 요소까지 담겨 있는 그 나라 문화의 총체적인 것일 테니까.

이집트 차량 기사들이 타악기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막의 밤 정취가 선율에 담겨 있는 그들의 오래된 음악인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머리에 두른 헤드랜턴을 켜고 배낭 멜빵에는 야광 막대와 뒤에는 깜빡이 등(레드 랜턴)을 달고 출발했다. 주로 곳곳에 설치해 둔 야광 스틱이 활주로의 유도등처럼 빛나고 있다고 했다. 주로는 다행히도 평탄한 모래밭이 이어지고 있었다.

“송 관장, 우리가 지금 활주로를 달리고 있는 기분이야.”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과 야광스틱이 발산하는 빛이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네요.”

“혜경 씨 그렇게 아름다워?”

“미안해요. 송 관장님. 함께 보았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괜찮아요. 나는 지금 혜경 씨 아름다운 마음을 보고 있으니까요.” <계 속>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